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印寺の八万大蔵径が 保管されている長径版殿がユネスコによって ‘世界文化遺産’に登載されたのももう 10年目になっている. 81,256葬儀 ‘鏡板(経板)’で成り立った八万大蔵径は高麗時代の 1236年から 16年の間の作業あげく 1251年に完成された. そして 750余年という長長しい歳月を続いて来る間その始めて姿をそっくりそのままおさめたまま相変らずその神聖な姿を見せてくれている. ところで八万大蔵径を 見物するために海印寺を訪問した人々はその見掛けを見て易しくがっかりしたりする. 八万大蔵径を保管している ‘鏡板前(経板殿)’である ‘法宝前(法宝殿)’と ‘首陀羅前(修多羅殿)’がその名前とは違い何の物置のように見えたからだ. また建物の四面の占めている木格子れんじの間で退屈に積もっている鏡板を見物するにはまだ 20分もかからないから水くさいという感じを受けることが決して無理ではない. しかしこんなに単純な構造を持った物置(?)で宝物が 750年以上も無事に保管されているという事実だけでも私たちの好奇心が刺激されるには十分だ.長く保管する鏡板を 作るためにはまず材料をよく選ばなければならない. 高麗人たちは経験を土台で山桜を選択した. (よく白華と知られているもののこれは山桜の漢字表記である ‘和睦(樺木)’の誤った翻訳だと推定される.) 山桜はムルグァンが年輪にめいめいに広がっていて水気含有率を一定するように維持することができる. 伐採した山桜は海を通じて運んで板で切った後また塩水にゆでて陰に乾かした. このようにすれば板内衣水気分布を均一にさせて木目を柔らかくする效果が出る. そして漆をして防虫機能を取り揃えた.
ところでいくら良い材料を作ったと言っても千年近い歳月の間いたまないように保管することができるか? その秘密は八万大蔵径の保管倉庫で捜さ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先に鏡板前の立ち入った席が尋常ではない. 二つの鏡板前は 1,430メートルの伽揶山中腹である 665メートル地点に南西方向で座っているのに北は山で支えていて南側は開かれている. 湿り気をたくさん含んだ東南風が自然に建物横で流れるようにするための配置と言える.
また鏡板前の壁面には 上下も犬ずつの窓があるのにその大きさがお互いに違う. 南側は下の窓が大きい一方北は上側窓が大きい. これは外部空気が大きい窓を通じて入って来て小さな窓を通じて出るようになっている構造として外部の乾燥した空気が鏡板前内部にめいめいに広がる十分な時間を確保してくれる. この時二枚ずつ重ねて立てられてささっている鏡板たちは煙突效果を起こして温度と湿度の調節を手伝ってくれる.
一方鏡板前の 構造は光の相反する作用を絶妙に利用している. 日の光は私たちが事物を見られるようにする可視光線(可視光線)と波長が短くてエネルギーが大きい紫外線(紫外線) そして波長が長い赤外線(赤外線)で大きく分けることができる. このなかに紫外線と赤外線は木の材質を変質させる有害な作用をする. しかし紫外線には苔, かびと昆虫そして植物の成長と繁殖を阻む作用があって, 赤外線はおかず底の土を暖めて空気の対流を促進させる作用をする. そのためか他の博物館とは違い海印寺の鏡板前は日の目を充分に利用する構造を持った.
朝には南側面開けた広いの下窓を通じて入って来る日の光がギョングパンコッイは避けて底のみを暖めて暖かくする. 朝には南側底は下の目になる一方北底は冷たい上目になる. それでは下の目の暑くなった空気が膨脹しながら上に上がって上目の下方へ下る対流が起きるようになる. そして午後には午前とは反対方向で対流が起きる. その結果鏡板前内部の温度と湿度が均一になるのだ.
このように八万大蔵径が 立派な材料とすぐれた構造物の中によく保管されて来ていることは事実だがなんだか国宝を燃えやすい木になった安物な所に保管するのが憚られることも事実だ. 1975年当時朴正煕大統領は先端技術に装置された新しい鏡板前を建築して一部鏡板を移して置いた. ところで 700年の間何らの問題がなかった鏡板が割れて拗くれる事ができて草草と鏡板を昔の鏡板前でまた移し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20世紀の現代科学が 13世紀の高麗時代科学にべた負けしたのだ.
