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패지서미도, 고 강시지
패전의 보고가 와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칙령이 발 다투어졌다.
패전의 보고 www
○좌의정박계: “좌군절제사박실대우마시마 패군시 소(호)〔잡아〕 한인송관동등 11명, 비지
우리 군의패배에 이른 경위를 숙지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중국에 돌려 보내 우리 나라의 약함을 보일 수는 없다
패배에 이른 경위 www
「응영 26년기해6월입 일본, 조선장리종무율전함2백 27소, 졸일만7천2백 85명, 도대마주여양군천우미노우라.주 방위군거지해변 불리.조선병도니이군, 분 토우게육지, 경진둔강옥.정무율 주 방위군, 도강악하.침시석공지.련전수일, 7월 첫하루,여좌군박송전대파지.조선병 낭패주해변승선, 정무사어부 방화.이소적선.사이토, 타테이시등 발병격지.적병대궤이환.아병전사망자백 23명.참적2 1500여급.」
時師敗之書未到,故降是旨
敗戦の報告が来ていなかったので、この勅令が発せられた。
敗戦の報告www
○左議政朴訔啓: "左軍節制使朴實 對馬島敗軍時所(護)〔獲〕 漢人 宋官童等十一名,備知我師見敗之狀,不可解送中國,以見我國之弱。" 右議政李原及卞季良、許稠等皆曰: "宜解送,以全事大之禮。" 上遣通事,往見官童等于中路,探問其所見。
わが軍の敗北に至った経緯を熟知しているのだから、彼らを中国に送り返してわが国の弱さを見せるわけにはいかない
敗北に至った経緯www
「應永二十六年己亥六月廿日、朝鮮將李從茂率戰艦二百二十七艘、卒一萬七千二百八十五人、到對馬州與良郡淺海浦。州兵拒之海濱不利。朝鮮兵到仁位郡、分道下陸、竟進屯糠獄。貞茂率州兵、到糠嶽下。侵矢石攻之。連戰數日、七月初一日、與左軍朴松戰大破之。朝鮮兵狼狽走海濱乘船、貞茂使海人放火。以燒賊船。齋藤、立石等發兵撃之。賊兵大潰而還。我兵戰死者百二十三人。斬賊二千五百餘級。」
朴松戰大破之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