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인생” 30대 캥거루족, 어쩌다 모친 살해범이 됐나[그해 오늘]
2017년 용인 어머니 일가족 잔혹 살해 “김성관”
경제적 무능 속에도 아내·처가엔 자산가 행세
어린시절 모친 지극정성으로 키웠지만 성인되고도 “돈달라”
모든 걸 “엄마 탓”…잔혹 범행 중에도 욕설 반복[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0월 26일 자정 무렵. 50대 여성 A씨의 여동생이 언니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자 경기도 용인 한 아파트를 찾아 119를 불러 문을 강제로 열었다. 문을 열자 깨끗한 상태의 평상시 집과 다르게 악취가 진동했다. 집안을 둘러보던 일행은 베란다에서 아연실색했다. A씨와 중학생 아들 B군이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이다.
숨진 지 며칠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시신은 흉기에 수십 회씩 찔린 상태였다. 베란다 바닥에 포개진 채 발견된 시신 위에는 밀가루에 뿌려져 있었으며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가 재혼 전 낳은 장남 김성관(1984년생)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쫓는 한편, 연락이 두절된 A씨의 남편(김성관의 계부) C씨를 찾아 나섰다.
CCTV 확인 결과 범행은 21일 오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성관이 해당 아파트를 21일 자정께 들어갔다가 5시간 후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 사이 A씨와 B군이 아파트에 들어가는 모습도 CCTV에서 확인됐으나 이들이 나오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그날 오후 차량 수색과 휴대전화 위치 추적 끝에 강원도 횡성의 한 콘도 주차장에 세워진 김성관 렌트 차량에서 C씨 시신도 발견했다.
경찰은 용의자인 김성관이 아내 및 자녀와 함께 범행 이틀 후인 23일, 자신이 영주권을 가진 뉴질랜드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현지 경찰에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김성관은 수사협조 이틀 후인 29일 오후(현지시간) 과거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 당시 벌인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
김성관이 체포되자 아내 정모(1985년생)씨는 자녀들과 11월 1일 자진귀국했다. 정씨는 곧장 살인공모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김성관은 범죄인 인도청구 재판을 거쳐 2018년 1월 11일 국내로 송환된 후 곧바로 체포돼 본격적인 수사를 받게 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던 김성관은 왜 이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낌없는 지원에도 어린시절부터 모친 ‘혐오’
김성관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을 말하는, 소위 ‘캥거루족’이었다. 김성관을 임신했을 때 남편(김성관 친부)과 사별한 A씨는 직접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김성관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관은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A씨는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중학생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주는 등 김성관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전혀 모자람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김성관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이 같은 지원에도 김성관은 어린 시절 자신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며 A씨에게 늘 불만이 있었다. 그 불만은 혐오로 변했고 A씨를 넘어 계부 C씨, 이부동생 B군을 향해서도 쌓여갔다. 모친에 대한 적개심과 별개로 김성관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A씨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해 돈을 받아갔다.
김성관은 제대로 된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오직 A씨에게만 경제적으로 의존하려 했다. 서른이 넘도록 김성관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며 취업 등과 관련해 거짓말을 계속하자 결국 A씨는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육아수당이 유일한 수입…외부엔 “100억 유산 있다”
경제적으로 아무 능력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성관은 2014년 결혼을 했다. 그는 아내 정씨와 정씨 가족 앞에서 자산가 행세를 했다. 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부장이며 100억대 자산가인 친할아버지로부터 곧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뉴질랜드 집을 판 돈이 뉴질랜드에 묶여있다는 얘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 2~3개월씩 두 차례 거주하며 정씨 등을 감쪽같이 속였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김성관의 말과 전혀 달랐다. 김성관 부부는 돈이 없어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처가에서 생활하길 반복했다. 생활비를 정씨 가족들에게 빌려 쓸 정도였다. 김성관 부부의 수입은 두 자녀 앞으로 나오는 양육수당이 유일했다.
