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한국측이 토카이의 표기를 고집하는 것은, 궁극의 목적으로 해 타케시마 문제의 봉인이 있다로부터이다.

미국 각지에서는, 한국인회에 의한 「독도 수호 국제 연대」가 결성되어 토카이 문제와 타케시마 문제를 세트에, 의원 공작이 활발하게 되어 있다.

2011년 11월 29일, 한국의 연합 뉴스 전자판이, 「미국 한국인회, 토카이 병기 청원이기 때문에 클린턴과의 면담 요청」이라고 전해 같이 2011년 12월 10일에는, 독도 수호 국제 연대의 코우·체쿤 집행위원장이, 「국제수로 기관에 실질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국무부와 연방의 상하 원의원이다.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라고 해, 「그 의미로 시카고 한국인회는 Hillary·클린턴 국무장관과의 면담을 진행시켜 서명 운동을 통해서, 연방 의원에도 같은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내의 한국인회를 여기까지 움직이는 것은, 시마네현 의회에 의한 「타케시마의 날」조례의 제정을 기회로, 한국 정부가 대일 전략을 강의(강구)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다.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당시 )은, 「타케시마의 날」조례가 성립하는 일주일전, 벌써 타케시마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관의 설치를 법안화해, 4월에는 「토호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올바른 역사 정립 기획단」을 발초`시키고, 지금 도달하고 있다.

그것도 노무현 정권 당시의 외상인 반기문유엔 사무총장은, 2007년의 「유엔의 날」에 개최된 유엔 사무총장 주최의 콘서트에서, 일본해를 토카이로 해, 타케시마를 독도라고 표기한 영문의 팜플렛을 배포했다고 한다.외상 시대의 반기문씨는, 「타케시마 문제는 일한 관계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발언했지만, 유엔의 사무총장이 되고 나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유엔의 지명 표준화 위원회나 국제수로 기관의 관계자가, 토카이의 병기에서는 한국 가까이의 발언을 해, 지명 표준화 위원회의 전문 부회의 톱이 한국인이라고 하는 사실도 있다.

그 한국측에서는,  2000년 전부터 일본해를 토카이라고 호칭하고 있었지만, 1929년, 해도 작성의 기본으로 되는 「대양과 바다의 경계」가 국제수로국에서 편찬 될 때,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 있던 한국은, 토카이를 주장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한국측에서는 그 역사의 청산을, 토카이의 병기라고 하는 형태로 실현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거기서 한국측에서는 5년에 한 번 개최되는 국제수로 기관의 총회를 향해서 2002년과 2007년에 잇고, 2012년을 목표로 활동해 왔다.그 전술의 하나로서, 한국은 세계 각지에서 「토카이 세미나」를 개최해, 토카이 병기에 찬동 하는 나라들?`후 확대에 노력해 왔다.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비」의 토카이 그 때, 근거로 여겨진 것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있는 토카이라고 하는 표기와 「광개토왕비」에 새겨진 토카이의 문자이다.

한국측에서는 오늘, 일본해를 토카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부터, 그것들 토카이도 일본해가 틀림없다는, 논리이다.

거기서 한국측은, 「삼국사기」의 토카이의 기술이, 지금부터 2000년전의 기원 전 37년에 해당되는 것부터, 토카이의 호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낡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그럼 그 한국측의 근거로 여겨진, 「삼국사기」에는,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거기에는 「토카이지빈」이라고 기술되고 있다.하지만 이 토카이는, 일본해로는 없다.왜냐하면 고구려가 건국했다고 하는 기원 전 37년에는, 한국의 국가적 루트가 되는 신라는 건국하고 있지 않고, 고구려의 고지는 요동 반도 부근(졸본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오늘, 한국의 역사 인식에서는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라고 보고 있지만, 한국의 국가적인 계보에 고구려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중국과 한국은, 2003년경부터 고구려의 역사를 둘러싸, 한국의 역사나 중국의 1 지방 정권의 역사인가로, 고구려역사 이론쟁을 계속하고 있다.그 중국과의 고구려 역사 이론쟁으로, 한국측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 한류드라마의 「주몽」과 「후토시왕사신기」이다.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이야기로, 「후토시왕사신기」는 고구려 중흥의 선조인 광개토왕에 관한 드라마이다.

중국측의 역사 인식으로부터 하면, 주몽과 광개토왕도, 한국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게 되어, 그것을 적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이나, 「광개토왕비」에 기록된 토카이의 의미도 달라진다.우선 「광개토왕비」에 있는 토카이의 문자이지만, 거기에는 「토카이가, 국 연3, 간연5」(이)라고 각 되고 있다.이것은 광개토왕의 무덤을 유지하기 위한 묘수(옛날 황실 능지기)의 수를 적은 것으로, 토카이가는 묘수의 거주하는 지역명이다.

