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1.청조 의 관방 학살 기록 자료

 

우선, 청조는 자신이 행한 학살에 대한 예고격인 자료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청세조실록] 17권 순치2년 6월 병인중의 기록입니다.

“이 포고령을 공표한 이후, 북경성 내외와 직속각성에서의 모든 백성은 10일 안에 변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이를 위반할 시,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으며,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변발령을 지켜서 투항하는 지역은 기존의 지위와 부를 보존하게 될 것이다. 만일 반항하는 지역은 대군을 출동시켜,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살륙할 것이다.”

청조는 1649년 사천성에서 또 다른 포고령을 발하였고 그 어감은 앞서와 유사합니다. “일반 백성과 반란군이 혼재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성주민을 죽이거나, 혹은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남겼다.”

청조의 다른 관방자료인 [동화록] 5권 순치원년조에는 “본조의 명령인 변발과 만주복식을 따르지 않는 자는 용서없이 죽인다.”
진강지부의 포고에 의하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변발을 하지 않으면전가족을 몰살시킨다.

만일 한 가족이 변발하지 않으면 부락 전체를 몰살시킨다.”고 하면서 반항자의 머리를 잘라, 전체 백성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순치 2년(홍광원년 1645년), 강년순무 토국옥은 “변발하고, 복장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왕조의 제일 중요한 정책이고, 모든 지역에 걸쳐서 실시되어야 한다.

만일 귀족, 군인,일반 백성 등이 자신의 머리를 보존하고자 하면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것이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면 머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남산은 옮길 수 있으나, 이 명령은 바뀔 수 없다.”

이상의 청조의 공식적인 자료에서 ‘전성을 도륙한다.’,’도륙을 실시한다.’,’죽이되 용서하지 않는다’,’전가족을 몰살시킨다’ 등의 흉악한 위협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하의 글에서 청조의 위협이 결코 입으로만 끝난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입니다.

2.청군 입관 전의 대학살

우선, 청군 입관 전, 요동지역 한족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의 기록이 초기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명9년 정월 , 누르하치는 9차 명령을 내려서, 소위 ‘무곡지인’이라 하여 곡식의 수확량이 5금두를 넘지 못하는 가난한 한족 인구를 적으로 삼아 사로 잡아서 관내로 돌려 보내게 하였습니다.

최후로 정월 27일 명령을 내려, 각지에서 조사된 이 한족인구들을 모두 살해하도록 했습니다. 즉, 공개적인 종족학살이었습니다.

천명10년 10월 3일, 누르하치는 한족을 비판하여 ‘간첩을 숨기고,굴욕을 겪는 데 익숙하며, 반란이 끓이지 않는다.’며 팔기의 각 패륵과 총병관으로 하여금 병사를 대동하여, 촌락에 한족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곧장 사살하도록 했습니다.

제 3자인 조선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3년 5월조에 요동인구의 참상에 대해 이렇게 써있습니다.

“비록 청이 요양을 획득했지만, 이 지역 주민중 이들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많이 변경을 넘어 왔다. 적이 크게 이르자 주민 중에는 변발을 원하지 않는 의로운 자는 거의 압록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3. 청조 입관 이후의 대학살

1) 청조관방자료 및 제3자의 자료

청조는 입관 이후, 자신들의 대학살을 적나라하게 인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순치 7년 2월 청의대산서총독 동양량이 이르길 “대동, 삭주, 훈원 삼성에서 이미 대학살로 인해 백성이 존재하지 않음”

청조의 자료 에 의하면, 순치 7년 11월 21일 모든 성주민을 도륙하여 겨우 5명의 범인만이 남아서 이들을 석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에 따르면, “성을 도륙하여 마주치는 것은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주대학살은 중립적인 제3자의 자료가 있습니다. 이태리소속 예수회 수도사 마르티니(1614~1661)가 기록한 에 따르면, “대학살은 11월 24일부터 시작하여 12월 5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여, 일률적으로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들은 다른 말은 결코 하지 않고, 단지 ‘죽여라, 이 반란자들을 모두 죽여라’고만 외쳤다.”
(두문개:53페이지, 중국인민대학출판사, 1885년 6월판)

네덜란드의 사신 요한 니어호프는 에서 “달단의 전군은 입성직후, 모든 성내는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모든 병사는 파괴를 시작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부녀, 아동, 노인의 울음소리는 끓이지 않았다.

11월 26일부터 12월 15일까지 각지의 거리에서 들리는 것은, ‘반란자들을 살해하라’는 소리였다. 도처에서 비명소리, 도살, 약탈이었고, 부자들은 목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저 무도한 학살자로부터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사도림 저, 이영칭 역 131페이지, 상해고적출판사, 1992년 12월판)



清に統治された中国人

1.清朝義官房虐殺記録資料



まず, 青鳥は自分が行った虐殺に対する予告格である資料を発表しました. その中に一番有名なのが [チォングセゾシルロック] 17冊悉歯2年 6月病因中の記録です.

