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치 시대 인구가 2배 이상이 된 CHON
지능이 낮은 초등 학생이라도 압니다.식료 수탈 하면 기근이 일어나 아사자가 속출해 인구는 감소합니다.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간 식료 수탈
많은 희생자를 낳은 호로드모르는, 소련이 1929년부터 행한 농업 집단화(소련의 집단농장)의 시스템이 원인으로 되어 있다.우크라이나의 자영 농가(클럭)의 토지는 몰수되어 농민은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에 조직 되고 갔다.
수확한 곡물은 정부에 징수되어 외화 획득의 유효한 수단으로서 국외에 수출되었다.그러나, 그 수출량은 국내소비분이 부족하는 만큼 과잉으로, 풍족한 토양을 가지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부과된 수확고의 달성은 곤란했다.
더해 기후 불순도 겹쳐, 곡물의 생산량은 격감.식료가 바닥을 붙어 많은 농민이 아사하는 사태로 연결되었지만, 스탈린은 외화 획득을 위해서 기아 수출을 계속 실시했던 것이다.
한정된 농작물이나 식료도 징수된 사람들은, 새나 가축, 애완동물, 길가의 잡초를 먹고 굶주림을 견디고 있었다.그런데도 견딜 수 없게 되어, 마침내는 병사한 말이나 사람의 시체를 파내 먹어 티푸스등의 역병이 만연.
극한 상태가 계속 되어, 가끔 , 스스로가 식사를 얻게 되기 위해, 그리고 아이를 굶주림과 비참한 현상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를 죽여 먹기도 했다고 말한다.
기근에 의해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구의 20%(국민의 5명에게 1명)가 아사해, 정확한 희생자수는 기록되지 않기는 하지만, 400만에서 1450만명 이상이 죽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日本統治時代人口が2倍以上になったCHON
知能が低い小学生でも分かります。食料収奪したら飢饉が起こり餓死者が続出し人口は減少します。
ソ連がウクライナに行った食料収奪
多くの犠牲者を生んだホロドモールは、ソ連が1929年から行なった農業集団化(コルホーズ)のシステムが原因とされている。ウクライナの自営農家(クラーク)の土地は没収され、農民は集団農場と国営農場に組織されていった。
収穫した穀物は政府に徴収され、外貨獲得の有効な手段として国外に輸出された。しかし、その輸出量は国内消費分が不足するほど過剰で、恵まれた土壌を持つウクライナでも、課せられた収穫高の達成は困難であった。
加えて天候不順も重なり、穀物の生産量は激減。食料が底を付き多くの農民が餓死する事態へとつながったが、スターリンは外貨獲得のために飢餓輸出を行い続けたのだ。
限られた農作物や食料も徴収された人々は、鳥や家畜、ペット、道端の雑草を食べて飢えをしのいでいた。それでも耐えられなくなり、遂には病死した馬や人の死体を掘り起こして食べ、チフスなどの疫病が蔓延。
極限状態が続き、時には、自分たちが食事にありつくため、そして子どもを飢えと悲惨な現状から救うために、我が子を殺して食べることもあったと言う。
通りには力尽きて道に倒れた死体が放置され、町には死臭が漂っているという有様だった。当時は、飢饉や飢えという言葉を使うことも禁じられていた。
飢饉によってウクライナでは人口の20%(国民の5人に1人)が餓死し、正確な犠牲者数は記録されてないものの、400万から1450万人以上が亡くなったと言われ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