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말부터 일본이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를 욕심내며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선은 그런 일본과 3년 동안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고, 결국 일본은 1696년에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했었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693년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어업 행위를 하다가 조업권을 사이에 두고 일본인과 실랑이가 붙어 일본 본국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호키(伯耆)州 태수에게 한국인이 조선 영토에 갔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로 인해 에도 막부가 그를 조선으로 돌려보냈고, 1695년 12월 25일 돗토리번에 대한 조회를 통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 모두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돗토리번 답변서), 1696년 1월 28일 일본인들의 울릉도 방면 도해를 금지하도록 지시하게 되었다.
17世紀末から日本が独島を含んだ鬱陵島を欲張って葛藤を起こし始めた. 朝鮮はそんな日本と 3年の間熾烈に論争をしたし, 結局日本は 1696年に独島が朝鮮の地だと認めたが, ここには有名なエピソードがある. 1693年漁夫安竜福が鬱陵島で漁業行為をしている途中操業権を間に置いて日本人といざこざが付いて日本本国で引かれて行った. しかし彼はホッケー(伯耆)州 太守に韓国人が朝鮮領土へ行ったが何がムンゼニャであり力強く主張した. これにより江戸幕府が彼を朝鮮で返したし, 1695年 12月 25日ドットリボンに対する問い合わせを通じて “鬱陵島(竹刀)と独島(松都) 皆ドットリボンに属しない”と言う事実を確認した後(ドットリボン答弁書), 1696年 1月 28日日本人たちの鬱陵島方面図解を禁止するように指示するようにな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