이같이 궁핍한 생활이 계속되자 김성관의 장인 부부는 2017년 8월 “실제 자산가가 맞느냐”고 공개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성관은 “자산가인 친할아버지가 위독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그런데 친모인 A씨 가족이 유산을 나눠달라며 괴롭힌다”고 거짓말을 계속했다.
정씨 가족이 이를 믿지 않자, 김성관 부부는 결국 2017년 9월부터 처가를 나와 모텔 등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생활비가 필요해진 김성관은 지인에게 “자녀의 뉴질랜드 유학을 책임지겠다”고 속이고 1000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김성관에게 연락해 “10월 23일까지 돈을 반환하지 않으면 정식 수사가 진행된다. 출국금지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살고자 했던 김성관은 어떻게든 출국금지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 A씨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는 “돈이 없다. 미안하다”며 이를 거절했다.
사기 범행 뒷수습 위해 모친 일가 상대 강도살인
김성관은 이때부터 구체적 범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A씨 가족을 살해한 후 돈을 챙겨 가족들을 데리고 영주권이 있는 뉴질랜드로 출국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결혼 후 한 번도 A씨를 본 적이 없던 아내 정씨는 김성관의 말에 속아 막연히 A씨에 대한 두려움과 원한을 갖게 돼 범행에 동참했다.
거짓인생을 살던 김성관은 아내에게 결혼 직후부터 “A씨가 용인 깡패들을 풀어 우리 가족을 떼어놓고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당신을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겁을 주었다. 또 “A씨가 친할아버지 유산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김성관은 계획에 따라 2017년 10월 21일 정오께 A씨 아파트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그렇게 집에 숨어있던 김성관은 오후 2시께 집에 들어온 A씨와 B군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김성관은 A씨 시신에서 귀금속을 빼낸 것을 비롯해 통장과 체크카드를 챙겼다.
C씨를 집안으로 유도하기 위해 집을 치워놓은 김성관은 C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직접 전화해 불러낸 후 강원도 평창의 한 국도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C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싣고 자기 가족들이 머물던 콘도의 주차장에 유기했다.
김성관은 끔찍한 범행 중간 중간 수시로 상황을 아내 정씨에게 메시지로 전달했다. 메시지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온갖 욕설이 가득했다. 김성관은 범행 직후 A씨 계좌에서 사기 피해자 계좌나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등 약 1억3000만원 챙겼다.
법원 “사형 고려도 가능하지만 갱생여지 보여”
범행 후에도 김성관은 자신의 출국 전까지 범행 사실이 발각되지 않으려 A씨와 C씨의 휴대전화를 챙겼다. 전화가 올 경우 에둘러 대며 A씨 등의 사망 사실을 감췄다. B군 학교나 A씨 부부 소유 가게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여행을 갔다”거나 “자고 있다” 등의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이후 김성관은 2017년 10월 23일 오후 5시,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그토록 원하던 뉴질랜드행 항공기에 탔다. 영원한 도피를 꿈꿨던 김성관은 불과 6일 만인 29일, 과거 어학연수 시절 뉴질랜드에서의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먼저 자진귀국해 경찰에 살인 혐의로 구속된 아내 정씨는 “남편의 거짓말에 속아 A씨에게 화가 났던 것은 맞지만, 남편이 실제 살인을 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송환돼 뒤늦게 구속기소된 김성관도 “아내는 몰랐다”며 단독 범행이라고 강조했다. 김성관은 체포 직후엔 “말다툼 중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검찰은 김성관에게 강도살인과 사체 유기, 정씨에겐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은 김성관에 대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행으로서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하면서도 파렴치한 범행”이라며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정씨에 대해선 살인 혐의가 아닌 살인방조 혐의만 인정해 징역 8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김성관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며 항소했지만 2심은 “사형을 선고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갱생의 여지가 있어 사형 외에 다른 처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1심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
경제적 무능 속에도 아내·처가엔 자산가 행세
어린시절 모친 지극정성으로 키웠지만 성인되고도 “돈달라”
모든 걸 “엄마 탓”…잔혹 범행 중에도 욕설 반복[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0월 26일 자정 무렵. 50대 여성 A씨의 여동생이 언니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자 경기도 용인 한 아파트를 찾아 119를 불러 문을 강제로 열었다. 문을 열자 깨끗한 상태의 평상시 집과 다르게 악취가 진동했다. 집안을 둘러보던 일행은 베란다에서 아연실색했다. A씨와 중학생 아들 B군이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이다.
