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교육으로 세뇌하고 있는 탓으로 어떤 근거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일본이 한국 전쟁으로 9억 달러 돈을 벌었다고 맹신 하고 있는 것 w
일본의 고도 성장에 한국 전쟁은 대부분 영향 없는데 왜일까 한국 전쟁의 덕분으로 일본이 발전했다고 믿고 있는 w
일제 시대전에 일본은 이미 발전하고 있고, 최빈국의 한반도를 얼마나 투자해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w
그런데 일본은 전후 보상으로 한국에 8억 달러 지불했지만?9억 득을 본 우리 8억을 한국이 도둑 했군요 w
일본의 벌이는 1억 밖에 없잖아 w
그것이 한강의 기적이군요 w
자한국은 8억 달러나 지원되었는데 무엇으로 후진국인가 w
김종필(김·존 필) 인터뷰 (한일 국교 정상화)
「한강의 기적은 일본의 8억 달러로 모두 했다.원숭이로도 할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에 대해서,
일본의 원조의 덕분 님으로 원숭이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한일 기본 조약
김종필(김·존 필)이 말하는 교섭 내용(NHK 인터뷰)
대통령은 8억 달러 정도 받고 와라고 말하는 거에요.
나는 놀랐습니다.
당시의 일본의 외자 준비고가 14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숫자 위에서 실제로는, 그 반의 7억 달러 정도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었지요.
그리고 김종필과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의 회담을 했습니다.
돈 「자 말합시다, 한국측의 요구.
3억 달러 무상금(1965년)(당시 1 달러= 약 360엔)
2억 달러엔유상금(1965년)
3억 달러 이상 민간 차관(1965년)
이만큼 받고 싶다.
그랬더니 오오히라씨는 의자에서 뛰어 올랐어요.
오오히라 「터무니 없다!나에게는 그런 일 할 수 없습니다···」
돈 「아니, 할 수 있어요.」
현재, 서울은 춥기 때문에 정월은 일본에서 지내진다고 하는 김종필(김·존 필)씨.
적나라하게 당시의 한국에 의한 강청빌려의 실태를 밝혀 주었습니다.
일본의 전시중·전쟁 직후의 세대는, 이 지불을 위해 호화도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일했습니다.
덧붙여당시의 한국의 국가 예산은 3.5억 달러였다.
미국의 강한 압력도 있어, 일본은 이 금액을 결국 지불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대부분의 돈을 공갈협박, 강탈하고 근대화를 진행시켰을 것이었지만
불탄 들판이었다는 두의 일본에 순식간에, 시원시럽게 차가 나 버리는 일이 된다.
2.한국 ODA
(1998년도까지 실적.1996년의 OECD 가맹을 계기로 일본으로부터 ODA 졸업)
유상 자금 협력 6,455.27억엔
무상 자금 협력 47.24억엔
기술 협력 실적 239.94억엔
이 모두에 감사의 하나도 없는 나라에 자주(잘) 이만큼 원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는 은폐 되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있다.
3.전후 보상
전후 보상 무상 공여 1080억엔/차관 720억엔
이 그 밖에, 예금외 철도, 공장, 건축물, 더욱 국민 개인의 예금, 주택까지를 포함해,
당시의 계산으로 약 1조 1 천억엔을 조선에 두고 왔습니다.(당시의 대졸 첫월급이 약 2만엔)
일본의 외화 준비액수는 18억 미 달러인 것으로부터, 그 액의 방대함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 돈을 기로서 댐이나 고속도로를 정비한 한국은한강의 기적을 완수했다.
이러한 돈은, 본래, 한국 국민에게의 개인 보상을 하기 때문에(위해)의 돈이며, 한국 정부는 개인에게의 보상은 한국 정부가 대리로 실시하므로, 어쨌든 나라에 일괄로 지불하라고 말해 (듣)묻지 않았던 때문, 증거도 불충분하면서 한국 정부에 일괄로 지불한 금액이다.
이 안에는 북한의 분도 포함되어 있어 통일 후, 한국에서 북한으로 지불할 약속이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극히 일부의 얼마 안되는 금액이 지불된 것 봐로 한국 정부가 나라의 개발비용으로, 이 방대한 금액을 단기간으로 다 사용해 버렸던 것이다.