ところで八万大蔵径の価値はその製作と保管に盛られた先祖の科学的知恵にだけ限定さ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 私たちがいざ追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八万大蔵径に盛られた人生の知恵と字一つ一つごとに刻まれた国を愛する心ではないか? (文 : 李定期会-科学コラムリスト)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지도 벌써 10년째가 되고 있다. 81,256장의 ‘경판(經板)’으로 이루어진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인 1236년부터 16년 간의 작업 끝에 1251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750여 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그 첫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을 구경하기 위해 해인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그 외관을 보고 쉽게 실망하곤 한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경판전(經板殿)’인 ‘법보전(法寶殿)’과 ‘수다라전(修多羅殿)’이 그 이름과는 달리 무슨 헛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또 건물의 사면의 차지하고 있는 나무 격자창살 사이로 지루하게 쌓여있는 경판을 구경하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으니 싱겁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결코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구조를 가진 헛간(?)에서 보물이 750년 이상이나 무사히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호기심이 자극되기에는 충분하다.오래 보관할 경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재료를 잘 골라야 한다. 고려인들은 경험을 토대로 산벚나무를 선택하였다. (흔히 자작나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산벚나무의 한자 표기인 ‘화목(樺木)’의 잘못된 번역이라고 추정된다.) 산벚나무는 물관이 나이테에 골고루 퍼져있어서 수분 함유율을 일정하게 유지 할 수 있다. 벌채한 산벚나무는 바다를 통해 운반하고 판자로 자른 후에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렸다. 이렇게 하면 판자 내의 수분 분포를 균일하게 하고 나뭇결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난다. 그리고 옻칠을 하여 방충 기능을 갖추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재료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팔만대장경의 보관창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경판전이 들어선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 두 경판전은 1,430미터의 가야산 중턱인 665미터 지점에 남서방향으로 앉아 있는데 북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남쪽은 열려있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동남풍이 자연스럽게 건물 옆으로 흐르게 하기 위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또 경판전의 벽면에는 위아래 두 개씩의 창이 있는데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남쪽은 아래 창이 큰 반면 북쪽은 위쪽 창이 크다. 이것은 외부 공기가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고 작은 창을 통해서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로서 외부의 건조한 공기가 경판전 내부에 골고루 퍼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준다. 이때 두 장씩 포개 세워져 꽂혀 있는 경판들은 굴뚝 효과를 일으켜서 온도와 습도의 조절을 도와준다.
한편 경판전의 구조는 빛의 상반되는 작용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햇빛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가시광선(可視光線)과 파장이 짧아 에너지가 큰 자외선(紫外線) 그리고 파장이 긴 적외선(赤外線)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자외선과 적외선은 나무의 재질을 변질시키는 해로운 작용을 한다. 하지만 자외선에는 이끼, 곰팡이와 곤충 그리고 식물의 성장과 번식을 막는 작용이 있고, 적외선은 찬 바닥의 흙을 데워 공기의 대류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해인사의 경판전은 햇빛을 충분히 이용하는 구조를 가졌다.
아침에는 남쪽 면 탁 트인 넓은 아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경판꽂이는 피하고 바닥만을 데워서 따뜻하게 하다. 아침에는 남쪽 바닥은 아랫목이 되는 반면 북쪽 바닥은 찬 윗목이 된다. 그러면 아랫목의 더워진 공기가 팽창하면서 위로 올라가서 윗목의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대류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오후에는 오전과는 반대방향으로 대류가 일어난다. 그 결과 경판전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균일해 지는 것이다.
이렇듯 팔만대장경이 훌륭한 재료와 뛰어난 구조물 속에 잘 보관되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국보를 불타기 쉬운 나무로 된 허름한 곳에 보관하기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첨단기술로 장치된 새 경판전을 건축하고 일부 경판을 옮겨놓았다. 그런데 700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경판이 갈라지고 비틀어지는 일이 생겨나서 부랴부랴 경판을 옛 경판전으로 다시 옮겨 놓아야 했다. 20세기의 현대과학이 13세기의 고려시대 과학에 완패한 것이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의 가치는 그 제작과 보관에 담긴 선조의 과학적 지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정작 추구해야 할 것은 팔만대장경에 담긴 인생의 지혜와 글자 하나 하나마다 새겨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글 : 이정모-과학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