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kn_051_0040&fileName=kn_051_0040.pdf
https://theme.archives.go.kr/next/hangeulPolicy/business.do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의 문맹률은 12살 이상 전체 인구(10,253,138명)의 약 78%(7,980,922명)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일제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말과 한글의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에 당시 대다수의 국민이 한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 상태였다. 이 때문에 미 군정청은 문맹 문제를 관장할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문 강습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또한 공민학교를 설치하는 등 학령기를 초과하여 초등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아동, 청소년 및 성인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48년 문맹률은 정부 수립 시 약 41.3%로 낮아졌다.
일제시대인 1930년의 문맹률은 약 78%
광복직후인 1945년 문맹률은 약 78%
美 군정이 문맹 퇴치 교육을 시작하고 3년후인 1948년의 문맹률은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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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直後南韓地域の文盲率は 12歳以上全体人口(10,253,138人)医薬 78%(7,980,922人)で非常に高い水準だった. 日製は同化政策の一環で国語とハングルの使用を禁止したから当時大多数の国民がハングルが分からない文盲状態だった. このために米軍政庁は文盲問題を管掌する ‘成人教育委員会’を組織して, ‘国文講習所’を設置運営した. また公民学校を設置するなど学令期を超過して初等教育の機会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児童, 青少年及び大人たちのための教育政策を広げた. その結果 1948年文盲率は政府樹立時約 41.3%で低くなった.
日帝時代である 1930年の文盲率は約 78%
光復直後の 1945年文盲率は約 78%
美 軍政が文盲退治教育を始めて 3年後の 1948年の文盲率は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