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 협정때, 양국 모두 「개인 청구권은 미해결」이라는 인식」
등록:2023-04-06 20:27 수정:2023-04-07 01:33
[30년 경과 비밀 해제 외교 문서]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의 대통령부 정무 수석이었던 민·틀시크씨
1991년 한일 포럼으로 협정 체결 당시의 상황을 증언
5) 민충식(일한 협정 체결 당시 , 대통령 정무 수석 비서관)
○1965년의 이른바 「청구권」협정에 대해서, 일한 양국 정부간 및 국민 사이의 인식의 차이가 크다.
○또,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당시의 교섭 대표간이라도, 동협정은 정부간의 해결을 의미해,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암묵의 인식의 일치가 있었다.
당시 , 시이나 외상도 같은 견해였다고 (듣)묻고 있다.
○국제법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생각해야 할 단계이다고 생각한다.
6) 워르·틀혼 교수(서울 호세이 대학 국제법 교수)
아) 65해협정에 관한 설명
○65년 이전, 늦어도 65년 협정 체결시까지 끝나 있어야할 문제가 미해결인 채 남아 있는 것이 보상 문제이다.
○65년 협정은 당시 국내의 미묘하고 급박한 상황속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일응의 법적, 외교 마토가타식은 갖추어졌지만,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최종적이고 완전하게”해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최초부터 인식을 일치할 수 없었다.
6일, 한국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 해제 외교 문서」의 일부//한겨레사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을 주도한 양국의 교섭 대표가, 당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하는 증언이, 비밀 해제된 외교 문서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외교부가 6일에 공개한 「30년 경과 비밀 해제 외교 문서」에 의하면, 1991년 8월 3일부터 2일간에 걸쳐 도쿄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 포럼이 열려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에 대통령부 정무 수석 비서관이었던 민·틀시크씨가 출석했다.이 포럼은, 일본의 전후 처리 과정의 문제를 되돌아 보기 위해서 한국 강제 동원·원폭 피해자를 시작해 대만·말레이지아·필리핀 등 일본 정부에 의한 전쟁 피해를 받은 당사자가 모인 석이었다.
주일 한국 대사관이 정리한 민씨의 당시의 포럼으로의 발언을 보면, 「1965년의 이른바 「청구권」협정에 대해서, 한일 양국간 및 국민의 사이에 인식의 열림이 컸다」라고 해, 「또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라고 말하고 있다.계속해 「당시의 교섭 대표동안에서도, 동협정은정부간의 해결을 의미해,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과거일과 재일 코리안에 관한 전문가인 다나카 히로시 교수도, 포럼으로 「일본 정부는, 아시아 지역의 국가와의 보상 문제는 정부간에서 해결의 것으로 모두 종결했다고 하는 입장이지만,시베리아 억류 일본인 유족이 소련 정부로 향해 보상 문제를 제기했던 것에 대하고는 입장이 다른 등,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해 「일본 정부는, 1956년의 일소 공동 선언으로 배상·보상이 방폐되었지만,이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간의 배상이 방폐된 것이어, 개인의 권리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장·이지 기자 (문의 japan@hani.co.kr )
한일 청구권 협정의 쌍방 교섭 대표 「개인 청구권은 미해결」이라고 인식=한국 문서
2023.04.06 16:42
【서울 연합 뉴스】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의 교섭을 담당한 양국의 대표가 당시 , 동협정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공통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6일,한국의 외교 문서로 확인되었다.일본 정부는 현재, 청구권 협정에 의해 징용 문제는 모두 해결완료와의 입장을 관철해, 한국 대법원(최고재판소) 판결로 패소한 일본 기업에 의한 배상을 방해하고 있지만, 협정을 체결한 당시의 인식은 차이가 났다.
한국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 문서의 일부.한일 청구권 협정에 관한 원한국 대통령부 비서관의 발언을 한국 대사관이 정리한=(연합 뉴스)
한국 외교부는 이 날,30년이 경과해 비밀 지정이 해제된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이 안에,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에 청와대(한국 대통령부) 정무 수석 비서관이었던 민·틀시크씨의 발언이 기록되고 있다.
