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1763년
당시 , 서구 문물을 재빨리 받아 들인 일본은, 막부 주도아래, 상공업은 끝없게 발달해, 에도 막부의 수도인 에도는, 인구 100만명에 임박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일본의 유명한 인물이며,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까지 영향을 미쳐, 동맥, 정맥, 신경, 연골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학 용어(당시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스기타 겐파쿠가, 해체 신서를 발행하는 약 10년전의 일
그 해,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의 일본에서는 난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다.
통신사를 맞이하는 일본측의 관계자중에서, 난학을 공부하고 있던 나카지마 쇼라고 하는 인물이, 통신사일행에 해부학에 대하고 의견을 요구했다.
그러자(면), 통신사에 동행한 한방의의 남·두민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의 나라의 학자들은, 기묘한 논설을 즐거운 듯이 이야기한다.인체를 잘게 잘라 아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이 하는 것이어, 잘게 자르지 않고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너는 유혹해지지 않게」
일본은 서양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배워 선진 문물을 도입해 에도시대 메이지기 포함 발전했다.
조선은 중화사상에 사로 잡혀 중국을 대국과 우러러봐 그 이외의 나라를 업신여겨 선진적이었던 일본 서양을 인정하지 않고 학문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그리고 2 세기도 지나지 않고 , 조선은 일본에 병합 되었다.
한국 역사 교과서 조선 통신사
時は1763年…
当時、西欧文物をいち早く受け入れた日本は、幕府主導の下、商工業は果てしなく発達し、江戸幕府の首都である江戸は、人口100万人に迫る世界で最も大きな都市だった。
日本の有名な人物であり、日本の明治維新にまで影響を及ぼし、動脈、静脈、神経、軟骨など、現在我々が使用する医学用語(当時は新造語)を作り出した杉田玄白が、解体新書を発行する約10年前のこと…
その年、朝鮮通信使が日本を訪れた。
当時の日本では蘭学が盛んに研究されていた。
通信使を迎えする日本側の関係者の中で、蘭学を勉強していたナカジマショウという人物が、通信使一行に解剖学について意見を求めた。
すると、通信使に同行した漢方医のナム・ドゥミンはこう話した。
「君の国の学者たちは、奇妙な論説を楽しそうに話す。人体を切り刻んで知ることは愚かな人間がすることであり、切り刻まずに知ることは、成人だけができることだ。君は惑わされないように」
日本は西洋の学問を積極的に学び先進文物を取り入れ江戸時代 明治期含め発展した。
朝鮮は中華思想にとらわれ中国を大国と崇めそれ以外の国を見下し先進的だった日本西洋を認めず学問を学ぼうとしなかった。それから2世紀も経たずに、朝鮮は日本に併合された。
韓国歴史教科書 朝鮮通信使
また、徳川幕府と李朝朝鮮との間で「朝鮮通信使」による交流があったことは知られているが、その通信使についても「……日本は朝鮮を文化の先進国と考え、使節を派遣するよう要請してきた。これに対し、朝鮮では通信使を派遣したが、……日本は通信使の一行をとおして先進学問と技術を学ぼうと懸命であった」(中学)、「徳川幕府は、先進文物を受け入れるために、……交渉を許可するよう懇請した」(高校)と書かれている。つまり、中世や近世でも、朝鮮は「先進学問と技術」をもつ先進国として描かれ、日本はその先進文物を「懇請」し、朝鮮はそれを「許可」する立場の国だったというわけである。要するに、ここに共通するのは朝鮮を「文化的優越者」と位置づけ、日本は「劣等」であるとの姿勢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