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신공황후 삼한 정벌의 내용부터 보자.
仲哀天皇 9년(200년)부터 신공황후가 돌로 출산을 막고 삼한을 정벌한다는 내용이다.
200년경 당시의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마한의 辰王이 백제, 신라를 포함한 반도 남부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이다.
삼국사기와 중국의 역사서, 후한서, 삼국지 등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이다.
만약 야마토가 정말로 200년에 반도를 침공했다면, 한국이라는 국가는 반드시 등장했어야 한다.
하지만 일본서기에서는 한국, 마한이라는 나라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고구려, 백제, 신라만 등장한다.
심지어 일본서기에서는 삼한의 3개 나라는 마한과 辰韓, 弁韓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이렇게 3개의 나라가 삼한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서기의 삼한 정벌 내용은 200년 당시의 실제 기록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서기를 저술하는 8세기 당시에 저술자의 상상으로 창작한 판타지이기 때문인 것이다.
2-
삼한 정벌의 이 터무니 없는 내용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仲哀天皇 9년(200년)에 신라왕 波沙寐錦이 등장하며,
神功皇后 52년(252년)에 백제왕 근초고왕이 등장한다.
그런데,
신라왕 波沙寐錦은 45년~112년에 살았던 사람이고,
백제왕 근초고왕은 324년~375년에 살았던 사람이다.
시대가 전혀 맞지 않다.
년도에 오차가 있는 것을 넘어서,
생몰년이 무려 200년이나 차이나는 두 사람이, 일본서기에서는 같은 시기의 사람으로 등장한다.
백제왕 근초고왕은, 중국의 역사서 晉書에서도 372년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한국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는 완전히 일치하는 시대에 등장하므로, 교차검증 되는 실존 인물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자기 임의대로의 시대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착오의 레벨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설픈 거짓말로 판타지를 창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오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신공황후라는 사람 자체도 실존조차 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이다.
동시대 실존했던 히미코라는 야마토의 여왕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히미코는, 삼국사기와 중국의 역사서 모두에서 공통되게 등장하지만,
일본서기에는 이 히미코라는 실존 인물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창작된 가상의 사람들만 등장한다.
3-
중국도 일본에 조공하고 있었다.
일본서기에는 應神 37년(306년)에 吳가 조공하는 등에서, 중국이 일본에 조공을 보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조공을 보내고 책봉을 받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야마토였지만, 일본서기에서는 거꾸로 날조 되어 있다.
사실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吳와 야마토가 통교했다는 기록조차 전무하다.
吳와 야마토의 통교는 실제로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吳는 229년에 칭제를 했기 때문에 吳王의 아니라 황제이다.
애초에 306년에 吳는 없었다. 吳는 280년에 이미, 멸망했다.
순전히 일본인의 거짓말로 만들어낸 날조 창작의 기록.
일본서기의 내용은 역사 기록의 인용이 아니라 단순히 거짓말로 창작한 내용이라는 의미이다.
교차검증으로 일본서기가 얼마나 날조의 책인지 알수있는 사례 몇개만을 소개했지만,
이러한 사례들 이외에도 대부분의 내용들이 허구와 창작이다.
한국의 역사서는 출토되는 유물, 중국의 역사서와 거의 모든 부분이, 교차검증 되지만,
일본의 역사서는 출토되는 유물, 타국의 역사서와 거의 모든 부분이, 교차검증 되지 않는다.
이유인즉 일본은 원래 문자가 없었으며, 역사를 기록하는 체계가 없었다.
기록 이전의 역사들은, 일본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일본의 역사서는 없었으므로,
백제로부터 받은 백제의 역사서를 날조 인용해서 창작한 내용들이다.
일본의 역사 기록은 상당히 늦은 시기부터 시작된다. (아마 고분시대 후기부터)
그래서 일본서기의 내용은 후반부로 갈 수록 정확성이 조금씩 오르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서기라는 책 자체가 대대적인 역사 날조 사업을 위해 작성된 책인 만큼,
일본서기 후반부의 내용도 초반부의 창작 판타지의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거짓말과 윤색으로 가득찬 내용들이 보인다.
삼국사기가,
19세기에 출토된 광개토대왕 陵碑의 내용과 년도까지 일치하고 있을 정도로 교차검증 되며,
당대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와도 대부분 교차검증이 가능한 것과 일본서기는 완전히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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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 없는 거짓말과 날조 투성이의 판타지 책. w
1-
問題の神工皇后三韓征伐の内容から見よう.
