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런 초기 보고서들에 종종 언급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이지마는 1901년에 쓴 글에서 한국인이 왜 신체적으로 강대한지에 대한 몇몇 일인들의 지론을 소개하고 있다. 미개해서 정신을 노역시키지 않아서라든가, 한국인의 생활풍습이 비위생적이어서 약한 자가 어려서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은 그들보다 미개한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신체가 크다는 것에 대해 당시 일본인들이 가졌던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인상기 수준의 글이 몇 편 있는데, 초창기 일본인들이 가졌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한성병원 이비인후과에 근무한 한 일인의사(石田誠述 1910)가 쓴 “오관감각으로 논급하는 한인”에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한인은 감각이 거의 야생동물 수준으로 뛰어나다고 언급하면서, 한인은 감각의 세계에서 생활하고 일본인은 사고에 의해 판단한다고 논평하였다.
일제 식민주의와 한국인의 몸에 대한 “인류학적” 시선
한국인 신체에 대한 일제 체질인류학자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비교문화 연구소
우생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해도 한국인이 피지컬 면에서 일본인보다 열등한다는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1937년 조선과 일본의 신장 차이
がこんな初期報告書たちにたびたび言及されていておもしろい. 例えば, イイジマは 1901年に書いた文で朝鮮人がどうして身体的に強大韓紙に対するいくつかの一人たちの持論を紹介している. 未開で精神を労役させアンアソとか, 朝鮮人の生活風習が非衛生的なので弱い者が幼くて皆死亡したからだというなどの説明は彼らより未開な朝鮮人が日本人より身体が大きいというのに対して当時日本人たちが持った複雑な感情をよく現わしている.
以外にも印象期水準の文が何便あるのに, 創始期日本人たちが持った朝鮮人に対する認識は漢城病院耳鼻咽喉科に勤めた一一人意思(石田誠述 1910)が使った “五官感覚に論及する韓人”に代表的によく現われている. 彼は韓人は感覚がほとんど野生動物水準ですぐれると言及しながら, 韓人は感覚の世界で生活と日本人は事故によって判断すると論評こんにちはだった.
日帝植民主義と朝鮮人の身に対する “人類学的” 視線
朝鮮人身体に対する日製体質人類学者たちの作業を中心に -ソウル大学校比較文化研究所
優生学籍に近付こうと思っても朝鮮人がフィジカル面で日本人より劣等するという資料は捜してみにくい.
1937年朝鮮と日本の身の丈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