숨진 지 며칠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시신은 흉기에 수십 회씩 찔린 상태였다. 베란다 바닥에 포개진 채 발견된 시신 위에는 밀가루에 뿌려져 있었으며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가 재혼 전 낳은 장남 김성관(1984년생)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쫓는 한편, 연락이 두절된 A씨의 남편(김성관의 계부) C씨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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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용의자인 김성관이 아내 및 자녀와 함께 범행 이틀 후인 23일, 자신이 영주권을 가진 뉴질랜드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현지 경찰에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김성관은 수사협조 이틀 후인 29일 오후(현지시간) 과거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 당시 벌인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
김성관이 체포되자 아내 정모(1985년생)씨는 자녀들과 11월 1일 자진귀국했다. 정씨는 곧장 살인공모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김성관은 범죄인 인도청구 재판을 거쳐 2018년 1월 11일 국내로 송환된 후 곧바로 체포돼 본격적인 수사를 받게 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던 김성관은 왜 이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낌없는 지원에도 어린시절부터 모친 ‘혐오’
김성관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을 말하는, 소위 ‘캥거루족’이었다. 김성관을 임신했을 때 남편(김성관 친부)과 사별한 A씨는 직접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김성관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관은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A씨는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중학생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주는 등 김성관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전혀 모자람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김성관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이 같은 지원에도 김성관은 어린 시절 자신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며 A씨에게 늘 불만이 있었다. 그 불만은 혐오로 변했고 A씨를 넘어 계부 C씨, 이부동생 B군을 향해서도 쌓여갔다. 모친에 대한 적개심과 별개로 김성관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A씨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해 돈을 받아갔다.
김성관은 제대로 된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오직 A씨에게만 경제적으로 의존하려 했다. 서른이 넘도록 김성관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며 취업 등과 관련해 거짓말을 계속하자 결국 A씨는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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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아무 능력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성관은 2014년 결혼을 했다. 그는 아내 정씨와 정씨 가족 앞에서 자산가 행세를 했다. 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부장이며 100억대 자산가인 친할아버지로부터 곧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뉴질랜드 집을 판 돈이 뉴질랜드에 묶여있다는 얘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 2~3개월씩 두 차례 거주하며 정씨 등을 감쪽같이 속였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김성관의 말과 전혀 달랐다. 김성관 부부는 돈이 없어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처가에서 생활하길 반복했다. 생활비를 정씨 가족들에게 빌려 쓸 정도였다. 김성관 부부의 수입은 두 자녀 앞으로 나오는 양육수당이 유일했다.
이같이 궁핍한 생활이 계속되자 김성관의 장인 부부는 2017년 8월 “실제 자산가가 맞느냐”고 공개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김성관은 “자산가인 친할아버지가 위독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그런데 친모인 A씨 가족이 유산을 나눠달라며 괴롭힌다”고 거짓말을 계속했다.
정씨 가족이 이를 믿지 않자, 김성관 부부는 결국 2017년 9월부터 처가를 나와 모텔 등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생활비가 필요해진 김성관은 지인에게 “자녀의 뉴질랜드 유학을 책임지겠다”고 속이고 1000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김성관에게 연락해 “10월 23일까지 돈을 반환하지 않으면 정식 수사가 진행된다. 출국금지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살고자 했던 김성관은 어떻게든 출국금지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 A씨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는 “돈이 없다. 미안하다”며 이를 거절했다.
