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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딩브릿지를 건너자 보이는 첫 번째 관문, 입국심사대 앞에 서서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맛보게 될 좌절의 서막을 걷어올렸다. 공항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뿔싸! 숙박할 곳의 주소를 기입하지 않으면 입국허가를 받을 수 없단다. 머리 속에는 언젠가 보았던 영화 <터미널>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우리도 그 꼴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노심초사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천만다행으로 공항 여직원에게 휴대전화를 급히 빌려서 머무를 곳의 주인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신상태가 영 나쁜지 횡설수설만 늘어놓는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재빨리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그럴싸한 주소를 허위작성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만에 하나 덜미가 잡히기라도 하면 강제추방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는,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도박이나 마찬가지. 마침내 우리들 순서가 찾아왔다. 그런데 맙소사! 우리가 기재한 도쿄도 치바현(東京都 千葉縣)이라는 주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심사원의 한 마디. 정곡을 찔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우린 순수하게 관광목적으로 온 학생들이니까 한 번만 눈 딱 감고 들여 보내주세요."하고 애원조로 통사정을 하니까 마음씨 좋은 심사원이 흔쾌히 OK사인을 내려준다. 우리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이나 인사치레를 하고서 수화물을 찾으러 가니, 공항직원이 왜 이리 늦게 왔느냐며 우리 짐을 따로 내어준다. 도착하자마자 한바탕 진땀을 빼고서 공항을 나오니 일본인아저씨, 토모미가 우리를 반갑게 반겨준다. 예상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만날 수밖에 없게된 경위를 설명하니, 오히려 주소를 미리 가르쳐주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 크다며 나한테 용서를 구한다. 나리타공항-치바-동경 순으로 전철노선이 깔려져 있어서 우리는 우선 게이세이센京成線 전철을 타고 치바에 있는 토모미네 집으로 향했다. 전철 안에서 나는 맞선의 주선자인 양 토모미와 두 친구에게 영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게 하였다. 토모미는 "기욱"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다. 그렇게 사이가 가까워질 즈음 어느덧 전철은 목적지인 신치바역新千葉驛에 당도해 있었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몇 분을 걸어가자 앞으로 나흘 밤간 신세를 질 맨션이 보이기 시작한다. 목을 축이고자 집 앞의 로손이라는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 일본에선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로손이나 웬디같은 편의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매장내부의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린 둘러보는 내내 살인적인 물가에 혀를 내둘렀다. 푸근한 이웃형같은 인상의 점원에게 사탕발림 멘트를 해가며 사진을 찍으니 금새 얼굴이 홍조를 띈다. 장바구니에 든 건 몇 개 없어 보이는데, 지갑이 영 핼쑥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