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의 기원
우리나라에서 온돌이 언제부터 설치되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기록을 살피면 <구당서>에 기록된 장갱(長坑), <삼조북맹회편>의 캉 및 갱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에는 화갱(火坑)이라 하였고, 한국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난돌이라고 하여 이름이 각각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상의 것이 확실하게 온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추측해보자면 우선 함경북도 웅기지방의 청동기시대 움집에서 발견된 구들의 흔적을 예를 들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불확실한 단계의 자료일 뿐이다. 그러나 그때 구들의 구조법이 시험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 문헌 <구당서>에 “고구려인들은 겨울에 구덩이를 길게(장갱(長坑)) 파고 밑에서 불을 때서 따뜻함을 유지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구들을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적인 특색으로 표현한다.
オンドルの起源
我が国でオンドルがいつから設置され始めたかは確かにわからない. 記録を察すれば <旧唐書>に記録されたザングギャング(長坑), <サムゾブックメングフェピョン>のカング及びギャングソング(宋)国ソグング(徐兢)が使った <高麗道警>にはファギャング(火坑)といったし, 韓国の <東国理象国集>には難石だと言って名前がそれぞれ異なる. そうだから記録上の物がはっきりとオンドルだと言うことはできないが推測して見ようとするとまず咸境道雄気地方の青銅器時代穴蔵で発見された句たちの跡を例えることができる, しかしこれはまだ不確実な段階の資料であるだけだ. しかしその時句たちの構造法が試験されていたという事実自体は否認す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中国文献 <旧唐書>に “高句麗人たちは冬に窪みを長く(ザングギャング(長坑)) 波高下で火を炊いて暖かさを維持する”と言う記録が残っていて句たちを中国にはない高句麗的な特色で表現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