나라를 꼬박 살 수 있는 금액을 들여 개발했으니까
한강의 기적등 원숭이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4.통화 위기의 구제
한국의 통화 위기때, 348억 달러와
1,300억엔을 지원한 일본
일본은 한국의 최대의 원조국에서 한국을 경제 부흥시키기까지 막대한 원조를 해 왔습니다.
전회의 통화 위기때도 막대한 원조로 한국을 살렸습니다.
97년 11월, 금융개혁 법안의 불성립을 배경으로,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염려로부터 외국 금융기관의 자금 인상이 발생해, 이것에 의해 심각한 외화 부족을 초래하게 된 한국은 IMF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IMF,G7등은, 한국에 대한 총액 570억 달러를 넘는 지원(집일본은 100억 달러를 지원)을 결정.
그 후,100억 달러의 지원 앞당김이나일.미.유럽의 민간은행과의 단기 채무 218억 달러의 장기채무에의 전환등의 지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나라도,일본으로부터의 수입 결제를 위한 1,300억엔의 수출입 은행 융자(98년 5월 계약),한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30억 달러 상당한 수출입 은행 융자(김대중 대통령 방일시 합의) 등의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 210억 달러 |
세계 은행 | 100억 달러 |
아시아 개발은행 | 40억 달러 |
일본 | 100억 달러 |
미국 | 50억 달러 |
그 외 | 50억 달러 |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모두 이러한 지원은 은폐 해, 일본이 비협력적이었다고 알렸다.
IMF시, 비협력적이었던 일본
http://www.chosunonline.com/article/20060428000030조선일보
김영삼(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의 중국 방문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이것을 기회로(일본의 정치가의) 태도를 바로잡아 보인다」라고 발언했지만, 이것이 그 후, 자민당이 선거 공약에 「타케시마의 영유권 확립」을 포함시켜, 한일 어업 협정을 파기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는 것에 연결되었다고 하는 분석이 뿌리 깊다.또 1997년의 통화 위기때, 일본이 한국에 대해비협력적이었다고의 분석도 있다.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선도역에
김대통령의 국회 연설 전문
2002 월드컵배, 우호 한층 더 강고하게
일본 문화의 진출, 단계적으로 개방
김대중 대통령이 8일,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실시한 국회 연설은 다음과 같이.
◇◇◇◇◇
◆일본 경제 회복은 아시아의 기관차
「괴로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나는 이 자리를 빌리고, 재차, 일본의 적극적으로 성의가 가득찬 협력에 대해,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대로입니다.
작년의 12월 19일, 내가 당선했을 때, 우리 나라의 외채 총액은 실로 15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었습니다.쳐, 곧바로 반제해야 할 단기 외채가 230억 달러인 것에 대하고, 외화보유고는 불과 38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그야말로 국가 파산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외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일본은, 한국의 단기 채무 연장에 해당해, 그 3분의 1을 넘는 79억 달러를, 중장기 채무로 전환해 주셨습니다.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협력을 해 주신 것입니다.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이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입니다.우리 정부는, 외국의 투자가가 국내 투자가와 동일한 조건하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법률을 과감하게 개선했습니다.한국은 지금, 외국 투자가들이 안심하고, 자유롭게 기업활동이 생기는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의 투자가들이 이러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믿어 한국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주시도록,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와 아시아 경제에 있어서의 일본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강조 다 할 수 없습니다.나는, 일본의 구조개혁과 내수 진작 노력이 성공을 거두고, 일본 경제가 시급하게 회복해, 아시아의 경제위기 극복의 기관차가 되어 주시도록,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모두 강력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 양국에는 문맹율이 「제로」에 가까워, 높은 교육 수준과 근면성이 풍부한 국민이 있습니다.
