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역법으로 전해오는 貞享暦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우리나라 학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외국어
대 사학과 박성래교수(과학사 전공)는 최근 발간된 그의 저서 한국인
의 과학정신(평민사 간) 에서 1643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파견됐던
나산 박안기가 일본 천문학자 오카노이 겐테이에게 당시로
서는 가장 발달된 역법인 수시력법을 전수했다고 밝혔다. 일본인이
만든 최초의 역법 으로 알려진 貞享暦은 이 수시력법을 바탕으로 편찬됐
으며 1684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같은 사실은 현대 일본의 과학사 저서중 명저로 꼽히는
일본과학사(吉田光邦 지음) 나
일본의 천문학(중산무 지음) 등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들 저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중국의 역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었으나 북경중심의
중국역법이 일본에 맞지않아 고심해왔다는 것.
우선 일본인들은 가장
중요한 천문현상인 일식과 월식의 날짜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조선통신사 사신일행중 박안기의 직책은 제술관(제술관) 즉 학술담당관이었다.
그의 나이는 당시 36세로 약관에 진사급제를 한 인물.박안기는 사
신들이 에도(강호.지금의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천문학자 오카노이를
만나 그에게 수시력법을 가르쳐 주었다. 수시력법은 원나라때 편찬된 것
으로 1년을 365.245일로 정할 만큼 우수한 역법이었다. 더욱 중
요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가 천문학의 최고 전성기였다는 사실.이미 세종
때 수성 금성 등 7개의 움직이는 별을 관찰해 만든 칠정산 역법 을
펴냈으며 이 역법은 중국에서조차 수시력연구의 뛰어난 텍스트로 꼽히고
있었다.박안기로부터 최신역법을 전수받은 오카이노는 이를 그의 제자
시부카와 슈ㄴ카이(삽천춘해)에게 전하고 시부카와는 15년간의 연구끝에
이를 바탕으로 정향력을 완성, 1659년에는 일본 각지의 위도를 측
정하기에 이른다. 이에앞서 세종년간인 1442년 편찬된 칠정산역법
은 중국 고래의 동양역법을 담은 내편과 아라비아 역법을 설명한 외편의
두 권으로 돼있는데 우리는 이를 서울중심의 역법으로 발전시켜 사용해
왔다. “중국과 우리나라 아라비아 정도가 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게 당시 세계의 천문학 수준이었다”고 박성래교수는 전하면
서 “일본은 이를 2백년후에 받아들였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고대에 있던 천문의 전통이 조선에서는 없어졌다??????????
조선 세종 때 만든 七政算
중국 역법과 이슬람 태음력을 사용해 정확한 일식을 예측하였다
달력이 없다고 날조하는 일본 원숭이들
참고로 아것은 일본의 과학사를 저술한 사람의 저서들이다
일본놈들의 특징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위 발언을 한 원숭이는 자기 발언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KKKKKK
日本最高の暦法で伝えて来る貞享が朝鮮通信使で日本へ行った
我が国の学者の影響を受けて作られたという主張が申し立てられた. 韓国外国語
代史学科バックソングレギョス(科学社専攻)は最近発刊された彼の著書韓国人
の科学精神(平民社の間) で 1643年日本に朝鮮通信使に派遣された
羅山朴の中期が日本天文学者オカノ−イゲンテイに当時で
では一番発達された暦法である随時力法を伝授したと明らかにした. 日本人が
作った最初の暦法と知られた貞享はこの随時力法を土台に編纂される
ウであり 1684年から使われ始めた.
このような事実は現代日本の科学四著書中名著で数えられる
日本科学社(吉田光邦 作) 私
日本の布地文学(ズングサンム作) などに詳らかに紹介されている.
これら著書によると党市日本は中国の暦法をそのまま受け入れて使っていたが北京中心の
中国暦法が日本に当たらなくて苦心して来たということ.
まず日本人たちは仮装(家長)
重要な天文現象である和食と月食の日付をまともに合わ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ゾソントングジェントルマン使臣仲間中朴の中期の職責は製述官(製述官) すなわち学術担当官だった.
彼の年は当時 36歳で約款に陳謝及第を一人物.朴の中期は死
神々が江戸(強豪.今の東京)に泊まる間天文学者オカノ−イを
会って彼に随時力法を教えてくれた. 随時力法は元国時編纂されたこと
で 1年を 365.245日に決めるほど優秀な暦法だった. もっと中
要したことは当時我が国が天文学の最高全盛期だったという事実.もう世宗
時水性金星など 7個の動く星を観察して作った七井山暦法を
発行したしこの暦法は中国でさえ随時力研究のすぐれたテキストで数えられて
あった.朴の中期から最新暦法を伝授受けたオカイノ−はこれを彼の弟子
渋川シューカイ(サブチォンツンして)に伝えられシブカとは 15年間の研究末に
これを土台で丁香力を完成, 1659年には日本各地の緯度を側
決めるのに至る. これに先たち世宗年間の 1442年編纂された七井山役法
は中国鯨の東洋暦法を盛った内篇とアラビア暦法を説明した外便の
二人の圏になっているのに私たちはこれをソウル中心の暦法で発展させて使って
来た. "中国と我が国のアラビア位が和食と月食を正確に予測する
ことがあったことが当時世界の天文学水準だった"とバックソングレギョスは伝えれば
で "日本はこれを 2百年の後に受け入れたという話"と説明した
古代にあった天文の伝統が朝鮮では消えた??????????
朝鮮世宗の時作った 七政算
中国暦法とイスラム太陰暦を使って正確な和食を予測した
こよみがないと捏造する日本猿たち
参照でアゴッは日本の科学社を著わした人の著書たちだ
日本の人々の特徴が責任を負わないことだ
上の発言をした猿は自分の発言に対して責任を負わないだろうKKKK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