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배 초기의 서울
화상 클릭으로 확대 ↑서울 큰 길의 님 아이
화상 클릭으로 확대 ↑평양 노상에는 전철이 달리는
↑여고등 보통 학교
화상 클릭으로 확대 ↑서울의 조선 은행전
화상 클릭으로 확대 ↑경성역
↑남대문 거리
↑1937년에 서울에 개업한 정향나무가게 백화점.서울에는 이 그 밖에, 미코시·히라타·카즈신(한국계)등의 백화점이 있어 일본 내지의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시키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1936년의 서울, 남대문 거리.좌측이 상업은행.시영전차는 복선이 되어 있다.간판의 문자는 한가운데가 레이트 클레임(화장품의 이름), 우측이 기린 맥주.
화상 클릭으로 확대 ↑서울의 번화가, 혼쵸 2가의 상가.도쿄의 긴자에 상당하는 가근은, 가로등이 사라지는 야밤중까지 왕래가 끊어지지 않았다.
화상 클릭으로 확대 ↑평양의 황혼.
↑평양 부영업의 시내 전철.운임은 시내 일률적이고 5전.
화상 클릭으로 확대 ↑신흥 공업도시, 흥남.1942년 촬영.조선 질소비료·일본 마그네슘·조선 광업등의 공장이 차례차례로 진출했다.
화상 클릭으로 확대 ↑세계 최대급의 수력 발전소, 수풍댐. 당시 출력 세계2위의 댐에서, 조선 및 만주의 전력을 조달했다.
화상 클릭으로 확대 ↑수풍댐.발전용의 드래프트·튜브의 매입.
화상 클릭으로 확대 ↑1940년, 서울에 있던 조선 호텔의 썬룸.조선을 대표하는 호텔에서, 좌단의 여성은 무도가·최승희
↑日本支配初期のソウル
画像クリックで拡大 ↑ソウル大通りの様子
画像クリックで拡大 ↑平壌 路上には電車が走る
↑女子高等普通学校
画像クリックで拡大 ↑ソウルの朝鮮銀行前
画像クリックで拡大 ↑京城駅
↑南大門通り
↑1937年にソウルに開業した丁字屋デパート。ソウルにはこの他に、三越・平田・和信(韓国系)などの百貨店があり日本内地の流行を敏感に反映させながら競い合っていた。
↑1936年のソウル、南大門通り。左側が商業銀行。市電は複線になっている。看板の文字は真ん中がレートクレーム(化粧品の名前)、右側がキリンビール。
画像クリックで拡大 ↑ソウルの繁華街、本町2丁目の商店街。東京の銀座に相当する街筋は、街灯が消える夜半まで人通りが絶えなかった。
画像クリックで拡大 ↑平壌の夕暮れ。
↑平壌府営業の市内電車。運賃は市内一律で5銭。
画像クリックで拡大 ↑新興工業都市、興南。1942年撮影。朝鮮窒素肥料・日本マグネシウム・朝鮮鉱業などの工場が次々に進出した。
画像クリックで拡大 ↑世界最大級の水力発電所、水豊ダム。 当時出力世界二位のダムで、朝鮮及び満州の電力をまかなった。
画像クリックで拡大 ↑水豊ダム。発電用のドラフト・チューブの埋め込み。
画像クリックで拡大 ↑1940年、ソウルにあった朝鮮ホテルのサンルーム。朝鮮を代表するホテルで、左端の女性は舞踏家・崔承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