사기 범행 뒷수습 위해 모친 일가 상대 강도살인
김성관은 이때부터 구체적 범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A씨 가족을 살해한 후 돈을 챙겨 가족들을 데리고 영주권이 있는 뉴질랜드로 출국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결혼 후 한 번도 A씨를 본 적이 없던 아내 정씨는 김성관의 말에 속아 막연히 A씨에 대한 두려움과 원한을 갖게 돼 범행에 동참했다.
거짓인생을 살던 김성관은 아내에게 결혼 직후부터 “A씨가 용인 깡패들을 풀어 우리 가족을 떼어놓고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당신을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겁을 주었다. 또 “A씨가 친할아버지 유산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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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씨를 집안으로 유도하기 위해 집을 치워놓은 김성관은 C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직접 전화해 불러낸 후 강원도 평창의 한 국도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C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싣고 자기 가족들이 머물던 콘도의 주차장에 유기했다.
김성관은 끔찍한 범행 중간 중간 수시로 상황을 아내 정씨에게 메시지로 전달했다. 메시지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온갖 욕설이 가득했다. 김성관은 범행 직후 A씨 계좌에서 사기 피해자 계좌나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등 약 1억3000만원 챙겼다.
법원 “사형 고려도 가능하지만 갱생여지 보여”
범행 후에도 김성관은 자신의 출국 전까지 범행 사실이 발각되지 않으려 A씨와 C씨의 휴대전화를 챙겼다. 전화가 올 경우 에둘러 대며 A씨 등의 사망 사실을 감췄다. B군 학교나 A씨 부부 소유 가게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여행을 갔다”거나 “자고 있다” 등의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이후 김성관은 2017년 10월 23일 오후 5시,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그토록 원하던 뉴질랜드행 항공기에 탔다. 영원한 도피를 꿈꿨던 김성관은 불과 6일 만인 29일, 과거 어학연수 시절 뉴질랜드에서의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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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김성관에 대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행으로서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하면서도 파렴치한 범행”이라며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정씨에 대해선 살인 혐의가 아닌 살인방조 혐의만 인정해 징역 8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김성관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며 항소했지만 2심은 “사형을 선고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갱생의 여지가 있어 사형 외에 다른 처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1심 형량은 그대로 확정됐다.
リ・ジェミョンのように良い親を持った犯罪者もいるが...
"にせ物人生" 30台カンガルー族, 偶然に母親殺害犯になったか[その年今日の]
2017年容認お母さん一家族残酷殺害 "金城館"
経済的無能の中にも妻・妻家には資産家行世
小さい頃母親真心で育てたが大人されてからも "ドンダルだと"
あらゆること "ママのせい"…残酷犯行の中にも悪口繰り返し[イーデイリーハングァン犯記者] 2017年 10月 26である夜の十二時頃. 50代女性 Aさんの妹さんがお姉さんと何日目連絡にならないで京畿道容認したアパートを尋ねて 119を歌って門を強制で開いた. 門を開くときれいな状態の普段家と違うように悪臭が震動した. 家を見回した仲間はベランダで色を失った. Aさんと中学生息子 B君が殺害されたまま発見されたのだ.
死んでから何日が経ったように見える死体は凶器に数十回ずつ突かれた状態だった. ベランダ底に重ねられたまま発見された死体の上には小麦粉に振り掛けられていたし毛布が覆われていた. 申告を受けて捜査に取り掛かった警察は Aさんが再婚の前生んだ長男金城館(1984年生まれ)を有力な容疑者に見て行方を追う一方, 連絡が途絶された Aさんのご主人(金城館の継父) Cさんを探して出た.
CCTV 確認結果犯行は 21である午後に発生したことに推定された. 金城館が該当のアパートを 21である夜の十二時頃入って行ってから 5時間後出る姿が捕捉された. その間 Aさんと B君がアパートに入る姿も CCTVで確認されたが人々の出る姿は出なかった. 警察はその日午後車捜索と携帯電話位置追跡あげく江原道横城の一コンド駐車場に止められた金城館レンタ車で Cさん死体も見つけた.