91년 8월에 도쿄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후 보상을 생각하는 국제 포럼에 출석한 동씨의 발언을 집계한 것으로, 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에 관계되어 「한일 양국의 정부간 및 국민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크다.또,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간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라고 있다.
한층 더 「당시의 교섭 대표동안에서도, 동협정은정부간의 해결을 의미해, 개인의 권리는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에
이러한 발언으로부터,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완전하게 소멸했다」라고 하는 현재의 일본 정부와는 다른 의견이었던 일이 방문한다.또, 한국의 윤 주석기쁨(윤·소크욜) 대통령이 지난 달의 내각회의에서 「
또, 92년 11월에 당시의 노태우(노·태우) 대통령이 쿄토에서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과 회담한 경위를 적은 문서도 일부 공개되었다.동년 1월에 미야자와씨가 방한했을 때, 수뇌 사이에 격식을 고집하지 않고 회담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었다.
요즘 한일간으로는 구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현안으로서 부상하기 시작하고 있었다.쿄토에서의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의 실무자가 회담 의제를 협의했을 때, 일본측은 양국간의 현안 해결을 위해 방일했다고 하는 인상을 주지 않게, 일반론으로서 채택하도록(듯이) 희망했다.이것에 대해 한국측은, 위안부 문제나 무역적자 문제라고 하는 현안이 존재하는 사실만은 간단하게 언급할 방향이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협정상은 한국측의 권리에 대해서도외교 보호권의 방폐에 머무르는으로부터,
협정만으로는 우리 나라 내법상은 한국측의 권리는 소멸하고 있지 않게 되므로」
덧붙여 일찌기 개인 청구권이 소멸해 완전 해결했다고 하는 입장이었던 것은, 한국 정부입니다.
「1965年韓日協定の際、両国ともに『個人請求権は未解決』との認識」
登録:2023-04-06 20:27 修正:2023-04-07 01:33
[30年経過秘密解除外交文書]
韓日請求権協定当時の大統領府政務首席だったミン・チュンシク氏
1991年韓日フォーラムで協定締結当時の状況を証言
5) 民忠植(日韓協定締結当時、大統領政務首席秘書官)
○1965年のいわゆる「請求権」協定について、日韓両国政府間および国民間の認識の差が大きい。
○また、個人の請求権が政府間で解決できるかどうかについても疑問が残る。
○当時の交渉代表間でも、同協定は政府間の解決を意味し、個人の権利は解決され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暗黙の認識の一致があった。
‐ 当時、椎名外相も同じ見解であったと聞いている。
○国際法が変化しているため、どうするのが正当なのか考えるべき段階であると考える。
6) ウォル・チュンホン教授(ソウル法大国際法教授)
ア) 65年協定に関する説明
○65年以前、遅くとも65年協定締結時までに終わっているはずの問題が未解決のまま残っているのが補償問題である。
○65年協定は当時国内の微妙で急迫した状況の中で締結されたため、一応の法的、外交的形式は整ったが、36年間の植民地支配に対する歴史的清算が"最終的かつ完全に"解決されたかどうかについては、最初から認識が一致できなかった。
6日、韓国外交部が公開した「30年経過秘密解除外交文書」の一部//ハンギョレ新聞社
1965年の韓日請求権協定締結を主導した両国の交渉代表が、当協定で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まで解決されるわけ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コンセンサスを形成していたという証言が、秘密解除された外交文書を通じて確認された。現在、日本政府は「請求権協定で強制徴用問題はすべて解決された」という態度を固守している。
