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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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했다.2번째로, 한국인 경찰의 간부의 비율은 낮고, 일본인 경찰의 간부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대했다.민족별로 경찰의 계급별 정원을 조사했다(표 1)로 나타내 보이도록(듯이), 각 도의 치안 담당 책임자인 경찰 부장은 일본인이 독점한 것을 시작해 경시와 경부, 경부보 등, 경찰의 상부 조직에서는 일본인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이것에 대해서, 많은 한국인은 경찰의 최하부 조직에 있으면서, 한국인과 직접 마주봐, 총독부의 정책의 제일선의 시행을 담당해야 했던 주재소의 순경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표 1) 1921년, 1940년 민족별·계급별 경찰 정원
경찰 부장
1921년:한국인 0명, 일본인 13명
1940년:한국인 0명, 일본인 13명
경시
1921년:한국인 14명, 일본인 40명
1940년:한국인 9명, 일본인 70명
경부
1921년:한국인 140명, 일본인 369명
1940년:한국인 86명, 일본인 430명
경부보
1921년:한국인 268명, 일본인 718명
1940년:한국인 136명, 일본인 838인
순경
1921년:한국인 8160명, 일본인 10428명
1940년:한국인 8841명, 일본인 13475명
합계
1921년:한국인 8582명, 일본인 11568명
1940년:한국인 9072명, 일본인 1482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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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의 한국인 경찰의 수는 9072명,%로 약38%.

이 안에는 한국인의 사상자를 잡는 「특별 고등경찰관」도 다수 있었다.이른바 「특별 고등경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활약은, 아주 대단했다.

일제하의 한국인 특고경찰관의 죄와벌
광복 후도 생존, 정권의 앞잡이의 역할을 하는 일도

●일제 경찰의40%가 한국인

광복 직후, 한반도에는 2만 6677명의 일제 경찰관외가 있었다.그 중에서 한국인은 약40%의 1만 619명이었다.직급별로는, 현재의 치안감급에 해당하는 도경찰부장에게 한국인이 1명, 경시급(지금의 총경)에 21명(일본인 48명), 경부급(지금의 경정)에 105명(일본인 433명), 경부보급(지금의 경감)에 220명(일본인 790명)이었다. 나머지의 한국인 경찰관 1만 272명(일본인 1만 4775명)은, 비간부급의 순사 부장과 순경이었다…(생략)

●특별 고등경찰 출신의 면면

일제 시대에 경상남도의 보안 과장이었던 노·기스는, 광복 후도 경상남도의 경찰 부장을 맡아 체포 당시는 부산영도에 있는 회사의 관리인이었다.

돈 곧 기(당시 60세)는, 평안 북도의 고등 과장이었던 때, 오동진등 수많은 애국 지사를 체포, 옥사 시킨 혐의로 체포되었다.황해도의 형사 과장이었던 금극일(당시 62세)도 같은 날, 구속되었다.이성근은 황해도 해주 경찰서의 순경으로부터 시작되어, 평안 북도의 경찰부 고등 과장으로서 많은 독립 운동가를 잡아 지사에 영전해, 광복때는 매일신보의 사장이었다.동씨는, 후에 반민특재공판으로 「평안 북도의 고등 과장으로서 6년간 재직하고 있는 동안, 매년 약 100건(연루자 약 300명)의 사상 사건을 취급해, 만주 안동에서 독립단 간부 12명을 체포, 압송 해 처형시킨 사실이 있다」라고 진술했다.그는 「당시는 샹하이 임시 정부의 지령으로 국내에 잠입해, 치안을 착란 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내란죄로 처단 했다」라고 자백했다.

김 야스시 주석의 공소장은, 일제 시대의 고등 형사가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를 추측하는 자료이기도 하다.이 기소장에 의하면, 김 야스시 주석은 1912년, 조선 총독부의 경찰관 통역생으로서 출발해, 함경북도 웅기 경찰서, 평안 남도 코오요 만경찰서, 평양경 찰서등을 돌았지만, 1918년, 조선 총독부 헌병 총감부 고등 경찰과에 전직해, 본격적으로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게 되었다.김 야스시 주석은 1919년 9월 17일, 서울역전에 사이토 신임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의사를 체포해, 사형을 선고했다.동사건에 관여한 허형등 애국 투사도 그가 검거, 투옥했다.