警察は容疑者である金城館が妻及びお子さんと一緒に犯行二日後人 23である, 自分が永住権を持ったニュージーランドに出国したことで確認した. 逮捕令状を発行されて現地警察に捜査協助を要請した. 金城館は捜査協助二日後人 29である午後(現地時間) 過去ニュージーランドで語学研修当時した節度疑いで逮捕した.
金城館が逮捕すると妻定期会(1985年生まれ)さんはお子さんたちと 11月 1日自ら帰国した. チョン氏はゴッザング殺人公募疑いで拘束されて裁判に越された. そして金城館は犯罪人引導請求裁判を経って 2018年 1月 11である国内に送還された後ゴッバで逮捕して本格的な捜査を受けるようになった.
一家庭の仮装(家長)と同時に二名のお子さんを持っていた金城館はどうしてこのような無惨な犯行をやらかしたのだろう.
惜しみない支援にも小さい頃から母親 ‘嫌悪’
金城館は親に経済的に寄り掛かる 2030を言う, いわゆる ‘カンガルー族’だった. 金城館を姙娠した時夫(金城館親父)と死別した Aさんは直接経済活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幼い時代から金城館に経済的支援を惜しまなかった.
金城館は幼い時代から母方のお婆さんと一緒に暮したから Aさんは息子に常にすまない心を持って借しまず支援した. 中学生時代ニュージーランドで留学を送ってくれるなど金城館は幼い時代経済的に全然足りなさない生活ができた. Aさんは金城館が二十の歳になるまで待ってから再婚をして新しい家庭を立てた.
が同じ支援にも金城館は幼い時代自分をまともに面倒を見てくれなかったと Aさんに常に不満があった. その火だけは嫌悪に変わったし Aさんを超えて継父 Cさん, 二部弟(妹) B君を向けても積もった. 母親に対する敵がい心と別個で金城館はおとなになった以後にも Aさんに持続的に経済的支援を要求してお金をもらって行った.
金城館はまともにできた経済活動もしないでただ Aさんにだけ経済的に寄り掛かろうと思った. 三十が過ぎるように金城館が遊蕩した生活を引き続いて就業などと係わって嘘を続くと結局 Aさんは経済的支援を切ってしまった.
育児手当てが唯一の収入…外部には “100億遺産ある”
経済的にどんな能力がない状況だったが金城館は 2014年結婚をした. 彼は妻チョン氏とチョン氏家族の前で資産家になりすました. 一外国係企業の韓国支部長で 100億台資産家である親お爺さんからすぐ遺産を継がれる予定だと言った. 同時にニュージーランド家を売ったお金がニュージーランドに縛られているという話もした. ニュージーランドで 2‾3ヶ月ずつ二度居住してチョン氏などをまんまと欺いた.
しかし現実の生は金城館の言葉と全然違った. 金城館夫婦はお金がなくて多くの地域を転転している途中妻家で生活するのを繰り返した. 生活費をチョン氏家族たちに借りて使うほどだった. 金城館夫婦の収入は二人のお子さん前に出る養育手当てが唯一だった.
このように貧しい生活が続くと金城館のしゅうと夫婦は 2017年 8月 “実際資産家が当たるのか”と公開的に疑心の目つきを送った. しかし金城館は “資産家である親お爺さんが病勢が悪くてすぐ帰るようだ”と “ところで親母である Aさん家族が遺産を分けてくれと言って苦しめる”と嘘を続いた.
チョン氏家族がこれを信じないで, 金城館夫婦は結局 2017年 9月から妻家を出てモテルなどを転転し始めた. 生活費が必要になった金城館は知人に “お子さんのニュージーランド留学を責任負う”と欺いて 1000満員を取ってから被害者から告訴にあった. 事件を受け付けた警察は金城館に連絡して “10月 23仕事までお金を返還しなければ正式捜査が進行される. 出国禁止されることができる”と知らせた.