外交部が6日に公開した「30年経過秘密解除外交文書」によると、1991年8月3日から2日間にわたり東京でアジア太平洋地域戦後補償国際フォーラムが開かれ、韓日請求権協定締結当時に大統領府政務首席秘書官だったミン・チュンシク氏が出席した。このフォーラムは、日本の戦後処理過程の問題を振り返るために韓国強制動員・原爆被害者をはじめ、台湾・マレーシア・フィリピンなど日本政府による戦争被害を受けた当事者が集まった席だった。
駐日韓国大使館がまとめたミン氏の当時のフォーラムでの発言をみると、「1965年のいわゆる『請求権』協定に対して、韓日両国間および国民の間で認識の開きが大きかった」とし、「また個人の請求権が政府間で解決できるかについても疑問が残る」と述べている。続けて「当時の交渉代表の間でも、同協定は政府間の解決を意味し、個人の権利は解決され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暗黙的認識の一致があった」として「当時、日本の椎名悦三郎外相も同じ見解だったと理解している」と述べた。
過去事と在日コリアンに関する専門家である田中宏教授も、フォーラムで「日本政府は、アジア地域の国家との補償問題は政府間で解決されたのですべて終結したという立場だが、シベリア抑留日本人遺族がソ連政府に向かって補償問題を提起したことに対しては立場が異なるなど、矛盾を示している」とし「日本政府は、1956年の日ソ共同宣言で賠償・補償が放棄されたが、これはあくまで国家間の賠償が放棄されたものであり、個人の権利は全く支障を受けないという立場だ」と指摘した。
チャン・イェジ記者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韓日請求権協定の双方交渉代表 「個人請求権は未解決」と認識=韓国文書
2023.04.06 16:42
【ソウル聯合ニュース】1965年の韓日請求権協定締結の交渉を担った両国の代表が当時、同協定が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まで解決す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共通の認識を持っていたことが6日、韓国の外交文書で確認された。日本政府は現在、請求権協定により徴用問題は全て解決済みとの立場を貫き、韓国大法院(最高裁)判決で敗訴した日本企業による賠償を妨げているが、協定を締結した当時の認識は異なっていた。
韓国外交部が公開した外交文書の一部。韓日請求権協定に関する元韓国大統領府秘書官の発言を韓国大使館がまとめた=(聯合ニュース)
韓国外交部はこの日、30年が経過し秘密指定が解除された外交文書を公開した。この中に、韓日請求権協定締結当時に青瓦台(韓国大統領府)政務首席秘書官だったミン・チュンシク氏の発言が記録されている。
91年8月に東京でアジア・太平洋地域の戦後補償を考える国際フォーラムに出席した同氏の発言をまとめたもので、65年の韓日請求権協定に関し「韓日両国の政府間および国民間で認識の違いが大きい。また、個人の請求権が政府間で解決され得るかに対しても疑問が残る」とある。
さらに「当時の交渉代表の間でも、同協定は政府間の解決を意味し、個人の権利は解決されるものでないことに暗黙的な認識の一致があった」とし、当時日本の外相だった椎名悦三郎氏も同じ見解だったとの認識を示した。ミン氏は国際法の変化に言及しながら「どうするのが正当なのか、考える段階だとみている」と述べた。
こうした発言から、当時の韓国と日本の政府が、「韓日請求権協定により個人の賠償請求権が完全に消滅した」とする現在の日本政府とは異なる意見だったことがうかがえる。また、韓国の尹錫悦(ユン・ソクヨル)大統領が先月の閣議で「韓日請求権協定は、韓国政府が個人の請求権を一括代理して日本の支援金を受領するとなっている」と発言したこととも異なる。
また、92年11月に当時の盧泰愚(ノ・テウ)大統領が京都で宮沢喜一首相と会談した経緯を記した文書も一部公開された。同年1月に宮沢氏が訪韓した際、首脳間で格式にこだわらず会談したいと発言していた。
このころ韓日間では旧日本軍慰安婦問題が懸案として浮上し始めていた。京都での首脳会談に先立ち韓日の実務者が会談議題を協議した際、日本側は両国間の懸案解決のため訪日したという印象を与えないよう、一般論として取り上げるよう希望した。これに対し韓国側は、慰安婦問題や貿易赤字問題といった懸案が存在する事実だけは簡単に言及する方向だと答えていた。
「協定上は韓国側の権利についても外交保護権の放棄にとど まるから、
協定だけではわが国内法上は韓国側の権利は消滅していな いことになるので」
なお、かつて個人請求権が消滅して完全解決したという立場だったのは、韓国政府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