그는 다음 해 7월 20일에는, 밀정 금진규를 이용해, 밀양 폭탄 사건의 주도자인 성재와 윤소류등을 체포하거나 어렵게 고문하거나 하고, 사건을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또, 1921년 10월에는 조선 의용단 사건의 주도자를 검거했다.

1923년, 김 야스시 주석은 한국인으로서는 최고 경찰직의 경시(현재의 총경급)에 승진해, 경기도경 형사 과장으로 임명되었지만, 곧바로 군수가 되었다. 련 카와·토미카와군수등을 거쳐 1938년에는 경남도 산업 부장이 되었다.여기서 그는 지원병 모병의 시험관을 겸무하면서 청년 25명을 출병시켰다고 한다…(생략)

그래서, 당시를 산 조선의 인민에게 있어서 「한국인 경찰관」은, 「일본인 경찰관」보다, 한층 더 무서운 존재였다.바꾸어 말하면, 「한국인 경찰관」=혐오 하는 똥 놈이었다는 것.

그들은, 제일선에서 한국인을 고문해, 자백을 꺼내는 것이 주체였기 때문이다.

일제하의 조선 경찰의 특징과 그 이미지

1920년 이후, 감옥의 제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근대적인 처벌의 구조도 전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법률상, 회초리 치는 것의 형이 폐지된 후도, 경찰서내에서는 당분간 회초리 치는 것의 형이 계속되었다.게다가 회초리 치는 것의 형은 아닌다고 해도, 고문의 형태로 경찰의 형벌은 계속 되었다.육체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주는 잔인한 형벌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양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오히려 고문은, 회초리 치는 것의 형에 비해 심문을 받는 사람의 고통이 보다 격렬하다고 하는 것이 세평이었다.

예를 들면 1921년, 전라남도의 이카다다리 경찰서에서는, 권총 일인분을 분실하면, 「무실의 양민(백성)을 용의자로서 수십 일간 구류해, 몇번이나 두드리면서 심문해, 그 만큼이 아니고, 이른바 용의자의 가족까지 심한 고문을 했지만, 결국, 충분한 증거를 얻지 못하고, 용의자의 가족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926년 12월에는, 1개월의 사이에, 황해도은률의 금복주재소와 경기도 시흥시 군자면주재소등에서 3건의 고문 치사 사건이 발생하는 등, 고문이 끊임 없이, 그것은 죽음을 가져올 만큼 잔인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문 사건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는 것은, 치사에 이르러 처음?`트 문제가 되어, 주목 대상이 되는 것이어, 대개의 고문 사건은 세상에 특별히 나타날 것도 없고, 어두운 곳에 사라져 버릴 만큼 절도 용의든 독립 운동의 혐의든, 경찰에 의한 고문은 항상 어렵게 행해졌다…(생략)



덧붙여서, 영화 마르모이의 소재가 된 「조선어 학회 사건」도 한국인 경찰 안·젼모크(창씨개명, 야스다)가 발단이었다.

경과와 결과

이러한 시대적 배경 중(안)에서 함흥 영생 고등 여학교의 학생, 박영옥이 기차안에서 친구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경찰관인 야스다 미노루에 발각되고, 조사를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의 경찰은, 조사의 결과, 여자 학생에게 민족주의의 감화를 준 사람이 서울에서 사전을 편찬 하고 있는 정태진인 것을 밝혀냈다.동년 9월 5일에 정태진을 연행해 조사해 조선어 학회가 민족주의 단체로서 독립 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 무리한 자백을 얻었다.


안·젼모크는, 전철로 조선어를 하는 한국인 여학생(박·욘 오크) 찾아내고, 경찰서에 데리고 가, 자백시켰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마르모이」에서는, 박·욘 오크를 잡는 「한국인 경찰관」에 대한 묘사는 없고, 악마, 마귀와 같은 일본인 경찰관의 묘사만이 있다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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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조선어 학회
캐치:일제 강점기, 말과 마음을 모은 한국어 사전
영화 타이틀:마르모이



요약 및 결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고문하고 있는 「 경찰관」안에 「한국인 경찰관」들도 많이 있었다.

