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3세」의 내가, 한국으로 옮겨 살면 직면한
「심한 현실」과「유감이고 어쩔 수 없었던 것」
2022.09.11
https://gendai.media/articles/-/99126
「반일」로, 실은 스스로 직격을 받는 한국인들
한국에서는, 문 재인정권하에서 정치에 의한 기업이나 비즈니스 퍼슨, 사업자의 「압박」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 경제에의 의존율의 높은 한국에서는, 「반일」이라고 하는 것은 좌파 시민 단체가 호소하는 분에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장사등에서 일본과 관계하고 있는 많은 국민에게는 스트레스가 컸다.의존도가 높다고 하는 것은, 그런 만큼 일본을 제외하고 생활을 보충할 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전부터, 일본의 숙성한 마인드에 의한 한국과의 교제하는 방법, 그런 중에 민간 레벨로의 제휴, 협력을 할 수 있으면, 일한이 새로운 경제대국에 발전하는 길이 있다라고 생각해 왔다.그런 생각으로부터, 「재일 3세」로서 일본에서 태어나면서, 있다 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 사는, 한국에서 살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유감인 생각 밖에 없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정권은 언제나 실책 은폐만을 하고 있고, 시민 단체는 정부의 실책 숨겨에 「약자의 방패」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한쪽을 메어 반일을 호소하고 있는 시말이다.
박근혜전정권의 의혹으로부터 일어난 로터 `쿠 집회도, 원래는 좌파 단체가 광화문으로 단독으로 가고 있던 것을, 여론이 「박근혜퇴진이 우리들의 민주주의」라고 주창한 것으로, 「국민의 비원=박근혜퇴진」이라고 하는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그런 초 집회로의 국민의 「비원」이 실현되어, 한국에서는 문 재인이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주지대로일 것이다.
그런 국민의 큰 기대를 짊어져 야단 법석으로 정권을 발족시킨 문 재인정권이지만, 설마 여기로부터 악몽이 시작된다고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덧붙여서 필자는 한국에서의 「생애 첫 투표」인 제19대 대통령 선거로 향해 갔지만,무려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그 중 북한이 될거야」
재일 3세의 나는 「해외 재류 한국인」이라고 하는 카드를 지 더해지고 있어 거주국으로의 투표만이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투표소에서 관공서에 불려 전해들은 말은, 「당신은 일본의 한국 대사관, 영사관으로 투표를 실시해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그 후, 문 재인 신대통령이 탄생하고, 아는 사람의 한국인들도 기뻐하고 있었지만,수를 가리키는 것처럼 필자는 「이런 건은 민주주의든 뭐든 없다.그 중에서 북한과 같이 될거야」라고 말했다.그 후의 전말을 보면, 그것은 현실이 된 것은 아닐까
.
후편 기사
「 「한국은 일본을 넘었다」 「일본은 일당 독재국이겠지」
“재일 3세”의 내가 한국에서 직면한 「웃을 수 없는 반일 발언」에의“강렬한 위화감”」
그럼, 일한 관계가 전후 최악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악화된“진짜 이유”에 임해서 한층 더 리포트하자.
ttps://gendai.media/articles/-/99127
후편 기사
「 「한국은 일본을 넘었다」 「일본은 일당 독재국이겠지」
“재일 3세”의 내가 한국에서 직면한 「웃을 수 없는 반일 발언」에의“강렬한 위화감”」
그럼, 일한 관계가 전후 최악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악화된“진짜 이유”에 임해서 한층 더 리포트하자.
ttps://gendai.media/articles/-/99127
덧붙여 Poepoepoe에는
「제대로 일본의 학교에 다니는 일로 경박한 세뇌 를 하고 있지 않은 원재일 3세인 귀화 일본인의 친구」
가 있으므로, 재일이라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특히 혐오감 등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만큼 출설목 하고 일본인에 미움받지 않는 것 없지 바보모두가!」(이)라고 화내재특회의 이벤트라든지에 참가했다
【在日】韓国で目撃した事【3世】
「在日3世」の私が、韓国に移り住んだら直面した
「ひどい現実」と「残念で仕方がなかったこと」
2022.09.11
https://gendai.media/articles/-/99126
「反日」で、じつはみずから直撃を受ける韓国人たち
韓国では、文在寅政権下で政治による企業やビジネスパーソン、事業者の「圧迫」が起きていた。
日本経済への依存率の高い韓国では、「反日」というのは左派市民団体が訴える分にはいいかもしれないが、実際に商売などで日本と関係している多くの国民にはストレスが大きかった。依存度が高いということは、それだけに日本を外して生活を補え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だ。
筆者は以前から、日本の熟成したマインドによる韓国との付き合い方、そんな中で民間レベルでの提携、協力ができれば、日韓がさらなる経済大国へ発展する道があると思ってきた。そんな思いから、「在日3世」として日本に生まれながら、あるときに日本から韓国に移り住む、韓国で暮らしてみた。
しかし、いまは残念な思いしかない。
そして「悪夢」が始まった
韓国の政権はいつも失策隠しばかりをしているし、市民団体は政府の失策隠しに「弱者の盾」を最大限利用しながら、片棒を担ぎ反日を訴えている始末だ。
朴槿恵前政権の疑惑から起きたローソク集会も、もともとは左派団体が光化門で単独で行っていたのを、世論が「朴槿恵退陣こそが我らの民主主義」と唱えたことで、「国民の悲願=朴槿恵退陣」というイベントになってしまった。そんなローソク集会での国民の「悲願」が叶い、韓国では文在寅が第19代大統領へと就任したことは周知の通りだろう。
そんな国民の大きな期待を背負って鳴り物入りで政権を発足させた文在寅政権だが、まさかここから悪夢が始まるとはほとんどの韓国人が思っていなかっただろう。ちなみに筆者は韓国での「生涯初めての投票」である第19代大統領選挙に赴いたが、なんと投票ができなかった。
「そのうち北朝鮮になるぞ」
在日3世の私は「海外在留韓国人」というカードを持たされており、在住国での投票のみが認められていたのだ。
投票所で役所に呼ばれて告げられた言葉は、「あなたは日本の韓国大使館、領事館で投票を行ってください」――というものだった。
その後、文在寅新大統領が誕生して、知り合いの韓国人たちも喜んでいたが、水を指す様に筆者は「こんなのは民主主義でもなんでもない。そのうち、北朝鮮のようになるぞ」と語った。その後の顛末を見れば、それは現実にな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後編記事
『「韓国は日本を超えた」「日本は一党独裁国でしょ」
…“在日3世”の私が韓国で直面した「笑えない反日発言」への“強烈な違和感”』
では、日韓関係が戦後最悪と言われるほどに悪化した“本当のワケ”についてさらにレポートしよう。
ttps://gendai.media/articles/-/99127
なお、Poepoepoeには
「ちゃんと日本の学校に通う事で浅はかな洗脳をされていない元在日3世な帰化日本人の友人」
が居るので、在日と言うだけでは特に嫌悪感などは有りません。
むしろ「これだけ出鱈目やって日本人に嫌われない訳ないだろ馬鹿共が!」って怒って在特会のイベントとかに参加して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