仲哀天皇 9年(200年)から神工皇后が石で出産を阻んで三韓を征伐するという内容だ.
200年頃当時の韓半島の状況を見れば馬韓の 辰王が百済, 新羅を含んだ半島南部全体を支配していた時代だ.
三国史記と中国の歴史書, 後漢書, 三国志などから皆共通的に現われる内容だ.
もし大和が本当に 200年に半島を侵攻したら, 韓国という国家は必ず登場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し日本書紀では韓国, 馬韓という国は全然登場しないで, 高句麗, 百済, 新羅だけ登場する.
甚だしくは日本書紀では三韓の 3個国は馬韓と 辰韓, 弁韓ではなく,
高句麗, 百済, 新羅こんなに 3個の国が三韓だと言っている.
日本書紀の三韓征伐内容は 200年当時の実際記録を引用したのではなく,
日本書紀を著わす 8世紀当時に著述者の想像で創作したファンタジーのことだ.
2-
三韓征伐のこの途方もない内容をもっと詳らかによく見よう.
仲哀天皇 9年(200年)に新羅王 波沙寐錦が登場して,
神功皇后 52年(252年)に百済王近肖古王が登場する.
ところが,
新羅王 波沙寐錦は 45年‾112年に暮した人で,
百済王近肖古王は 324年‾375年に暮した人だ.
時代が全然当たらない.
年度に誤差があることを越えて,
生沒年がおおよそ200年も差がある二人が, 日本書紀では同じ時期の人で登場する.
百済王近肖古王は, 中国の歴史書 晉書でも 372年に登場する人だ.
中国の歴史書では韓国の歴史書である三国史記とは完全に一致する時代に登場するので, 交差検証になる実存人物なのに,
日本書紀では自分の任意どおりの時代に登場している.
これは単純手違いのレベルではなく, はじめから生半可な嘘でファンタジーを創作したことだからこの位に間違いがあるのだ.
実は神工皇后という人自体も実存さえしなかった仮想の人物だ.
同時代実存した卑ケフ呼という大和の女王とは完全に他人だ.
卑ケフ呼は, 三国史記と中国の歴史書皆で共通されるように登場するが,
日本書紀にはこの卑ケフ呼という実存人物は全然記録されていないで, 作り出された仮想の人々だけ登場する.
3-
中国も日本に朝貢していた.
日本書紀には 応神 37年(306年)に 呉が朝貢するなどで, 中国が日本に朝貢を送ったという内容の記録があるのに,
実際に朝貢を送って冊封を受ける方は中国ではなく大和だったが, 日本書紀では逆に捏造になっている.
実は中国の歴史書では 呉と大和が通交したという記録さえ全くない.
呉と大和の通交は実際では全然なかったはずだ.
そして 呉は 229年にチングゼをしたから 呉王のなく皇帝だ.
最初に 306年に 呉はなかった. 呉は 280年にもう, 滅亡した.
純然と日本人の嘘で作り出した捏造創作の記録.
日本書紀の内容は歴史記録の引用ではなく単純に嘘で創作した内容という意味だ.
交差検証で日本書紀がいくら捏造の本なのか分かる事例いくつのみを紹介したが,
このような事例たち以外にも大部分の内容が虚構と創作だ.
韓国の歴史では出土される遺物, 中国の歴史書とほとんどすべての部分が, 交差検証になるが,
日本の歴史では出土される遺物,他国の歴史書とほとんどすべての部分が, 交差検証にならない.
理由となると日本は元々文字がなかったし, 歴史を記録する体系がなかった.
記録以前の歴史たちは, 日本の歴史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日本の歴史ではいなかったので,
百済から受けた百済の歴史書を捏造引用して創作した内容だ.
日本の歴史記録はよほど遅い時期から始まる. (多分古墳時代後期から)
それで日本書紀の内容は後半部に行く収録正確性が少しずつ上がったりする.
しかし相変らず日本書紀という本自体が大大的な歴史捏造事業のために作成された本であるだけに,
日本書紀後半部の内容も初盤部の創作ファンタジーのレベルまではないとしても,
相変らず嘘と潤色でいっぱいになった内容が見える.
三国史記が,
19世紀に出土された広開土大王 陵碑の内容と年度まで一致しているほどに交差検証になって,
当代に編纂された中国の歴史書とも大部分交差検証のできたことと日本書紀は完全に差別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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途方もない嘘と捏造だらけのファンタジー本.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