●영화 마르모이의 소재가 된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한국인을 아프게 한 사람은 「한국인 경찰, 안·젼모크」였다.

●일제 시대, 한국인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은 제국주의의 피해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의 통치에 협력하고 있어, 제국이 외부에 확장하는에 따라 때에는 가해자의 차림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嘘をついて反日する劣等民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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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は朝鮮人に比べて数的に優勢だった。第二に、朝鮮人警察の幹部の割合は低く、日本人警察の幹部の割合は持続的に増大した。民族別に警察の階級別定員を調べた(表1)で示すように、各道の治安担当責任者である警察部長は日本人が独占したのをはじめ、警視と警部、警部補など、警察の上部組織では日本人が絶対優位を占めていた。これに対して、多くの朝鮮人は警察の最下部組織にいながら、朝鮮人と直接向き合い、総督府の政策の第一線の施行を担当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駐在所の巡査職を維持していた。

(表1)1921年、1940年 民族別・階級別警察定員
警察部長
1921年:朝鮮人 0人、日本人 13人
1940年:朝鮮人 0人、日本人 13人
警視
1921年:朝鮮人 14人、日本人 40人
1940年:朝鮮人 9人、日本人 70人
警部
1921年:朝鮮人 140人、日本人 369人
1940年:朝鮮人 86人、日本人 430人
警部補
1921年:朝鮮人 268人、日本人 718人
1940年:朝鮮人 136人、日本人 838人
巡査
1921年:朝鮮人 8160人、日本人 10428人
1940年:朝鮮人 8841人、日本人 13475人
合計
1921年:朝鮮人 8582人、日本人 11568人
1940年:朝鮮人 9072人、日本人 14826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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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下の朝鮮人警察の数は9072人、%で約38%。

この中には朝鮮人の思想者を捕まえる「特別高等警察官」も多数いた。いわゆる「特高」と呼ばれる人たちだ。

彼らの活躍は、ものすごかった。

日帝下の朝鮮人特高警察官の罪と罰
光復後も生存、政権の走狗の役割をすることも

●日帝警察の40%が朝鮮人

光復直後、韓半島には2万6677人の日帝警察官らがいた。そのうち、朝鮮人は約40%の1万619人だった。職級別では、現在の治安監級に該当する道警察部長に朝鮮人が1人、警視級(今の総警)に21人(日本人48人)、警部級(今の警正)に105人(日本人433人)、警部補級(今の警監)に220人(日本人790人)だった。 残りの朝鮮人警察官1万272人(日本人1万4775人)は、非幹部級の巡査部長と巡査だった…(省略)

●特高出身の面々

日帝時代に慶尚南道の保安課長だったノ・ギスは、光復後も慶尚南道の警察部長を務め、逮捕当時は釜山影島にある会社の管理人だった。

金直基(当時60歳)は、平安北道の高等課長だった時、呉東振ら数多くの愛国志士を逮捕、獄死させた疑いで逮捕された。黄海道の刑事課長だった金克一(当時62歳)も同日、拘束された。李聖根は黄海道海州警察署の巡査から始まり、平安北道の警察部高等課長として多くの独立運動家を捕まえて知事に栄転し、光復の時は毎日新報の社長だった。同氏は、後に反民特裁公判で「平安北道の高等課長として6年間在職している間、毎年約100件(連累者約300人)の思想事件を扱い、満州安東で独立団幹部12人を逮捕、押送して処刑させた事実がある」と供述した。彼は「当時は上海臨時政府の指令で国内に潜入し、治安を錯乱させようとする者は内乱罪で処断した」と自白した。

金泰錫の控訴状は、日帝時代の高等刑事がどのような活動をしたかを推測する資料でもある。この起訴状によると、金泰錫は1912年、朝鮮総督府の警察官通訳生として出発し、咸鏡北道雄基警察署、平安南道光陽湾警察署、平壌警察署などを回ったが、1918年、朝鮮総督府警務総監部高等警察課に転職し、本格的に独立運動家たちを弾圧するようになった。金泰錫は1919年9月17日、ソウル駅前で斎藤新任総督に爆弾を投げた姜宇奎義士を逮捕し、死刑を宣告した。同事件に関与した許炯ら愛国闘士も彼が検挙、投獄した。

