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의 주거 중에서도 수도 부근과 지방의 생활 차이, 같은 지역에서도 경제 사정 차이가 있었지만, 통일신라시대로 이행, 고구려 기술이 유입되면서 벽체의 견고화, 주거지 대형화, 배수처리 시설, 내부 공간 시설 분화, 석재, 점토로 건설된 ㄱ자형, T자형 온돌 시설의 거주지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었다.
복원된 통일신라시대의 귀족 주거
복원된 통일신라시대의 평민 주거
.이 그림은, 고려시대의 복원 그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전국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온돌형 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복원된 나라시대 일본의 평민 주거
나라시대의 일본은, 주거의 수준 뿐만 아니라, 이미 수백년 전부터 보급하고 있던 신라와 다르게, 牛耕과 철제 농기구조차 만족하게 보급할 수 없었다.
일본도 나라시대에는 백제의 선진 기술의 유입으로 인해 이전 시대보다는 생활의 사정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동시대의 신라와는 비교하기 힘들다.
참고 :
통일신라시대와 나라시대 첨단 기술
平民の住居の中でも首都近所と地方の生活差, 同じ地域でも経済事情差があったが, 統一新羅の時どおり移行, 高句麗技術が流入されながら壁体の堅固化, 住い大型化, 排水処理施設, 内部空間施設噴火, 石材, 粘土に建設された 字形, T字形オンドル施設の居住地が全国的に普及されていた.
復元された統一新羅時代の貴族住居
復元された統一新羅時代の平民住居
.この絵は, 高麗時代の復元絵だが, 統一新羅時代に全国に普及され始めたオンドル型家屋の姿を見せてくれている.
復元された奈良時代日本の平民住居
奈良時代の日本は, 住居の水準だけでなく, もう数百年戦から普及していた新羅と違うように,牛耕と鉄製農機具さえ満足に普及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日本も奈良時代には百済の先進技術の流入によって以前時代よりは生活の事情が好きになったと言うが, 同時代の新羅とは比べにくい.
参照 :
統一新羅時代と奈良時代先端技術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818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