토카이가의 토카이를 일본해로 하는 것은, 견강 부회이다.거기에 고구려 건국의 땅은, 요동 반도 부근에 있어, 직접, 일본해에는 접하지 않았었다.

「한원」에 끌린 어 권의 「위략」에서는, 「고구려국, 랴오둥 천리에 있어.남쪽은 조선·●(원 있어:씨않다 있어에 나이의 구자체) 맥에 접해, 동쪽은 옥저에 접하고, 북쪽은 부여에 접하든지」라고 있다.고구려와 일본해의 사이에는, 옥저가 개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럼 「삼국사기」에/`A 「토카이지빈(부근)에 땅 있어.칭해 가하바라라고 한다」라고 기록된 토카이는, 어디의 토카이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일까.

힌트는, 조선시대 초기에 편찬 된 「닷피천가」에 있다.그 「해동」의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사해의 밖, 모두 또 바다 있어.토카이의 별로 발해 있어.그러므로 토카이, 발해와 공칭.또 통해 이것을 창해라고 한다.우리 나라는 발해의 동쪽에 있어.그러므로 해동이라고 한다」이 분주에서도 분명한 것 같게, 토카이는, 발해로 있다.그것을 한국측이 일본해라고 해석한 것은, 한반도에는 전통적으로 두 개의 토카이가 있다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적 읽는 법을 무시해 토카이를 일본해라는 봐 해석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두 개의 토카이는 구별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말기의 고종은 「조선은 토카이의 동쪽에 있어」라고 발언해, 한반도를 중국의 토카이의 동쪽에 위치한다, 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종이 말하는 토카이는, 발해와 황해이다.이것은 조선시대 중기의 이●(일에 에 졸) 히카루가 「중국의 토카이, 즉 우리 나라의 사이카이」( 「잔디봉류설」)로 해, 조선시대 후기의 정동유가 「중국의 소위 토카이는, 우리 나라의 사이카이」( 「주영편」)로 한 것처럼, 한반도에는 중국을 기준으로 한 「토카이」가 존재한?`등이다.그것은 전통적으로, 중국에는 방위의 개념으로서의 사해의 관념이 있어, 발해나 황해 등 동방의 바다를 「토카이」라고 칭하고 있던 것에 의한다.

그 때문에 조선에서는 스스로를 「토카이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해동의 나라」를 칭해, 「닷피천가」에서는, 그 기준이 되는 발해를 토카이라고도 했던 것이다.

동명왕(주몽)의 후예는, 그 후, 한반도의 서쪽을 황해를 따라서 남하해, (쿠다라)백제나 신라와도 싸우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한국측이 「삼국사기」나 「광개토왕비」를 논거로 하는 「토카이」는, 이 중국을 기준으로 한 「토카이」라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있다.「삼국사기」의 「토카이」를 근거로, 한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일본해를 토카이라고 호칭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한류드라마의 「주몽」같이, 거짓이다.

https://www.pref.shimane.lg.jp/admin/pref/takeshima/web-takeshima/takeshima04/takeshima04-2/takeshima05-q.html



東海は渤海である

 韓国側が東海の表記に固執するのは、究極の目的として竹島問題の封印があるからである。

米国各地では、韓国人会による「独島守護国際連帯」が結成され、東海問題と竹島問題をセットに、議員工作が活発になっている。

2011年11月29日、韓国の聯合ニュース電子版が、「米国韓国人会、東海併記請願のためクリントンとの面談要請」と伝え、同じく2011年12月10日には、独島守護国際連帯のコウ・チャンクン執行委員長が、「国際水路機関に実質的に力を行使できるのは米国の国務部と連邦の上下院議員だ。彼等を積極的に説得する」とし、「その意味でシカゴ韓国人会はヒラリー・クリントン国務長官との面談を進め、署名運動を通じて、連邦議員にも同様のことをしていくことが重要」と述べたという。

米国内の韓国人会をここまで動かすのは、島根県議会による「竹島の日」条例の制定を機に、韓国政府が対日戦略を講じていたからである。韓国の盧武鉉大統領(当時)は、「竹島の日」条例が成立する一週間前、すでに竹島問題に持続的に対処できる機関の設置を法案化し、4月には「東北アジアの平和のための正しい歴史定立企画団」を発足させて、今に至っている。

それも盧武鉉政権当時の外相であった潘基文国連事務総長は、2007年の「国連の日」に開催された国連事務総長主催のコンサートで、日本海を東海とし、竹島を独島と表記した英文のパンフレットを配布したという。外相時代の潘基文氏は、「竹島問題は日韓関係よりも上位概念」と発言したが、国連の事務総長となってからの影響力は無視できないものがある。国連の地名標準化委員会や国際水路機関の関係者が、東海の併記では韓国寄りの発言をし、地名標準化委員会の専門部会のトップが韓国人だという事実もある。

