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시마의 강치 멸종은 일본의 탓」 한국 주장에 영토관이 패널 전시, 불법 점거 직후 「수백마리 생식」
한국이 불법 점거하는 타케시마(시마네현 오키의 시마쵸)를 돌아 다녀, 영토·주권 전시관(도쿄도 치요다구)이 1954년의 무력 점거 직후에 수백마리의 니혼아시카의 생식이 확인되고 있던 것을 나타내 보이는 한국측의 기록을 패널 전시하고 있다.니혼아시카는 75년을 마지막으로 목격 정보가 끊어지고 있어 한국측에서는 일본인에 의한 무차별한 난획으로 멸종에 몰렸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패널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왜, 니혼아시카가 자취을 감추었는지, 냉정하고 학술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불법 점거중에 멸종이나
패널 전시는, 부모와 자식을 위한 여름휴가(방학) 이벤트의 미니 기획전 「동물 워칭!북방 시시마·타케시마·센카쿠 제도의 (안)중 또 」로, 9월 1일까지 소개되고 있다.
에도시대에는 요나고(현·톳토리현)의 상인이 타케시마에 도항해, 막부 공인으로 강치렵을 실시하고 있었다.메이지가 되면 오키(현·시마네현) 거주의 어업자, 나카이양사부로가 과당경쟁에 의한 강치의 감소를 염려해, 1904(메이지 37) 년, 정부에 타케시마의 대여를 신청했다.다음 해 1월에 타케시마는 시마네현에 편입되어 렵은 현의 허가제가 되었다.
메이지 후기에는, 연간 679 약 2800마리가 포획 되어 기름이나 가죽 제품으로서 귀중한 보물 되고 있었다.쇼와기가 되면 생포로 하고, 동물원이나 서커스에 팔고 있었다고 한다.타케시마의 강치렵은 앞의 대전 직전의 41년에 중단된다.
전후, 한국은 58년, 타케시마에 연안경비대를 상주시킨다.75년에 동섬에서 2마리가 확인된 것을 마지막으로 목격 사례가 끊어지고 있어 한국의 불법 점거가 계속 되는 중, 멸종했다고 보여진다.
한국의 주장은 한국의 기록에서도 무리가
한편, 한국에서는 「전쟁 전의 일본의 난획으로 전멸 했다」 등과 주창되고 있다.경상북도 독도 사료 연구회는 2014년, 「독도(타케시마의 한국명)의 강치를 멸망 시킨 것은 일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패널 전시는 강치에 대해서, 한국의 국립 해양 조사원이 13년의 보고서로 「1958년에 조금(200500마리 전후) 생존과 보고.보호 정책은 없고, 포획을 계속.75년의 마지막 목격 이후, 멸종했다고 추정」이라고 지적한 기록이나, 한국의 연구자가 78, 79년에 세계 자연 보호 기금(WWF)에 제출한 보고서로 「( 약 500마리의 강치가) 57년까지 독도(타케시마의 한국명)에 생식 하고 있었지만, 주둔한 무장 경비대에 우려를 이루어 이동해 버린 것 같다」라고 한 점을 포함시키고 있다.이 보고서는 「번식지의 회복에 가장 좋은 방법은 섬으로부터 경비대를 철퇴시키는 것이다」라고도 지적하고 있다.
패널은 이러한 한국측의 보고에 대해 「 「일본인이 강치를 멸종시켰다」라고 하는 주장은, 한국측의 기록에서 봐도 무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불법 점거 직후 「수백마리 생식」>>
또 한국인은 거짓말 했어?w
「竹島のアシカ絶滅は日本のせい」…韓国主張に領土館がパネル展示、不法占拠直後「数百頭生息」
韓国が不法占拠する竹島(島根県隠岐の島町)を巡り、領土・主権展示館(東京都千代田区)が1954年の武力占拠直後に数百頭のニホンアシカの生息が確認されていたことを示す韓国側の記録をパネル展示している。ニホンアシカは75年を最後に目撃情報が途絶えており、韓国側では日本人による無差別な乱獲で絶滅に追い込まれたという主張がある。パネルはこうした主張に対し「なぜ、ニホンアシカが姿を消したのか、冷静で学術的な議論が必要だ」と指摘する。
不法占拠中に絶滅か
パネル展示は、親子向け夏休みイベントのミニ企画展「どうぶつウォッチング!~北方四島・竹島・尖閣諸島のなかまたち~」で、9月1日まで紹介されている。
かつて、竹島はニホンアシカの一大繁殖地だった。
江戸時代には米子(現・鳥取県)の商人が竹島に渡航し、幕府公認でアシカ猟を行っていた。明治になると隠岐(現・島根県)在住の漁業者、中井養三郎が過当競争によるアシカの減少を懸念し、1904(明治37)年、政府に竹島の貸し下げを願い出た。翌年1月に竹島は島根県に編入され、猟は県の許可制となった。
明治後期には、年間679~約2800頭が捕獲され、油や革製品として重宝されていた。昭和期になると生け捕りにして、動物園やサーカスに売っていたという。竹島のアシカ猟は先の大戦直前の41年に中断される。
戦後、韓国は58年、竹島に沿岸警備隊を常駐させる。75年に同島で2頭が確認されたのを最後に目撃事例が途絶えており、韓国の不法占拠が続く中、絶滅したとみられる。
韓国の主張は韓国の記録でも無理が
一方、韓国では「戦前の日本の乱獲で全滅した」などと唱えられている。慶尚北道独島史料研究会は2014年、「独島(竹島の韓国名)のアシカを滅亡させたのは日本だ」と主張した。
今回のパネル展示はアシカについて、韓国の国立海洋調査院が13年の報告書で「1958年に少し(200~500頭前後)生存と報告。保護政策はなく、捕獲を継続。75年の最後の目撃以降、絶滅したと推定」と指摘した記録や、韓国の研究者が78、79年に世界自然保護基金(WWF)に提出した報告書で「(約500頭のアシカが)57年まで独島(竹島の韓国名)に生息していたが、駐留した武装警備隊に恐れをなして移動してしまったようだ」とした点を盛り込んでいる。この報告書は「繁殖地の回復にもっともよい方法は島から警備隊を撤退させることだ」とも指摘している。
パネルはこうした韓国側の報告について「『日本人がアシカを絶滅させた』という主張は、韓国側の記録からみても無理がある」と指摘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