우리 양국이 좋은 이웃, 좋은 친구끼리로서 손을 잡아, 21 세기를 개척해 나가는데, 극복할 수 없는 장해는 아무것도 없으면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1998.10.14 민단 신문 게재
IMF로 일본이 살려 주었다고 당시는 감사했었는데 수년 지나면 일본의 탓으로 IMF가 된 것이 되는 반일 국가의 세뇌 교육
4.통화 위기의 구제
한국의 통화 위기때, 348억 달러와
1,300억엔을 지원한 일본
일본은 한국의 최대의 원조국에서 한국을 경제 부흥시키기까지 막대한 원조를 해 왔습니다.
전회의 통화 위기때도 막대한 원조로 한국을 살렸습니다.
97년 11월, 금융개혁 법안의 불성립을 배경으로,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염려로부터 외국 금융기관의 자금 인상이 발생해, 이것에 의해 심각한 외화 부족을 초래하게 된 한국은 IMF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IMF, G7등은, 한국에 대한 총액 570억 달러를 넘는 지원(집일본은 100억 달러를 지원)을 결정.
그 후도100억 달러의 지원 앞당김이나일.미.유럽의 민간은행과의 단기 채무 218억 달러의 장기채무에의 전환등의 지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나라도일본으로부터의 수입 결제를 위한 1300억엔의 수출입 은행 융자(98년 5월 계약), 한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30억 달러 상당한 수출입 은행 융자(김대중 대통령 방일시 합의) 등의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 210억 달러 |
세계 은행 | 100억 달러 |
아시아 개발은행 | 40억 달러 |
일본 | 100억 달러 |
미국 | 50억 달러 |
그 외 | 50억 달러 |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모두 이러한 일본의 막대한 IMF 지원은 은폐 해, 일본이 비협력적이었다고 날조 해 알렸다.
IMF시, 비협력적이었던 일본
http://www.chosunonline.com/article/20060428000030조선일보
김영삼(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의 중국 방문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이것을 기회로(일본의 정치가의) 태도를 바로잡아 보인다」라고 발언했지만, 이것이 그 후, 자민당이 선거 공약에 「타케시마의 영유권 확립」을 포함시켜, 한일 어업 협정을 파기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는 것에 연결되었다고 하는 분석이 뿌리 깊다.또 1997년의 통화 위기때, 일본이 한국에 대해비협력적이었다고의 분석도 있다.
反日教育で洗脳しているせいで何の根拠も示さず日本が朝鮮戦争で9億ドル儲けたと盲信していることw
日本の高度成長に朝鮮戦争なんか殆ど影響無いのに何故か朝鮮戦争のお陰で日本が発展したと信じてるw
日帝時代前に日本は既に発展していて、最貧国の朝鮮半島をどれだけ投資して発展させたと思ってるのかw
ところで日本は戦後補償で韓国に8億ドル払ったのだが?9億儲かったうちの8億を韓国が泥棒したんだねw
日本の儲けは1億しか無いじゃんw
それが漢江の奇跡ですねw
じゃあ韓国は8億ドルも支援されたのに何で後進国なのか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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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泌(キム・ジョンピル)インタビュー (韓日国交正常化)
「漢江の奇跡は日本の8億ドルで全てやった。猿でも出来た」
漢江の奇跡について、
日本の援助のおかげ様で猿でも出来る仕事だった。
1.日韓基本条約