彼は翌年7月20日には、密偵の金珍奎を利用し、密陽爆弾事件の主導者である李成宰と尹小龍らを逮捕したり、厳しく拷問したりして、事件を作るのに功を立てた。また、1921年10月には朝鮮義勇団事件の主導者を検挙した。

1923年、金泰錫は韓国人としては最高警察職の警視(現在の総警級)に昇進し、京畿道警刑事課長に任命されたが、すぐに郡守となった。 漣川・富川郡守などを経て1938年には慶南道産業部長になった。ここで彼は志願兵募兵の試験官を兼務しながら青年25人を出兵させたという…(省略)

それで、当時を生きた朝鮮の人民にとって「朝鮮人警察官」は、「日本人警察官」よりも、さらに恐ろしい存在であった。言い換えれば、「朝鮮人警察官」=嫌悪するクソ野郎だったということ。

彼らは、第一線で朝鮮人を拷問し、自白を引き出すのが主体だったからだ。

日帝下の朝鮮警察の特徴とそのイメージ

1920年以降、監獄の制度が本格的に展開され、近代的な処罰の仕組みも全面的に作動し始めたのだ。

法律上、むち打ちの刑が廃止された後も、警察署内ではしばらくむち打ちの刑が続けられた。さらに、むち打ちの刑ではないにしても、拷問の形で警察の刑罰は続いた。肉体的に極限の苦痛を与える残忍な刑罰という側面で、両者は共通点を持っていた。むしろ拷問は、むち打ちの刑に比べて尋問を受ける者の苦痛がより激しいというのが世評だった。

例えば1921年、全羅南道の筏橋警察署では、拳銃一丁を紛失すると、「無実の良民を容疑者として十数日間拘留し、何度も叩きながら尋問し、それだけでなく、いわゆる容疑者の家族までひどい拷問をしたが、結局、十分な証拠を得られず、容疑者の家族が死亡」する事件まで発生した。

1926年12月には、1ヵ月の間に、黄海道殷栗の金福駐在所と京畿道始興市君子面駐在所などで3件の拷問致死事件が発生するなど、拷問が絶えず、それは死をもたらすほど残忍に行われていた。

さらに、「拷問事件で世間の注目を集めるようになるのは、致死に至って初めて問題になり、注目の的になるのであり、大概の拷問事件は世の中に特に現れることもなく、暗闇に消えてしまうほど窃盗容疑であれ独立運動の疑いであれ、警察による拷問は常に厳しく行われた…(省略)



ちなみに、映画マルモイの素材となった「朝鮮語学会事件」も朝鮮人警察アン・ジョンモク(創氏改名、ヤスダ)が発端だった。

経過と結果

このような時代的背景の中で咸興永生高等女学校の学生、朴英玉が汽車の中で友人と韓国語で対話していたところ、朝鮮人警察官である安田稔に発覚して、取り調べを受けた事件が起きた。

日本の警察は、取り調べの結果、女子生徒に民族主義の感化を与えた人がソウルで辞典を編纂している丁泰鎭であることを突き止めた。同年9月5日に丁泰鎭を連行し取り調べ、朝鮮語学会が民族主義団体として独立運動を目的としているという強引な自白を得た。


アン・ジョンモクは、電車で朝鮮語を話す朝鮮人女子学生(パク・ヨンオク)見つけて、警察署に連れて行き、自白させた。

ところで、どういうわけか、この事件を背景に作られた「マルモイ」では、パク・ヨンオクを捕まえる「朝鮮人警察官」に対する描写はなく、悪魔、魔鬼のような日本人警察官の描写だけがある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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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板:朝鮮語学会
キャッチ:日帝強占期、言葉と心を集めた韓国語辞書
映画タイトル:マルモイ



要約および結論

●西大門刑務所歴史館で拷問している「チョッパリ警察官」の中に「朝鮮人警察官」たちもたくさんいた。

●映画マルモイの素材になった「朝鮮語学会事件」で朝鮮人を痛めつけた人は「朝鮮人警察、アン・ジョンモク」だった。

●日帝時代、朝鮮人は一方的に被害を受けた帝国主義の被害者でしかないと断定できるか?

●多数の朝鮮人たちは日本帝国の統治に協力しており、帝国が外部に拡張するに連れ、時には加害者の姿を帯びる場合も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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