その韓国側では、2000年前から日本海を東海と呼称していたが、1929年、海図作成の基になる『大洋と海の境界』が国際水路局で編纂される際、日本の植民統治下にあった韓国は、東海を主張する機会を奪われていた、と主張している。韓国側ではその歴史の清算を、東海の併記という形で実現しようとしているのである。そこで韓国側では五年に一度開催される国際水路機関の総会に向け、2002年と2007年に続いて、2012年をめどに活動してきた。その戦術の一つとして、韓国は世界各地で「東海セミナー」を開催し、東海併記に賛同する国々の拡大に努めてきた。

『三国史記』と「広開土王碑」の東海その際、根拠とされたのが『三国史記』(「高句麗本紀」)にある東海という表記と、『広開土王碑』に刻まれた東海の文字である。

韓国側では今日、日本海を東海と呼称していることから、それら東海も日本海に違いない、という論理である。

そこで韓国側は、『三国史記』の東海の記述が、今から2000年前の紀元前37年に当たることから、東海の呼称はイエスキリストの誕生よりも古い、と主張するのである。ではその韓国側の根拠とされた、『三国史記』には、ど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のだろうか。そこには「東海之濱」と記述されている。だがこの東海は、日本海のことではない。なぜなら高句麗が建国したとする紀元前37年には、韓国の国家的ルーツとなる新羅は建国しておらず、高句麗の故地は遼東半島付近(卒本付近)にあるからである。


 しかしここに大きな問題がある。今日、韓国の歴史認識では高句麗を韓国の歴史と見ているが、韓国の国家的な系譜に高句麗は含まれないからだ。事実、中国と韓国は、2003年頃から高句麗の歴史を巡り、韓国の歴史か中国の一地方政権の歴史かで、高句麗史論争を続けている。その中国との高句麗史論争で、韓国側の主張を有利にするために製作されたのが韓流ドラマの『朱蒙』と『太王四神記』である。朱蒙は高句麗の始祖である東明王の物語で、『太王四神記』は高句麗中興の祖である広開土王に関するドラマである。

中国側の歴史認識からすれば、朱蒙と広開土王も、韓国の歴史とは関係がないことになり、それを記した『三国史記』(「高句麗本紀」)や、「広開土王碑」に記された東海の意味も違ってくる。まず「広開土王碑」にある東海の文字であるが、そこには「東海賈、国烟三、看烟五」と刻されている。これは広開土王の墓を維持するための墓守(陵戸)の数を記したもので、東海賈は墓守の居住する地域名である。

東海賈の東海を日本海とするのは、牽強付会である。それに高句麗建国の地は、遼東半島付近にあり、直接、日本海には接していなかった。

『翰苑』に引かれた魚拳の『魏略』では、「高句麗国、遼東千里にあり。南は朝鮮・●(わい:さんずいに歳の旧字体)貊に接し、東は沃沮に接して、北は夫餘に接するなり」とある。高句麗と日本海の間には、沃沮が介在していたのである。では『三国史記』に、「東海之濱(ほとり)に地あり。号して迦葉原という」と記された東海は、どこの東海を指していたのであろうか。

ヒントは、朝鮮時代初期に編纂された『龍飛御天歌』にある。その「海東」の注釈で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からである。「四海の外、皆また海あり。東海の別に渤海あり。ゆえに東海、渤海と共称す。また通じてこれを滄海という。我が国は渤海の東にあり。ゆえに海東という」この分註でも明らかなように、東海は、渤海のことである。それを韓国側が日本海と解釈したのは、朝鮮半島には伝統的に二つの東海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その伝統的読み方を無視して東海を日本海とのみ解釈するからである。だが朝鮮時代には、二つの東海は区別されていた。

朝鮮時代末期の高宗は「朝鮮は東海の東にあり」と発言し、朝鮮半島を中国の東海の東側に位置する、としているからだ。高宗が言う東海は、渤海と黄海である。これは朝鮮時代中期の李●(日へんに卒)光が「中国の東海、即ち我が国の西海」(「芝峰類説」)とし、朝鮮時代後期の鄭東愈が「中国の所謂東海は、我が国の西海」(「昼永編」)としたように、朝鮮半島には中国を基準とした「東海」が存在したからである。それは伝統的に、中国には方位の概念としての四海の観念があり、渤海や黄海など東方の海を「東海」と称していたことによる。

そのため朝鮮では自らを「東海の東」にあるとして「海東の国」を称し、『龍飛御天歌』では、その基準となる渤海を東海ともしたのである。

東明王(朱蒙)の後裔は、その後、朝鮮半島の西側を黄海に沿って南下し、百済や新羅とも争うことになるのである。従って韓国側が『三国史記』や「広開土王碑」を論拠とする「東海」は、この中国を基準とした「東海」と解釈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三国史記』の「東海」を根拠に、韓国では2000年前から日本海を東海と呼称していたとするのは、韓流ドラマの「朱蒙」同様、妄誕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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