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의 피폭자 한국 원폭 피해자 협회에 의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한 한반도 출신자는 7만명으로, 이 중4만명이 사망. 2만 3000명이 귀국했다. 한국내에 생존하는 피폭자는 약 2000명으로, 중 480명이 합천에서 살고 있다.
한반도 출신 BC급 전범이란 식민지 지배하에서 징용 되어 동남아시아로의 포로 감시 등에 종사.포로에게의 학대가 있었다는 등으로서 전후에 소추되어148명이 유죄판결을 접수 23명이 형사 했다.주로 지도자층이 「평화에 대한 죄」를 범한 A급 전범으로 여겨진 것에 대해, BC급 전범은 「전쟁 범죄」 「인도에 대한 죄」를 범했다고 여겨진 현장의 사관이나 군속이 많았다.
한국인은 열광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니까 제2차 대전에서 일본병으로서 싸운24만 2000명의한국인 병사는 모두 지원병이었던 것이다.그 모집에는, 최대 50배의 지원자가 쇄도했다.당시의 신문은, 그 열기를 「병역 지원3천명을 돌파」등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국인 지원병 제도 실시가 발표되는이나 반도 동포의 사이에 일대 센세이션을 야기해, 음력 16일 밤밤부터 17일에 걸쳐 열성 흘러넘치는 지원자개와 인출 경성 헌병대, 경성 헌병 분대, 용산 헌병 분대의 접수는 문의의 전화나 지원자와의 응대로 다른 일은 전혀 손 대지 않는 모양이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남선판 1938년 1월 18일)
불과 수백명의 한국 소수파 한국 광복군을 진실의 역사와 왜곡해도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