金鍾泌(キム・ジョンピル)が語る交渉内容(NHK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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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統領は8億ドルくらい貰ってこいと言うのですよ。
私はびっくりしました。
当時の日本の外資準備高が14億ドルくらいでした。
それもあくまでも数字の上で実際には、その半分の7億ドルくらいしか持っていなかったでしょう。
そして金鍾泌と大平正芳外相との会談が行われました。
金「じゃあ言いましょう、韓国側の要求。
3億ドル 無償金(1965年)(当時1ドル=約360円)
2億ドル 円有償金(1965年)
3億ドル以上 民間借款(1965年)
これだけ貰いたい。
そしたら大平さんは椅子から飛び上がりましたよ。
大平「とんでもない!私にはそんなことできません・・・」
金「いや、できますよ。」
現在、ソウルは寒いので正月は日本で過ごされるという金鍾泌(キム・ジョンピル)さん。
赤裸々に当時の韓国による強請たかりの実態を明かしてくれました。
日本の戦中・戦争直後の世代は、この支払いの為に贅沢もせずに必死に働いたのです。
なお、当時の韓国の国家予算は3.5億ドルであった。
アメリカの強い圧力もあり、日本はこの金額を結局払う事になる。
しかし、日本から殆どの金をゆすり、奪い取って近代化を進めたはずだったが
焼け野原だったはずの日本に瞬く間に、あっさり差をつけられてしまう事になる。
2.韓国ODA
(1998年度まで実績。1996年のOECD加盟をきっかけに日本からODA卒業)
有償資金協力 6,455.27億円
無償資金協力 47.24億円
技術協力実績 239.94億円
この全てに 感謝のひとつも無い国に よくこれだけ援助したものだと思う。
それどころか国民には隠蔽されて誰も知らないのである。
3.戦後補償
戦後補償 無償供与1080億円/借款720億円
この他に、預金のほか鉄道、工場、建築物、更に国民個人の預金、住宅までを含み、
当時の計算で約1兆1千億円を朝鮮に置いてきました。(当時の大卒初任給が約2万円)
日本の外貨準備額は18億米ドルであったことから、その額の膨大さが推し量れます。
この金を基として、ダムや高速道路を整備した韓国は漢江の奇跡を成し遂げた。
これらの金は、本来、韓国国民への個人補償をする為の金であり、韓国政府は個人への補償は韓国政府が代理で行うので、とにかく国へ一括で払えと言ってきかなかった為、証拠も不十分でありながら韓国政府へ一括で支払った金額である。
この中には北朝鮮の分も含まれており、統一後、韓国から北朝鮮に支払う約束になっている。
しかし、国民へはごく一部の僅かな金額が支払われたのみで韓国政府が国の開発費用に、この膨大な金額を短期間で使い切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国がまるまる買えるような金額をかけて開発したのだから
漢江の奇跡など猿でも出来る仕事だった
4.通貨危機の救済
韓国の通貨危機の時、348億ドルと
1,300億円を支援した日本
日本は韓国の最大の援助国で韓国を経済復興させるまでに莫大な援助をしてきました。
前回の通貨危機の時も莫大な援助で韓国を助けました。
97年11月,金融改革法案の不成立を背景に,韓国の金融システムに対する懸念から外国金融機関の資金引き上げが発生し,これにより深刻な外貨不足を来すこととなった韓国はIMFに支援を要請した。
韓国政府の要請に対し,IMF,G7等は,韓国に対する総額570億ドルを越える支援(うち日本は100億ドルを支援)を決定。
その後,100億ドルの支援前倒しや日米欧の民間銀行との短期債務218億ドルの長期債務への転換等の支援が行われるとともに,我が国も,日本からの輸入決済のための1,300億円の輸銀融資(98年5月契約),韓国経済活性化のための30億ドル相当の輸銀融資(金大中大統領訪日時合意)等の支援を行っている。
国際通貨基金 | 210億ドル |
世界銀行 | 100億ドル |
アジア開発銀行 | 40億ドル |
日本 | 100億ドル |
アメリカ | 50億ドル |
その他 | 50億ドル |
しかし韓国政府は国民に一切これらの支援は隠蔽し、日本が非協力的だったと報じた。
IMF時、非協力的だった日本
http://www.chosunonline.com/article/20060428000030朝鮮日報
金泳三(キム・ヨンサム)元大統領は1995年の中国訪問時、韓日両国の歴史認識問題について「これを機に(日本の政治家の)態度を正してみせる」と発言したが、これがその後、自民党が選挙公約に「竹島の領有権確立」を盛り込み、韓日漁業協定を破棄するなどの行動に出ることに繋がったとする分析が根強い。また1997年の通貨危機の際、日本が韓国に対し非協力的だったとの分析もある。
