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자주(잘) 한국인은
「속국이라고 하는 실태는 없었던 니다!」

「책봉이라고 하는 것은, 속국과는 다른 니다!」

(이)라고 말하고 있는 하지만, 타국에서 보는 객관 인식은 어떨까?


 조선이라고 하는 국명은,은나라의 현인미자가, 주의 무왕에 의해서 조선에 봉고사에 근거하는 유서 있다 중국적인 호칭이기 위해, 코 타케시제는, 신왕조가 미자의 전통을 계승하는 「충실한 속국」이 되어, 스스로는 미자를 조선에 봉한 주의 무왕과 같은 켄군이 되고 싶다고 기원했다.따라서, 중국에의 사대주의를 국시로 하는 신왕조가, 주의 무왕이 조선에 봉한 미자의 계승을 의도하는 조선의 국호를 주청 한 것은 적절했다.


 조선 국가의 근본 대법인 「경국대전」 「예전」안에 사대적 내용을 덧붙여 그것을 국내법의 시스템으로서 실제로 운용했다.조선이기 때문에 정자들은, 사대 표현으로서 조공은 리의 당연한 일을 인정해 「오구니의 대국에 시봉 하고는, 확실히 조빙과 공헌의 의례를 보관 유지 할 것」 「조공은 신하의 응에 주해야 할의 일이든지」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16 세기에 주자학의 계통화가 진행되면, 사대의 자세는 보다 강화되어 가는 일이 된다.즉,책봉 체제를 명확하게 군신 관계라고 파악해 대의명분론을 기본으로 「사대는 군신의 몫, 시세에 관련되지 않고 성을 다할 뿐」이라고, 본래 보국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사대 정책 그 자체가 목적화 되게 된다.조선제비 행사였던 조헌은, 때의 명의 황제 만력제보다 알현을 받는 영예를 받아 대명제국의 일원(책봉국)으로서 세계 질서에 참가하고 있는 것에 감격해, 3궤9고두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되었다.또 이러한 영향은 이조의 내정면에도 나타나아키히토이면 비록 해적이었다고 해도 처형할 수 있지 않고, 명에 정중하게 수송해야 했다.그 때문에, 후기 WA구와 직접 대치한 지방의 무장들은 전투의 중에 일본인과 아키히토의 판별을 붙인다고 하는 난제에 노출되어 아키히토를 살해했다고 해서 처벌되는 사람조차 존재했다.


 노랑 후미오는,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인 것은, 「만국 공법」(국제법)이나 당시의 청과 이조 조선의 정치·군사·외교 관계의 현실에 대조하면 분명한 국제 상식이었다」로서, 「이조 조선의 말기에 등장한 개화파는, 청에의 사대를 그만두어 독립을 획득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대파(속국파)에 대항하는 「독립파」라고 칭해지고 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야와키 쥰코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민족 의식이 싹튼 것은,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입니다.일본 문화가 급격하게 들어 오는 것으로 일본인과의 차이를 알아, 스스로의 아이덴티티가 태어났습니다.그것까지 그들은 쭉, 세멘시나를 바라보는 사대주의, 코나카화주의 중(안)에서, 아무 혐의도 없고 세멘시나 문명의 범주의 아래에서 살아 왔습니다.이단자인 일본이라고 하는 거울을 얻고, 처음으로 「조선 민족」이 태어났습니다.츠쿠바대 대학원 교수·후루타 히로시 선생님은, 한층 더 한국이 「도화」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한일합방으로 세멘시나로부터 빼앗아져 갑자기 근대에 던져 일본의 패전 후는 38 도선에서 분단 되어 섬이 되었다.그 섬에서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기억이 풍화 해 민족주의가 대두합니다만, 원래 세멘시나와 일체화하고 있던 지역이, 갑자기 국민 국가가 되려고 하니 역사를 개찬할 수 밖에 방법이 없다.원래 자율성이 있어 스스로 독자적인 문화에 정통성이 있다라고 하는 거짓말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그 의미에서는, 지금, 한국은 역사 드라마라고 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건국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한중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에 있어도, 김일성 국가 주석(당시 )은, 조선에 있어서의 사대주의는 봉건 통치자 뿐만 아니라, 조선 혁명 운동가에게도 만연하고 있다고 해, 그 예로서 「조선 공산당의 승인 취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들은 파벌 항쟁을 반복해, 각각이 코민테른에 사대 해, 자파의 정통성을 주장한 것으로, 결국은 승인을 삭제되는 쓰라림에 있었다고 해,조선 혁명 운동을 성취시키려면  「주체」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주체 사상의 명칭은, 「사대주의의 극복」이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독립문

을 있어, 한국 우민들

이 문의 이름을 말해 봐라!(* ′초`) 킥킥


属国という実態は無かったニダ!!

