旧韓国末と日帝時代は韓国社会では羞恥心と自負心が交差する微妙な歴史だ.
本人家門のご先祖の中にもウルサヌックヤックに憤慨して自決なさった方もいるが, 親日民族反逆者で日製に積極的に賦役した先祖様もいらっしゃるから
個人的でも羞恥心と自負心が交差している.
祖父は江原道山間のトホショッウや, 東洋拓殖株式会社の土地整理事業に反撃している途中一瞬に乞食になって故郷で追い出されて... おかげさまで祖母さん, 父親, 父親の兄弟, ザメブンドルはやっと命を食いつなぐ位の疲れてだるい生を暮した.
当時祖父が日帝に協力したら父親とそのご兄弟たちは教育もよく受けて, 豊かに暮したかも知れない事だ.
(東洋拓殖株式会社の土地整理事業以前にスシブカンの大きい韓屋で作男も多くて, 豊かだった家だったと入った.)
そして, 私を含んだ父親の子孫, 私の従兄弟たちは全然違った人々だったろう.
顔が分からない祖父だが, 私はそんな決断を出した祖父さんの判断を尊重して, 尊敬する. 個人的に小さいけれど自負心も持っている.
朝鮮を敗亡の道に導いた外戚家門で批判受ける閔さん家門の 1人だったし,
私が教育受けた国史教科書でも簡単に扱われる 忠情公 閔泳煥(閔泳煥)先生に対して最近新しく明かされる事実たちを
どの韓国人 Youtuberが物静かによく整理した資料を見つけてみなさんと共有しようとする.
個人的には感動して胸解けない経験をしたが.... すべての方々各自の評価は違うでしょう.
グジョ... 彼の最後の遺書で閔泳煥個人の存在, 過ぎ去った歴史の悲劇そんなものなどより.
米という千万年にも変わらないで追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私たちの生存に対して瞬間でも考えて見られるように願う.
閔泳煥は当時 朝鮮, 大韓帝国政府の主要要職をあまねく歴任した実勢核心政治家だった.
ロシア皇帝戴冠式参加団を導いて 6ヶ月の間中国, 日本, アメリカ, イギリス, 西ヨーロッパを経ってロシアに至る長い旅程を経験したし,
当時の旅行記も残したとなさる.
閔泳煥先生が 1905年ウルサヌックヤック締結に反対しながら, 短剣で自分の首を突いて自決して残した遺書の漢文本はもうずいぶん前から存在したが,
最近 駐 大韓帝国の外国外交官などにあらかじめ発送した油ではハングル本だったし, そのハングル本の親筆遺書が発見された. 心意気にいっぱいになったハングル本の油では以後朝鮮の新聞に特筆大書されて, 以後大韓帝国社会に及んだ影響もすごかったと言う.
独立のために秘密決死性格の政党を結成した事実
先生が主導した朝鮮人のハワイ集団移民が単純にお金儲け手段ではなかったし, ずいぶん前から用意した外交的活動だったし, 日製の牽制を避けて朝鮮政府の資金を用意するための活動だったろう情況的実はなど
見た映像にはさまざまな話が言及される.
先生遺書のハングル本を手短に引用する.
古文なので翻訳はまともにできないとの点, 日本の方には了解を求めるところだ. 少しの意訳をして見たが, すごく立派な文章に失礼にならないか心配する.
昔の朝鮮のウゾングチォング建物を通り過ぎるようになれば先生の記念銅像で黙念ハンボンシックドルして見るのを希望する.
ほうだと. 国の数値と民の不名誉さがここまでのぼったから, うちの人民は将来生存競争の中にも皆所滅されようとハヌンドだ.
(今朝鮮の民は冷酷な生存競争に敗れて未来皆所滅される危機だ.)
大抵住むように願う者は必ず死んで, 死ぬのを覚悟する者は生を得るはずだから, 皆さんがどうして推し量ることができないか.
(生即死 死即生 / 李舜臣将軍が残した名言/, すべての方々もよく分かっていらっしゃるでしょう.)
ヤングファン(自分の名前)は一度死として仰ぎ王様の恩恵に報いて, 我が利川だけ同胞兄弟に謝罪する.
(自決して 皇帝の恩恵に報いて, 民たちにお詫び申し上げます.)
ヤングファンは死ぬが死ななくて, 九天でも皆さんを必ず助けるのを約束したら, 願わくばうちの同胞兄弟たちは億千万盃もっと元気を出して力をつくすことで,
(私は死ぬが, 死なないで鬼になって民を必ず助けるはずだからご約束致します. うちの同胞兄弟たちはより一層力を出して努力して,)
意味と意気を堅固にして学問に力をつくして,
(意志と勢いを強くして, 勉強と知識に努力して,)
心で団結して力を合して私たちの自由と独立を回復したら,
(一心で力を合わせ, 自由と独立を回復したら,)
死亡者は適切に私暗くて木暗い死の沼で嬉しくて笑うであろう.
(死んで地獄でも嬉しくて笑うでしょう.)
ほうだと. 少しもがっかりするな.
亡国の憤慨と失望減速で自決する者の遺書が...
かくも力があふれて, 進取的で希望的な内容です.
本当...すごくてすごくないですか??? 一体いくら強い心臓と信頼を持った人だったろうか? 私としては見当さえならないです.
そして...