アジア太平洋時代の先導役に
金大統領の国会演説全文
2002W杯、友好さらに強固に
日本文化の進出、段階的に開放
金大中大統領が八日、
参議院本会議場で行った国会演説は次の通り。
◇◇◇◇◇
◆日本経済回復はアジアの機関車
韓国は、急速な産業化と高成長の過程で、政経癒着と官治金融が澎湃(ほうはい)し、世界経済の変化に適応しきれなかった結果、ついに外貨危機を迎えるところとなりました。そしてわが国民はいま、全面的な経済構造の調整に伴う苦痛を耐え忍んでいます。
昨年の12月19日、私が当選した時、わが国の外債総額は実に1550億ドルに達していました。うち、すぐに返済すべき短期外債が230億ドルであったのに対して、外貨保有高はわずか38億ドルに過ぎませんでした。それこそ国家破産の危機にひんしていたのでありました。
そのような外貨危機を克服する過程で、日本の支援が大きな力となりました。日本は、韓国の短期債務延長にあたり、その3分の1を超える79億ドルを、中長期債務に転換して下さいました。世界のどの国よりも、多くの協力をして下さったのであります。
「苦しい時の友人が真の友人」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私はこの席をかりて、改めて、日本の積極的で誠意のこもったご協力に対し、衷心より感謝の意を表する次第であります。
韓国が経済危機を克服する上で、何よりも切実なのが外国からの投資であります。わが政府は、外国の投資家が国内投資家と同一の条件下で活動できるよう、関連制度と法律を果敢に改善しました。韓国は今、外国投資家たちが安心して、自由に企業活動ができる国を造りつつあります。
私は、日本の投資家たちがこうした韓国政府の努力を信じ、韓国に対して積極的に投資を拡大して下さるよう、期待しております。
世界経済とアジア経済における日本の役割は、いくら強調しても強調しきれません。私は、日本の構造改革と内需振作努力が成功を収めて、日本経済が早急に回復し、アジアの経済危機克服の機関車となって下さるよう、心より期待しております。
われわれ両国は共に強力な人的資源を有しています。われわれ両国には文盲率が「ゼロ」に近く、高い教育水準と勤勉性に富んだ国民がいます。
われわれ両国が良き隣人、良き友人同士として手を握り、21世紀を開拓していくのに、克服できない障害は何もないと私は確信しています。
1998.10.14 民団新聞掲載
IMFで日本が助けてくれたと当時は感謝してたのに数年経つと日本のせいでIMFになったことになる反日国家の洗脳教育
4.通貨危機の救済
韓国の通貨危機の時、348億ドルと
1,300億円を支援した日本
日本は韓国の最大の援助国で韓国を経済復興させるまでに莫大な援助をしてきました。
前回の通貨危機の時も莫大な援助で韓国を助けました。
97年11月,金融改革法案の不成立を背景に,韓国の金融システムに対する懸念から外国金融機関の資金引き上げが発生し,これにより深刻な外貨不足を来すこととなった韓国はIMFに支援を要請した。
韓国政府の要請に対し、IMF、G7等は、韓国に対する総額570億ドルを越える支援(うち日本は100億ドルを支援)を決定。
その後も100億ドルの支援前倒しや日米欧の民間銀行との短期債務218億ドルの長期債務への転換等の支援が行われるとともに、我が国も日本からの輸入決済のための1,300億円の輸銀融資(98年5月契約)、韓国経済活性化のための30億ドル相当の輸銀融資(金大中大統領訪日時合意)等の支援を行っている。
国際通貨基金 | 210億ドル |
世界銀行 | 100億ドル |
アジア開発銀行 | 40億ドル |
日本 | 100億ドル |
アメリカ | 50億ドル |
その他 | 50億ドル |
しかし韓国政府は国民に一切これらの日本の莫大なIMF支援は隠蔽し、日本が非協力的だったと捏造して報じた。
IMF時、非協力的だった日本
http://www.chosunonline.com/article/20060428000030朝鮮日報
金泳三(キム・ヨンサム)元大統領は1995年の中国訪問時、韓日両国の歴史認識問題について「これを機に(日本の政治家の)態度を正してみせる」と発言したが、これがその後、自民党が選挙公約に「竹島の領有権確立」を盛り込み、韓日漁業協定を破棄するなどの行動に出ることに繋がったとする分析が根強い。また1997年の通貨危機の際、日本が韓国に対し非協力的だったとの分析も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