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세계안의 일본인 38
희극왕의 절대인 신뢰를 얻은 일본인
희극왕, 찰리·채플린은, 생애로4도 일본 방문하고 있지만,1932년에 일본 방문했을 때, 일본을 방문하게 된 계기로 붙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채플린이 대단한 친일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채플린은 라후카디오·하안의 「괴담」을 통해 일본에 흥미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일본과 채플린을 결정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오랜 세월 , 채플린의 비서를 맡은 일본인, 타카노 토라시(18851971)이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타카노는15세 때에 도미해, 고학의 끝에1916년에 운전기사를 모집하고 있던 채플린에게 채용되었다.
타카노는 그 성실함으로 채플린의 절대인 신뢰를 얻었다.
타카노는 운전 뿐만이 아니라, 경리나 비서 등, 다양한 역할을 손재주가 있게 해냈다.
채플린은 자기 저서 중(안)에서 「타카노는 뭐든지 한다.간호사, 유모, 시종, 비서, 호위, 뭐든지 했다.그는 일본인으로, 나를 위해서는 만물장사였다」라고 적고 있다.
타카노의 일하는 태도에 감격한 채플린은, 사용인을 차례차례로 일본인으로 바꾸어 가장 많을 때는17명의 사용인 모두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타카노는 채플린의 유서속에서 상속인의 한 명으로 선택되는 만큼 절대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
에도막부 말기부터 메이지기에 일본 방문한 서양인들도 또, 일본인의 예절·친절·정직·명랑이라고 하는 덕목에 경탄 해, 칭찬의 말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인 자신이 모르면 안 되는 가장 중대한 일본의 진실의 하나이다.
한국인이 「선량」이라고 불리는 날은 오는지?
歴史と世界の中の日本人38
喜劇王の絶大な信頼を得た日本人
喜劇王、チャーリー・チャップリンは、生涯で4度来日しているが、1932年に来日した際、日本を訪問する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についてこう語っている。
「日本人は皆、正直で親切だ。何をやるに際しても信頼できる。そのため、日本人に非常に好感を持つようになった。やがて、こんな素晴らしい人々をつくり出している日本という国に行ってみたくなった」
チャップリンが大の親日家であったことはよく知られている。
チャップリンはラフカディオ・ハーンの『怪談』を通して日本に興味を持ってはいたが、日本とチャップリンを決定的に結び付けたのは、長年、チャップリンの秘書を務めた日本人、高野寅市(1885~1971)である。
広島で生まれた高野は15歳の時に渡米し、苦学の末に1916年に運転手を募集していたチャップリンに採用された。
高野はその誠実さでチャップリンの絶大な信頼を得た。
高野は運転だけでなく、経理や秘書など、さまざまな役割を器用にこなした。
チャップリンは自著の中で「高野は何でもする。看護師、乳母、侍者、秘書、護衛、何でもした。彼は日本人で、私のためには何でも屋だった」と記している。
高野の働きぶりに感激したチャップリンは、使用人を次々と日本人に変え、最も多い時は17人の使用人全てが日本人だったという。
高野はチャップリンの遺書の中で相続人の一人に選ばれるほど絶大な信頼を得ていた。
。
幕末から明治期に来日した西洋人たちもまた、日本人の礼節・親切・正直・明朗といった徳目に驚嘆し、称賛の言葉を惜しまなかった。
これが、日本人自身が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最も重大な日本の真実の一つ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