“が包告領を露した以後, 北京性内外と直属覚醒でのすべての民は 10日中に弁髪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もしこれを違反する時, どんな言い訳も許容しないし, その対価は決して軽くないだろう.”

と同時に “弁髪領を見詰めて投降する地域は既存の地位と呼ぶ保存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もし反抗する地域は大軍を出動させて,すべてのものを焦土化させて,殺戮するでしょう.”

青鳥は 1649年四川省でまた他の包告領を発したしその語感は先立ってと似たり寄ったりです. “一般民と叛軍が混在して区分しにくい. それですべての城主民を殺すとか, あるいは男だけ殺して, 女は残した.”

青鳥の他の官房資料である [ドングファロック] 5冊悉歯元年組には “本組の命令である弁髪と満洲複式に付かない者は容赦なしに殺す.”
進講支部の包告によれば “家族中一人でも弁髪を夏至アンウミョンゾンがゾックを皆殺しさせる.

もし一家族が弁髪しなければ部落全体を皆殺しさせる.”と言いながら反抗者の髪を刈って, 全体民を恐怖に追いこみました.

悉歯 2年(洪光源年 1645年), 姜年かぶトグックオックは “弁髪して, 服装を変えることは新しい王朝の一番重要な政策で, すべての地域にかけて実施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もし貴族, 軍人,一般民などが自分の頭を保存しようとすれば髪の毛を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だし, 髪の毛を刈らなければ頭は残っていないだろう. 南山は移すことができるが, この命令は変わることができない.”

以上の青鳥の公式的な資料で ‘全盛を屠戮する.’,’屠戮を実施する.’,’殺すが許さない’,’全家族を皆殺しさせる’ などの凶悪な脅威を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ます. 以下の文で青鳥の脅威が決して口だけで終わったのではない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2.青軍入館の前の大虐殺

まず, 青軍入館の前, 搖れ地域漢族を対象にしたホロコーストの記録が初期文献に記録されています.

千名9年正月 , ヌルハチは 9次命令を下して, いわゆる ‘舞曲誌である’といって穀食の上がり高が 5グムドを過ぎることができない貧しい漢族人口を敵にして捕らえて管内で返すようにしました.

最後で正月 27日命令を下して, 各地で調査されたこの漢族人口たちを皆殺害するようにしました. すなわち, 公開的な種族虐殺でした.

千名10年 10月 3日, ヌルハチは漢族を批判して ‘スパイを隠して,屈辱を経験することに慣れて, 反乱が沸かさない.’と腕期の各ペルックと総病官にとって兵士を同行して, 里に漢族に会えば, 言葉で降りてゴッザング射殺するようにしました.

第 3者である朝鮮の記録によれば [朝鮮王朝実録] 光海君 13年 5ワルゾに搖れ人口の惨状に対してこんなに使っています.

“たとえ請いが療養を獲得したが, この地域住民中これらに付かない者等がたくさん変更を越えて来た. 少なく大きく早いで住民の中には弁髪がほしくない正義のある寝るほとんど鴨緑江に身を投げてたまらなかった”

3. 青鳥入館以後の大虐殺

1) 青鳥官房資料及び第3者の資料

青鳥は入館以後, 自分たちの大虐殺を赤裸裸に認めました. これは悉歯 7年 2月青衣大山書総督東洋量が早いのを “大同, サックズ, フンワン三星でもう大虐殺によって民が存在しない”

青鳥の資料によると, 悉歯 7年 11月 21日すべての城主民を屠戮してやっと 5人の犯人だけが残ってこれらを釈放させることを要求しているしによれば, “性を屠戮してでくわすことは皆殺した.”と記録しています.

光州大虐殺は中立的な第3者の資料があります. イタリア所属イエズス会修道士マーティーニ(1614‾1661)が記録したによれば, “大虐殺は 11月 24日から始めて 12月 5日まで続いた.

彼らは老若男女を問わなくて, 一律的に残酷に虐殺した. 彼らは他の言葉は決してしなくて, 団地 ‘殺しなさい, この反乱者たちを皆殺しなさい’それ位の叫んだ.”
(ドムンゲ:53ページ, 中国人民大学出版社, 1885年 6ワルパン)

オランダの使臣ヨハネニアビールホールはで “ダルダンの全軍は入城直後, すべての城内は悽惨な光景が起った.

すべての兵士は破壊を始めて, 次から次へ掠奪して, 婦女, 児童, 年寄りの泣き声は沸かさなかった.

11月 26日から 12月 15日まで各地の町で聞こえることは, ‘反乱者たちを殺害しなさい’と言う音だった. 諸所で悲鳴音, 屠殺, 掠奪だったし, 分限者は命のためにすべてのものを出して, あの無屠漢虐殺者からやっと逃げることができた.”(サドリムあの, イヤングチング役 131ページ, 傷害古跡出版社, 1992年 12ワルパ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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