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의 초기 개발진은 네이버(당시 NHN)가 2006년에 인수한 한국의 검색엔진 첫눈의 기술진이었고, UX 디자인을 담당한 이나가키 아유미(稲垣あゆみ)라는 일본인 개발자도 있었다. 당시 첫눈은 “한국의 구글”로 평가받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났는데 네이버에 흡수되면서 일부 인력은 일본 법인(당시 NHN 재팬)으로 넘어가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했다. 이들은 애초에 SNS 같은 개방형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2011년 대지진 이후 이재민의 통신 불편에 영감을 받은 이해진의 제안에 따라 카카오톡 같은 폐쇄형 커뮤니케이션[10] 서비스 개발로 선회했다.#
네이버(NHN)의 회장 이해진은 2011년 3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당시 일본 오사카시에 있었는데, 지진의 여파가 이해진이 있던 곳까지 왔고, 눈 앞의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으며 죽음의 위기까지 느꼈다고 한다. 지진 이후 통신 마비까지 왔고, 일본에 상주하는 임직원들의 안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있는 한국 직원들이 회사 측과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떠오른게 모바일 메신저였다고 한다.#
그렇게 이해진은 일본 시장을 공략할 모바일 메신저를 출시하기로 결심했고, 일본에 머물며 NHN 재팬에서 기획과 개발에 관한 전체적인 지휘를 했으며, 검색 벤처 기업 “첫눈”의 창업자이자 후에 “라인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신중호가 프로젝트를 직접 총괄하여 개발에 착수해 2011년 6월 라인이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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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회장이 만들라고 지시하고
한국인 신중호가 프로젝트 직접 총괄
그중 일본인 직원도 있었을 뿐인데
Line은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우기는 도둑 일본.kkk
ラインの初期開発チームはネイバー(当時 NHN)が 2006年に引き受けた韓国の検索エンジン初雪の技術陣だったし,UXデザインを担当したイナガキあゆみ(垣あゆみ)という日本人開発者もあった. 当時初雪は "韓国のGoogle"で評価を受けるほどに技術力がすぐれたがネイバーに吸収されながら一部人力は日本法人(当時 NHN ジャパン)で移って新しいサービスを構想した. これらは最初にSNS同じ開放型サービスを開発しようと思ったが, 2011年大震災以後罹災民の通信不便にお爺さんを受けたリ・ヘジンの提案によってカカオトック同じ閉鎖型コミュニケーション[10]サービス開発で旋回した.#
ネイバー(NHN)の会長リ・ヘジンは 2011年 3月東北地方太平洋海域地震当時日本大阪市にあったが, 地震の余波がリ・ヘジンがいた所まで来たし, 目の前の建物が搖れることを目撃したし死の危機まで感じたと言う. 地震以後通信麻痺まで来たし, 日本に常在する役人たちの安全に対して悩むようになったし, 帰国しないで日本に残っている韓国職員たちが会社側と便利に連絡を取り交わすことができる方法を思って浮び上がったのがモバイルメッセンジャーだったと言う.#
そのようにリ・ヘジンは日本市場を攻略するモバイルメッセンジャーを出市することに決心したし, 日本にとどまって NHN ジャパンで企画課開発に関する全体的な指揮をしたし, 検索ベンチャー企業 "初雪"の創業者と同時に後に "ラインのお父さん"とも呼ばれる愼重号がプロジェクトを直接統べて開発に取り掛かって 2011年 6月ラインが発売開始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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ネイバー会長が作りなさいと指示して
韓国人愼重号がプロジェクト直接総括
なかでも日本人職員もいただけなのに
Lineは日本人が作ったと言い張る泥棒日本.k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