家族たちと一緒にニュージーランドで住もうとした金城館はどうしても出国禁止を阻まなくちゃいけないと言う考えをするようになった. そしてまたお母さん Aさんに何回助けを要請した. しかし Aさんは “お金がない. すまない”とこれを断った.
詐欺犯行善後策ために母親一家相手強殺
金城館はこの時から具体的犯行計画を立て始めた. Aさん家族を殺害した後お金を取りそらえて家族たちを連れて永住権があるニュージーランドに出国するという計画だった. 結婚手厚い番(回)も Aさんを見た事がなかった妻チョン氏は金城館の言葉にだまされて漠然と Aさんに対する恐ろしさと恨みを持つようになって犯行に同参した.
偽り人生を暮した金城館は妻に結婚直後から “Aさんが容認やくざたちを解いてうちの家族を取り残して子供達を保育園に行かせてしまうと脅迫をしている. あなたを尾行しているかも知れない”と言うふうに持続的に脅かした. また “Aさんが親お爺さん遺産を横取りしようと思う”と言う言葉も言った.
金城館は計画によって 2017年 10月 21である正午頃 Aさんアパートにパスワードを押して入って行った. そのように家に隠れていた金城館は午後 2時頃家に入って来た Aさんと B君を残酷に殺害した. そして金城館は Aさん死体で貴金属を抜き取ったことを含めて通帳とチェックカードを取りそらえた.
Cさんを家で誘導するために家を片付けておいた金城館は Cさんが家に入って来ないで直接電話して呼び出した後江原道平昌の一国道で助手席に座っていた Cさんを残酷に殺害した後死体を車トランクに積んで自分の家族たちがとどまったコンドの駐車場に遺棄した.
金城館は無惨な犯行中々に随時に状況を妻チョン氏にメッセージで伝達した. メッセージには被害者たちに対するあらゆる悪口が一杯だった. 金城館は犯行直後 A種口座で買う被害者口座や自分の口座でお金を送金するなど約 1億3000満員取りそらえた.
法院 “死刑高麗も可能だが更生余地見えて”
犯行後にも金城館は自分の出国の前まで犯行事実がばれないようと Aさんと Cさんの携帯電話を取りそらえた. 電話が来る場合エドルロつけて Aさんなどの死亡事実を隠した. Bだね学校や Aさん夫婦所有店から電話があった時も “旅行を行った”か “寝ている” などの嘘で状況を兔れた.
以後金城館は 2017年 10月 23である午後 5時, 妻及び二人のお子さんと一緒にそのように望んだニュージーランド行航空機に乗った. 永遠な逃避を夢見た金城館はわずか 6日万人 29である, 過去語学研修時代ニュージーランドでの節度疑いで警察に逮捕した.
先に自ら帰国して警察に殺人疑いで拘束された妻チョン氏は “ご主人の嘘にだまされて Aさんに頭に来たことは当たるが, ご主人が実際殺人をすることは分からなかった”と主張した. 翌年送還されて一歩遅れて拘束起訴された金城館も “妻は分からなかった”と単独犯行だと強調した. 金城館は逮捕直後には “けんかの中で偶発的に殺害したこと”という主張も広げた. しかし検察は金城館に強殺と死体遺棄, チョン氏には殺人などの疑いを適用して裁判に越した.
1審は金城館に対して “反社会的, 反人倫的犯行として生命に対する尊重とは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ない残酷ながらも破廉恥な犯行”と言いながら “反省しているのか疑問が入る状況で厳重な処罰が不可避だ”と無期懲役を宣告した. チョン氏に対しては殺人疑いではない殺人傍助疑いだけ認めて懲役 8年判決を下した.
検察は金城館に対して死刑宣告が下ろ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抗訴したが 2審は “死刑を宣告することも考慮することができるが, 更生の余地があって死刑外に他の処罰を選択することができると見える”とこれを受け入れなかった. 最高裁判所確定判決に従って 1審形量はそのまま確定された.
