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씨는 1998년에 세븐일레븐·재팬을 퇴사해 한국·서울에 건넌다.당시 코리아 세븐을 소유하고 있던 한국 롯데 그룹으로부터, 코리아 세븐의 재건을 부탁받은 일이다.코리아 세븐은 동국초의 편의점 체인이지만, 후발의 패밀리 마트나 LG그룹이 만든 LG25(현GS25)의 후진을 배 하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혼다씨는 현지에 부임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에, 지나친 후드의 수로 종류의 적음에 아연실색으로 한다.주먹밥을 사 먹어 보았는데, 온도가 너무 낮은 선반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차가워진 밥과 정체의 모르는 속재료로, 매우 기묘한 맛과 먹을 때의 느낌이 되고 있었다고 한다.일본에 있어서의 편의점의 성장을 지지한 것은, 주먹밥이나 도시락등의 후드의 충실했다.거기서, 재건을 위해서, 점포의 크리네스(청결함)와 점원의 프렌드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주먹밥을 개선해, 주력 상품으로서 밝히기로 했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후드가 빈약했는데는 이유가 있었다.한국에서는 「식은 것을 먹는 것은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으면 현지 편의점의 상품부가 믿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팔리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 두지 않는다.「어떻게 하면 팔릴까」를 생각하는 것은하지 않았다.
「식은 음식은 팔리지 않는다」라고는 말해도, 편의점 이외의 노점등에서 「김말이 스시나무」는 팔리고 있었다.혼다씨가 그것을 지적하면 「김말이 스시나무에서는 전문점에 진다」라고 반론한다.(이)라면, 전문점에 팔지 않은 주먹밥을 편의점에서 팔면 좋은 것은 아닐까.혼다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좀처럼 상품부는 내켜하는 마음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혼다씨는, 한국인에도 받아 들여지는 주먹밥의 개발을 진행시켜 나간다.전환기가 된 것은 「김」을 둘러싼 논의다.한국의 김은 일본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한국 김은 소금이나 기름으로 맛 붙여 된 것이 주류다.두께에도 얼룩짐이 있어, 딱딱한 먹을 때의 느낌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혼다씨는, 처음은 일본에서 히트 한 주먹밥의 맛을 고집해, 일본의 김을 사용하는 것을 주장.그에 대한 한국인 사원들은 한국 김을 사용해야 하는 것과 양보하지 않는다.
이 훤들악들의 논의가 「어차피 주먹밥은 팔리지 않는다」라고 무책임했던 한국인 스탭들을 뒤돌아 보게 했다.그들은 최고조에 달하는 논의에 참전하는 것으로, 어느새인가 「맛있는 주먹밥을 만든다」라고 하는 전제를 공유하는 된다.이 일체감이, 「주먹밥 붐」을 낳을 정도의 성공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결국, 논의는 양자의 절충안으로 결정되어, 맛청구서는 한국식, 먹을 때의 느낌은 한국과 일본이 좋은 곳의 믹스가 되었다고 한다.속재료에서도 양국의 좋은 점을 조합했다.이렇게 하고, 완전한 오리지날 더에 의리가 탄생.한국의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 CM를 친 것도 공을 세워, 코리아 세븐의 주먹밥은 폭발적인 매상을 기록하게 된다.
本多さんは1998年にセブン-イレブン・ジャパンを退社して韓国・ソウルに渡る。当時コリアセブンを所有していた韓国ロッテグループから、コリアセブンの立て直しを頼まれてのことだ。コリアセブンは同国初のコンビニチェーンだが、後発のファミリーマートやLGグループがつくったLG25(現GS25)の後塵を拝するなど、苦戦していた。
本多さんは現地に赴任し、ソウルで初めてコンビニに入ったときに、あまりのフードの数と種類の少なさに愕然とする。おにぎりを買って食べてみたところ、温度が低すぎる棚に置かれていたため冷え切ったご飯と得体の知れない具材で、とても奇妙な味と食感になっていたそうだ。日本におけるコンビニの成長を支えたのは、おにぎりや弁当などのフードの充実だった。そこで、立て直しのために、店舗のクリンネス(清潔さ)と店員のフレンドリーを徹底させるとともに、おにぎりを改善し、主力商品として打ち出すことにした。
韓国のコンビニでフードが貧弱だったのには理由があった。韓国では「冷めたものを食べるのはお金のない人」とみる人が多いと、現地コンビニの商品部が思い込んでいたからだった。どうせ売れないから店に置かない。「どうしたら売れるか」を考えることはしていなかった。
「冷めた食べ物は売れない」とはいっても、コンビニ以外の露店などで「海苔巻き」は売れていた。本多さんがそれを指摘すると「海苔巻きでは専門店に負ける」と反論する。ならば、専門店に売っていないおにぎりをコンビニで売ればいいではないか。本多さんはそう考えたが、なかなか商品部は乗り気にならなかったという。
それでも本多さんは、韓国人にも受け入れられるおにぎりの開発を進めていく。転機となったのは「海苔」をめぐる議論だ。韓国の海苔は日本のものとはだいぶ違う。韓国海苔は塩や油で味つけされたものが主流だ。厚さにもムラがあり、硬い食感を楽しむものだという。本多さんは、はじめは日本でヒットしたおにぎりの味にこだわり、日本の海苔を使うことを主張。それに対し韓国人社員たちは韓国海苔を使うべきと譲らない。
この喧々諤々の議論が「どうせおにぎりなんか売れない」と投げやりだった韓国人スタッフたちを振り向かせた。彼らは白熱する議論に参戦することで、いつの間にか「美味しいおにぎりを作る」という前提を共有することになる。この一体感が、「おにぎりブーム」を生み出すほどの成功につながったのだ。
結局、議論は両者の折衷案でまとまり、味つけは韓国式、食感は韓国と日本の良いところのミックスになったという。具材でも両国の良さを組み合わせた。こうして、まったくのオリジナルなおにぎりが誕生。韓国のコンビニで初めてテレビCMを打ったことも功を奏し、コリアセブンのおにぎりは爆発的な売上を記録することにな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