その有名な尹奉吉 義師が母親と妻に残した文と同じく
相手に対する怒り, 復讐みたいな水準なくて幼稚な感情を盛った内容はただ一字も見えな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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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時 朝鮮 民の血の汗が立ちこめた禄俸を受けて食いつないだ士大夫官僚の 1人として彼は朝鮮の亡国に対する責任から絶対自由ではない.
しかし, 正義と忠義のために自分の命でも最善をつくした彼に私たちは一方おごそかで静かになることもできると思う.
そして自決当時彼の奥さんは子孫を懐任して満朔の状態だったと言う.
彼の子孫たちは彼の自決以後すごい困難を経ったし...
閔さん一家の子孫たちの中にほとんど唯一に当時閔さん一家の暴政と朝鮮亡国の責任に対して公開的に社会に謝罪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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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시대는 한국사회에서는 수치심과 자부심이 교차하는 미묘한 역사이다.
본인 가문의 조상들 중에도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자결하신 분도 있지만, 친일민족반역자로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조상님도 계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수치심과 자부심이 교차하고 있다.
조부께서는 강원도 산간의 토호셨으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정리사업에 반격하시다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시고 고향에서 쫓겨나시고... 덕분에 조모님, 부친, 부친의 형제, 자매분들은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정도의 고단한 삶을 사셨다.
당시 조부께서 일제에 협력하셨다면 부친과 그 형제분들은 교육도 잘 받으시고, 풍요롭게 사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정리사업 이전에 수십칸의 큰 한옥집에서 머슴도 많고, 풍요로웠던 집이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부친의 자손, 나의 사촌형제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얼굴을 모르는 조부이시지만,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셨던 조부님의 판단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개인적으로 작지만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朝鮮을 패망의 길로 이끌었던 외척가문으로 비판받는 민씨가문의 1人이었고,
내가 교육받았던 국사교과서에서도 간단하게 다루어지는 忠情公 민영환(閔泳煥)선생에 대해 최근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을
어느 한국인 Youtuber가 차분하게 잘 정리한 자료를 발견하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감동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지만.... 모든 분들 각자의 평가는 다를 것이다.
그져... 그의 마지막 유서에서 민영환 개인의 존재, 지나간 역사의 비극 그런 것들 보다.
미래 천만년에도 변하지 않고 추구해야 할 우리의 생존에 대해 순간이나마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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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은 당시 朝鮮, 대한제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던 실세 핵심 정치인이었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 참석단을 이끌어 6개월 동안 중국, 일본, 미국, 영국, 서유럽을 거쳐 러시아에 이르는 긴 여정을 경험했고,
당시의 여행기도 남기셨다고 하신다.
민영환 선생께서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면서,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하고 남긴 유서의 한문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최근 駐 대한제국의 외국 외교관 등에 미리 발송한 유서는 한글본이었고, 그 한글본의 친필 유서가 발견되었다. 의기에 가득찬 한글본의 유서는 이후 조선의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이후 대한제국 사회에 미친 영향도 대단했다고 한다.
독립을 위해 비밀결사 성격의 정당을 결성했던 사실
선생이 주도했던 한국인의 하와이 집단 이민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고, 오래전부터 준비된 외교적 활동이었으며, 일제의 견제를 피해 조선 정부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이었을 것이라는 정황적 사실 등
본 영상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언급된다.
선생 유서의 한글본을 간략히 인용한다.
古文이므로 번역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일본분들에게는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약간의 의역을 해보았으나, 대단히 훌륭한 문장에 실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옛 조선의 우정청 건물을 지나가시게 되면 선생의 기념동상에서 묵념 한번씩들 해 보시기를 희망한다.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가운데서도 모두 진멸당하려 하는도다.
(지금 조선의 백성은 냉혹한 생존경쟁에 패배하여 미래 모두 진멸당할 위기이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生卽死 死卽生 / 이순신 장군이 남기신 명언/, 모든 분들도 잘 알고 계실것이다.)
영환(자신의 이름)은 한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자결하여 皇帝의 은혜에 보답하고, 백성들에게 사죄 드립니다.)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내어 힘씀으로써,
(저는 죽지만, 죽지 않고 귀신이 되어서 백성을 반드시 도울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우리 동포 형제들은 더욱 더 힘을 내고 노력하셔서,)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학문에 힘쓰고,
(의지와 기세를 강하게 하여, 공부와 지식에 노력하시고,)
마음으로 단결하여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죽어서 지옥에서라도 기뻐서 웃을 것입니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
망국의 분개와 실망감속에서 자결하는 자의 유서가...
이렇게도 힘이 넘치고, 진취적이며 희망적인 내용입니다.
정말...굉장하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강한 심장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저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윤봉길 義師가 모친과 아내에게 남긴 글과 마찬가지로
상대에 대한 분노, 복수같은 수준낮고 유치한 감정을 담은 내용은 단 한글자도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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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朝鮮 백성의 피땀이 서린 녹봉을 받아 연명한 사대부 관료의 1人으로서 그는 조선의 망국에 대한 책임으로 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정의와 충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으로나마 최선을 다한 그에게 우리는 한편 숙연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결 당시 그의 부인은 자손을 잉태해 만삭의 상태였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은 그의 자결 이후 대단한 곤란을 겪었고...
민씨 일가의 후손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당시 민씨일가의 폭정과 조선 망국의 책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회에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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