経済的無能の中にも妻・妻家には資産家行世
小さい頃母親真心で育てたが大人されてからも "ドンダルだと"
あらゆること "ママのせい"…残酷犯行の中にも悪口繰り返し[イーデイリーハングァン犯記者] 2017年 10月 26である夜の十二時頃. 50代女性 Aさんの妹さんがお姉さんと何日目連絡にならないで京畿道容認したアパートを尋ねて 119を歌って門を強制で開いた. 門を開くときれいな状態の普段家と違うように悪臭が震動した. 家を見回した仲間はベランダで色を失った. Aさんと中学生息子 B君が殺害されたまま発見されたのだ.
死んでから何日が経ったように見える死体は凶器に数十回ずつ突かれた状態だった. ベランダ底に重ねられたまま発見された死体の上には小麦粉に振り掛けられていたし毛布が覆われていた. 申告を受けて捜査に取り掛かった警察は Aさんが再婚の前生んだ長男金城館(1984年生まれ)を有力な容疑者に見て行方を追う一方, 連絡が途絶された Aさんのご主人(金城館の継父) Cさんを探して出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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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察は容疑者である金城館が妻及びお子さんと一緒に犯行二日後人 23である, 自分が永住権を持ったニュージーランドに出国したことで確認した. 逮捕令状を発行されて現地警察に捜査協助を要請した. 金城館は捜査協助二日後人 29である午後(現地時間) 過去ニュージーランドで語学研修当時した節度疑いで逮捕した.
金城館が逮捕すると妻定期会(1985年生まれ)さんはお子さんたちと 11月 1日自ら帰国した. チョン氏はゴッザング殺人公募疑いで拘束されて裁判に越された. そして金城館は犯罪人引導請求裁判を経って 2018年 1月 11である国内に送還された後ゴッバで逮捕して本格的な捜査を受けるようになった.
一家庭の仮装(家長)と同時に二名のお子さんを持っていた金城館はどうしてこのような無惨な犯行をやらかしたのだろう.
惜しみない支援にも小さい頃から母親 ‘嫌悪’
金城館は親に経済的に寄り掛かる 2030を言う, いわゆる ‘カンガルー族’だった. 金城館を姙娠した時夫(金城館親父)と死別した Aさんは直接経済活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幼い時代から金城館に経済的支援を惜しまなかった.
金城館は幼い時代から母方のお婆さんと一緒に暮したから Aさんは息子に常にすまない心を持って借しまず支援した. 中学生時代ニュージーランドで留学を送ってくれるなど金城館は幼い時代経済的に全然足りなさない生活ができた. Aさんは金城館が二十の歳になるまで待ってから再婚をして新しい家庭を立てた.
が同じ支援にも金城館は幼い時代自分をまともに面倒を見てくれなかったと Aさんに常に不満があった. その火だけは嫌悪に変わったし Aさんを超えて継父 Cさん, 二部弟(妹) B君を向けても積もった. 母親に対する敵がい心と別個で金城館はおとなになった以後にも Aさんに持続的に経済的支援を要求してお金をもらって行った.
金城館はまともにできた経済活動もしないでただ Aさんにだけ経済的に寄り掛かろうと思った. 三十が過ぎるように金城館が遊蕩した生活を引き続いて就業などと係わって嘘を続くと結局 Aさんは経済的支援を切ってし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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経済的にどんな能力がない状況だったが金城館は 2014年結婚をした. 彼は妻チョン氏とチョン氏家族の前で資産家になりすました. 一外国係企業の韓国支部長で 100億台資産家である親お爺さんからすぐ遺産を継がれる予定だと言った. 同時にニュージーランド家を売ったお金がニュージーランドに縛られているという話もした. ニュージーランドで 2‾3ヶ月ずつ二度居住してチョン氏などをまんまと欺いた.
しかし現実の生は金城館の言葉と全然違った. 金城館夫婦はお金がなくて多くの地域を転転している途中妻家で生活するのを繰り返した. 生活費をチョン氏家族たちに借りて使うほどだった. 金城館夫婦の収入は二人のお子さん前に出る養育手当てが唯一だった.
