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출신 BC급 전범이란 식민지 지배하에서 징용 되어 동남아시아로의 포로 감시 등에 종사.포로에게의 학대가 있었다는 등으로서 전후에 소추되어148명이 유죄판결을 접수 23명이 형사 했다.주로 지도자층이 「평화에 대한 죄」를 범한 A급 전범으로 여겨진 것에 대해, BC급 전범은 「전쟁 범죄」 「인도에 대한 죄」를 범했다고 여겨진 현장의 사관이나 군속이 많았다.
한국인은 열광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니까 제2차 대전에서 일본병으로서 싸운24만 2000명의
한국인 지원병 제도 실시가 발표되는이나 반도 동포의 사이에 일대 센세이션을 야기해, 음력 16일 밤밤부터 17일에 걸쳐 열성 흘러넘치는 지원자개와 인출 경성 헌병대, 경성 헌병 분대, 용산 헌병 분대의 접수는 문의의 전화나 지원자와의 응대로 다른 일은 전혀 손 대지 않는 모양이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남선판 1938년 1월 18일)
한국인 병사중 2만 2000명이 전사해,그 영혼은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지고 있다.그들중에는,육군 사관 학교나 육군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가 된 한국인도 있다.그 대표가, 육사를 나와 만주국군에 근무해, 중위까지 승진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이다.
朝鮮半島出身BC級戦犯とは 植民地支配下で徴用され、東南アジアでの捕虜監視などに従事。捕虜への虐待があったなどとして戦後に訴追され、148人が有罪判決を受け23人が刑死した。主に指導者層が「平和に対する罪」を犯したA級戦犯とされたのに対し、BC級戦犯は「戦争犯罪」「人道に対する罪」を犯したとされた現場の士官や軍属が多かった。
朝鮮人は熱狂的に志願した
だから第二次大戦で日本兵として戦った24万2000人の朝鮮人兵士はすべて志願兵だったのだ。その募集には、最大50倍の志願者が殺到した。当時の新聞は、その熱気を「兵役志願 三千名を突破す」などと伝えている。
朝鮮人志願兵制度実施が発表されるや半島同胞の間に一大センセイションを巻き起こし、十六日夜から十七日にかけて熱誠溢れる志願者がどつと繰出し京城憲兵隊、京城憲兵分隊、龍山憲兵分隊の受付は問合せの電話や志願者との応対でほかの仕事は全然手がつけられぬ有様だ。(『大阪朝日新聞』南鮮版1938年1月18日)
朝鮮人兵士のうち2万2000人が戦死し、その霊は靖国神社に祀られている。彼らの中には、陸軍士官学校や陸軍大学を卒業して、将校になった朝鮮人もいる。その代表が、陸士を出て満州国軍に勤務し、中尉まで昇進した朴正煕(朴槿恵元大統領の父)である。
わずか数百人の韓国少数派韓国光復軍を真実の歴史と歪曲しても国際社会では認められなか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