よく韓国人は
「属国という実態は無かったニダ!!」

「冊封というのは、属国とは違うニダ!!」

って言ってるけれど、他国から見る客観認識はどうだろう?


 朝鮮という国名は、殷の賢人箕子が、周の武王によって朝鮮に封ぜられた故事に基づく由緒ある中国的な呼称であるため、洪武帝は、新王朝が箕子の伝統を継承する「忠実な属国」となり、自らは箕子を朝鮮に封じた周の武王のような賢君になりたいと祈念した。従って、中国への事大主義を国是とする新王朝が、周の武王が朝鮮に封じた箕子の継承を意図する朝鮮の国号を奏請したことは適切であった。


 朝鮮国家の根本大法である『経国大典』「礼典」の中に事大的内容を付け加え、それを国内法のシステムとして実際に運用した。朝鮮の為政者たちは、事大表現として朝貢は理の当然なることを認め、『小国の大国に侍奉するは、まさに朝聘と貢献の儀礼を保持すべし』『朝貢は臣下の応に做すべきの事なり』と述べている」と評している。


 16世紀に朱子学の系統化が進むと、事大の姿勢はより強化されていく事になる。つまり、冊封体制を明確に君臣関係と捉え、大義名分論を基に「事大は君臣の分、時勢に関わらず誠をつくすのみ」と、本来保国の手段に過ぎなかった事大政策それ自体が目的化されるようになる。朝鮮燕行使だった趙憲は、時の明の皇帝万暦帝より謁見を賜る栄誉を受け、大明帝国の一員(冊封国)として世界秩序に参画していることに感激し、三跪九叩頭しながら喜びの涙を流すまでになった。またこうした影響は李朝の内政面にも表れ、明人であればたとえ海賊であったとしても処刑することは出来ず、明へ丁重に輸送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のため、後期WA寇と直接対峙した地方の武将達は戦闘のさ中に日本人と明人の判別をつけるという難題に晒され、明人を殺害したとして処罰される者すら存在した。


 黄文雄は、「朝鮮が清国の属国であったことは、『万国公法』(国際法)や当時の清と李朝朝鮮の政治・軍事・外交関係の現実に照らし合わせれば明らかな国際常識だった」として、「李朝朝鮮の末期に登場した開化派は、清への事大をやめて独立を獲得しようとしたため、事大派(属国派)に対抗する「独立派」と称されていたことも忘れてはならない」と評している。


 宮脇淳子は、「初めて朝鮮半島の人々に民族意識が芽生えたのは、彼らは認めたくないとしても、1910年の日韓併合以降です。日本文化が急激に入ってくることで日本人との違いを知り、自分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が生まれました。それまで彼らはずっと、シナを仰ぎ見る事大主義、小中華主義の中で、何の疑いもなくシナ文明の範疇のもとで生きてきました。異分子である日本という鏡を得て、初めて『朝鮮民族』が生まれたのです。筑波大大学院教授・古田博司先生は、さらに韓国が『島化』したことを指摘しています。日韓併合でシナからもぎ取られていきなり近代に放り込まれ、日本の敗戦後は38度線で分断されて島になった。その島では、中国の属国だったという記憶が風化して民族主義が台頭しますが、もともとシナと一体化していた地域が、急に国民国家になろうと思ったら歴史を改竄するしか方法がない。もともと自律性があって自分たち独自の文化に正統性があるというようなウソをつくり上げるしかないとおっしゃっています。その意味では、今、韓国は歴史ドラマという手段で、新たな建国神話をつくり上げている最中だといえるのかもしれません」と指摘している。


 北朝鮮においても、金日成国家主席(当時)は、朝鮮における事大主義は封建統治者のみならず、朝鮮革命運動家にも蔓延しているとし、その例として「朝鮮共産党の承認取消問題」を挙げている。

 彼らは派閥抗争を繰り返し、それぞれがコミンテルンに事大し、自派の正統性を主張したことで、結局は承認を取り消される憂き目にあったとし、朝鮮革命運動を成就させるには「主体」を打ち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とした。北朝鮮の公式イデオロギーである主体思想の名称は、「事大主義の克服」という意味が込められている


独立門

をい、韓国愚民ども

この門の名前を言ってみろ!!(* ´艸`)クスク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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