このように貧しい生活が続くと金城館のしゅうと夫婦は 2017年 8月 “実際資産家が当たるのか”と公開的に疑心の目つきを送った. しかし金城館は “資産家である親お爺さんが病勢が悪くてすぐ帰るようだ”と “ところで親母である Aさん家族が遺産を分けてくれと言って苦しめる”と嘘を続いた.
チョン氏家族がこれを信じないで, 金城館夫婦は結局 2017年 9月から妻家を出てモテルなどを転転し始めた. 生活費が必要になった金城館は知人に “お子さんのニュージーランド留学を責任負う”と欺いて 1000満員を取ってから被害者から告訴にあった. 事件を受け付けた警察は金城館に連絡して “10月 23仕事までお金を返還しなければ正式捜査が進行される. 出国禁止されることができる”と知らせた.
家族たちと一緒にニュージーランドで住もうとした金城館はどうしても出国禁止を阻まなくちゃいけないと言う考えをするようになった. そしてまたお母さん Aさんに何回助けを要請した. しかし Aさんは “お金がない. すまない”とこれを断った.
詐欺犯行善後策ために母親一家相手強殺
金城館はこの時から具体的犯行計画を立て始めた. Aさん家族を殺害した後お金を取りそらえて家族たちを連れて永住権があるニュージーランドに出国するという計画だった. 結婚手厚い番(回)も Aさんを見た事がなかった妻チョン氏は金城館の言葉にだまされて漠然と Aさんに対する恐ろしさと恨みを持つようになって犯行に同参した.
偽り人生を暮した金城館は妻に結婚直後から “Aさんが容認やくざたちを解いてうちの家族を取り残して子供達を保育園に行かせてしまうと脅迫をしている. あなたを尾行しているかも知れない”と言うふうに持続的に脅かした. また “Aさんが親お爺さん遺産を横取りしようと思う”と言う言葉も言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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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さんを家で誘導するために家を片付けておいた金城館は Cさんが家に入って来ないで直接電話して呼び出した後江原道平昌の一国道で助手席に座っていた Cさんを残酷に殺害した後死体を車トランクに積んで自分の家族たちがとどまったコンドの駐車場に遺棄した.
金城館は無惨な犯行中々に随時に状況を妻チョン氏にメッセージで伝達した. メッセージには被害者たちに対するあらゆる悪口が一杯だった. 金城館は犯行直後 A種口座で買う被害者口座や自分の口座でお金を送金するなど約 1億3000満員取りそらえた.
法院 “死刑高麗も可能だが更生余地見えて”
犯行後にも金城館は自分の出国の前まで犯行事実がばれないようと Aさんと Cさんの携帯電話を取りそらえた. 電話が来る場合エドルロつけて Aさんなどの死亡事実を隠した. Bだね学校や Aさん夫婦所有店から電話があった時も “旅行を行った”か “寝ている” などの嘘で状況を兔れた.
以後金城館は 2017年 10月 23である午後 5時, 妻及び二人のお子さんと一緒にそのように望んだニュージーランド行航空機に乗った. 永遠な逃避を夢見た金城館はわずか 6日万人 29である, 過去語学研修時代ニュージーランドでの節度疑いで警察に逮捕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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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審は金城館に対して “反社会的, 反人倫的犯行として生命に対する尊重とは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ない残酷ながらも破廉恥な犯行”と言いながら “反省しているのか疑問が入る状況で厳重な処罰が不可避だ”と無期懲役を宣告した. チョン氏に対しては殺人疑いではない殺人傍助疑いだけ認めて懲役 8年判決を下した.
検察は金城館に対して死刑宣告が下ろ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抗訴したが 2審は “死刑を宣告することも考慮することができるが, 更生の余地があって死刑外に他の処罰を選択することができると見える”とこれを受け入れなかった. 最高裁判所確定判決に従って 1審形量はそのまま確定され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