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진실—전후 일본에서 건너 온 많은 일본산앵
재일 한국인들이 기증한 수만주의 벚꽃이 반도 전역에 퍼지고 있다
하나 더,벚꽃에 관해서 한국인들이 눈을 돌리고 있는 사실이 있다.현재, 한국에서 피어 있는 벚꽃의 상당수는 전후, 재일 한국인들에 의해서 주어진, 「일본산」의 벚꽃이다고 하는 점이다.1950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이기 때문에 황폐 한 조국의 산림을 소생하게 하려고, 일본에 있던 동포들이 많은 나무를 기증했지만, 그 중에서도 많이 주어진 것이 벚꽃이었던 것이다.여기는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아마, 일본에서 본 아름다운 꽃을 조국의 사람들에게 전나무키라고 주고 싶으면 바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 이 벚꽃아래에서 꽃놀이를 즐기는 한국인의 상당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벚꽃의 명소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봐도, 재일 한국인들의 공적을 인정해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해설을 대고 있는 자치체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수만주의 벚꽃이 전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 식수 되어 그 덕분에 현재, 한국인들이 벚꽃을 즐기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한 진실」과 다름없다.
나는, 매년봄이 되면, 한국이 벚꽃의 원산지 논쟁을 꺼내는 것을 볼 때마다, 이 도공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원산지」나 「기원」보다, 그 대상을 인정해 평가해, 사랑해 왔는지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에 생각되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식물의 DNA 검사의 결과를 꺼내 「소속」을 주장하는 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不都合な真実――戦後日本から渡ってきた多くの日本産桜
在日韓国人達が寄贈した数万株の桜が半島全域に広がっている
もう一つ、桜に関して韓国人たちが目を背けている事実がある。現在、韓国で咲いている桜の多くは戦後、在日韓国人達によって贈られた、「日本産」の桜であるという点だ。1950年に起きた朝鮮戦争のため荒廃した祖国の山林を蘇らせようと、日本にいた同胞たちがたくさんの木を寄贈したのだが、その中でも数多く贈られたのが桜だったのだ。ここは想像でしかないが、おそらく、日本で見た美しい花を祖国の人々にもみせてあげたいと願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在日韓国人による桜の木の寄贈については、古い新聞の記事などから相当数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1963年に民団東京商工会の許弼奭氏らが寄贈した日本産桜が7000株、1966年に片スゲ氏が鎮海に1万株、1971年民団埼玉県西部支部の李載東氏らがソウル市に2000株など、大量の桜が日本から韓国に渡っている。1960年以降に在日韓国人達によって寄贈された桜は6万株に達するという。そして、これらの桜の木が植えられた場所の多くは今、桜の名所となっている。
だが、今この桜の下で花見を楽しむ韓国人の多くはこの事実を知らずにいる。桜の名所を紹介する案内書をみても、在日韓国人たちの功績を認め、感謝の意を表すような解説を寄せている自治体はどこにもないからだ。
数万株の桜が戦後日本から韓国に渡り植樹され、そのおかげで現在、韓国人たちが桜を楽しんでいるという事実は、桜の原産地が韓国だと主張する韓国の立場から見ると、「不都合な真実」に他ならない。
少し話が飛ぶが、壬辰倭乱つまり、豊臣秀吉による朝鮮出兵の際に、朝鮮の陶工が数多く日本に捕虜として連行された。しかし、彼らのうちの相当数は終戦後、韓国側の捕虜と交換に半島に帰れることになったのだが、朝鮮へ帰国を拒否し、日本に残り陶工として根をおろした。商人や職人を蔑視する朝鮮とは異なり、日本では技術と努力に対し正当な評価が受けられたためだという。
私は、毎年春になれば、韓国が桜の原産地論争を持ち出すのを見るたびに、この陶工たちの話を思い出す。「原産地」や「起源」よりも、その対象を認め、評価し、愛してきたのかということの方が、よほど重要な問題に思えてならないからだ。植物のDNA検査の結果を持ち出して「所属」を主張することで、一体何が得られるというのだろう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