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 없었으면(모형가게가 모르는 세계)
요시나가 6년(1853년), 대장 머슈·페리 인솔하는 아메리카 합중국 해군 동인도 함대의 증기선 2척을 포함한 함선 4척이 일본에 래항했습니다.이른바 외국 함선 래항입니다.
다음 해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해, 그 앞으로 1855년에 초대 주일 영사의 하리스가 이즈의 시모다에 정착했습니다.하리스는 일본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일기에도 일본인을 칭찬해 칭하는 기술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리스를 가장 곤란하게 한 것은 식량 사정이었습니다.육식 중심의 서구인의 이미지는 누구든지가 가지는 것입니다만, 실은 「메이지 이전의 일본인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었다고 하고, 하리스의 아래에서는 때때로, 새나 저·록등의 고기가 닿아, 그 나름대로 입에 댈 기회가 있던 것 같습니다.
하리스가 손에 들어 오지 않고 골머리를 썩힌 것이, 어디에도 없는 「우유」.
대단한 우유를 좋아했던 하리스가 컨디션을 무너뜨렸을 때, 우유를 갖고 싶어했지만 손에 들어 오지 않고, 시녀의 길이 팔방으로 손을 다함 간신히 손에 넣고 타케토우에 들어갈 수 있어서 옮겨 먹였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그 가격은 9합8작( 약 1.76리터)으로 한냥 3 분 88문( 약 4만엔)과 매우 고가이고, 당시의 쌀가마니 3표분에 상당했다고 합니다.
우유를 공식으로 매매해 음용 한 기록은 일본에서는 이것이 처음으로, 시모다의 옥천사에는 이 에피소드에 유래한 「우유의 비」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일본에는 우유를 마시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분명히 일본에서도 나라시대에 우유를 졸여 만든 「다이고(다이고)」라고 하는 버터와 같은 것을 음식 한 기록이 있어요.
사물의 진짜 재미있음이나 진수, 최상의 가르침등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묘미 (참다운 즐거움)」이란, 유제품의 깊은 맛이 어원이 된 말입니다.
다이고와는 아마 몽골의 유목민으로부터 전해졌지만 같습니다만, 이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호족등의 약으로서 이용되어 서민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유는 완전 영양 식품으로서 알려져 님 들인 영양소에 충라고 있습니다.알기 쉬운 것이 칼슘.실은 곡류나 고기로부터에서는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어렵고, 사막 지대에서는 동물의 젖이나 혈액을 마시는 것이 주된 칼슘 섭취의 수단이었습니다.
대해 록황메시노 나물이나 대두에는 풍부한 칼슘이 포함되어 일본을 시작으로 한 동남아시아의 민족은 우유를 마실 필요가 없었겠지요.극론을 말하면, 된장국의 문화에는 우유가 불필요했던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유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지요.
우유에서는 님 들인 유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음용으로서의 우유는 물론, 요구르트에 치즈에 아이스크림, 버터나 생크림이 없으면 모두의 정말 좋아하는 케이크도 만들 수 없습니다.그 밖에도 님 들 더 과자나 음료품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당시의 일본에는 아직도 우유를 마시는 문화가 없었다고는 해도, 현대인에게는 필요 불가결한 우유.매일 다양한 유제품이 식탁이나 냉장고 안에 있는군요.
이러한 우유·유제품이 돌연 사라지거나 하면 이제(벌써), 매우.왜냐하면, 이봐요,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버터 부족의 뉴스.
있다 일 돌연 시간 여행 해 버리면, 모두의 정말 좋아하는 유제품이 하나도 없는 시대이기도 해.
만약, 우유가 없었으면
그것은, 당신의 모르는 세계.
당신의 집의 냉장고에는······
牛乳がなかったら(模型屋の知らない世界)
嘉永6年(1853年)、代将マシュー・ペリー率いるアメリカ合衆国海軍東インド艦隊の蒸気船2隻を含む艦船4隻が日本に来航しました。いわゆる黒船来航です。
翌年日米和親条約を締結し、その後1855年に初代駐日領事のハリスが伊豆の下田に住み着きました。ハリスは日本に対して非常に好意的だったと伝わっており、日記にも日本人を褒め称える記述が多くみられるそうです。
しかしそんなハリスを最も困らせたのは食糧事情でした。肉食中心の西欧人のイメージは誰しもがもつものですが、実は「明治以前の日本人は肉を食べない」というのは誤りだったそうで、ハリスのもとには時折、鳥や猪・鹿などの肉が届き、それなりに口にする機会があったようです。
ハリスが手に入らずに頭を悩ましたのが、他でもない「牛乳」。
大の牛乳好きだったハリスが体調を崩した際、牛乳を欲しがったが手に入らず、侍女のお吉が八方に手を尽くしようやく手に入れ、竹筒に入れて運んで飲ませたという記録が残っています。その価格は九合八勺(約1.76リットル)で一両三分八十八文(約4万円)と非常に高価で、当時の米俵3俵分に相当したといいます。
牛乳を公式に売買して飲用した記録は日本ではこれが初めてで、下田の玉泉寺にはこのエピソードに由来した「牛乳の碑」が建てられています。
そもそも日本には牛乳を飲む文化が存在しませんでした。たしかに日本でも奈良時代に牛乳を煮詰めてつくった「醍醐(だいご)」というバターのようなものを食した記録があります。
物事の本当のおもしろさや真髄、最上の教えなどの意味をなす「醍醐味」とは、乳製品の深い味わいが語源となった言葉なのです。
醍醐とはおそらくモンゴルの遊牧民から伝わったもののようですが、これは天皇を中心とする豪族などの薬として用いられ、庶民の口に入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牛乳は完全栄養食品として知られ様々な栄養素に充ちています。わかりやすいのがカルシウム。実は穀類や肉からではカルシウムを十分に摂取することが難しく、砂漠地帯では動物の乳か血液を飲むのが主なカルシウム摂取の手段でした。
対して緑黄食野菜や大豆には豊富なカルシウムが含まれ、日本をはじめとした東南アジアの民族は牛乳を飲む必要がなかったのでしょう。極論を言えば、味噌汁の文化には牛乳が不必要だったのだといえます。
では牛乳がなくなってしまったらどうなるでしょう。
牛乳からは様々な乳製品がつくられています。飲用としての牛乳はもとより、ヨーグルトにチーズにアイスクリーム、バターや生クリームがなければみんなの大好きなケーキだって作れません。他にも様々なお菓子や飲料品にも使われています。
明治維新当時の日本にはまだまだ牛乳を飲む文化がなかったとはいえ、現代人には必要不可欠な牛乳。毎日さまざまな乳製品が食卓や冷蔵庫の中にありますよね。
これらの牛乳・乳製品が突然消えたりしたらもう、たいへん。だって、ほら、憶えていませんか、バター不足のニュース。
ある日突然タイムトリップしてしまったら、みんなの大好きな乳製品が一つもない時代だったりして。
もし、牛乳がなかったら…それは、あなたの知らない世界。
あなたの家の冷蔵庫に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