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의 일기
닛토장유가
김 히토시겸(ko:???, 김·인곱, 당시 57세)의 저서로여행기이다.
총원 500명 가까운 인원수에 오른 통신사일행의 일본 체재는 8개월에 이르러, 전행정에 11개월을 걸치는 긴 여행으로, 동통신사단의 기록으로서는 리더인 정사의 조?(조·옴)에 의해서 한문으로 쓰여진 「해 사일기」등도 있지만, 「닛토장유가」의 특징적인 점은, 당시의 지식 계급 남성의 저작으로서는 드물고, 모두한글로 쓰여져 율문시(노래말(우산)로 불리는 문학 님 식)의 형식을 채용하고 있는 일에 있는
오사카 일망
돈대에서 오사카의 거리를 바라보았을 때에도김 히토시겸은 경탄 하고 있습니다.
「한성부(한손브)는 1리 사방도 없는데 오사카는 쥬우리 사방도 있어 호수는 백만 있다.부자의 재상의 집에서도 몸마 밖에 없는데, 여기에서는 셍겐의 저택도 있다.그 사치는 비정상일 만큼(정도)」와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이(캔)는 기둥과 기둥의 사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동행자에게 북경에 간 것이 내려 오사카와 비교한 담이 있다의입니다만, 당시의「연경(북경)도 오사카에는 미치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이후에의 문장에서는 신랄한 말로 일본을 깍아내리고 있습니다만, 깍아내린다고 하는 것보다 초대형인 질투심입니다.
뭉뚱그려 책 가면,「예법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일본인이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것에의 질투와 분만」입니다.
이후에 그들은 요도성에.
여기에서는 강변에 있는 성의 님 아이가 드물고, 또, 물방아를 교묘하게 사용해 장내에 물을 끌어 들이고 있는 기술에「경탄의 극한」과 감심.
이것은 조선 왕조의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 않는 예로서 인용해지는 고사입니다만, 1607년의 통신사이래, 항상 이 훌륭한 기술을 도입하고 싶다고 하지만 , 끝내 도입될 것은 없었습니다.
※MBC세트에 큰 물방아가 나옵니다만, 저것은 완전한 시대 고증 무시입니다(땀)
쿄토
다음은 쿄토.
여기는 오사카만큼은 아니고 삼리 사방의 거리와 표현.
그러나, 여기서 또 질투와 분만이 에스컬레이트.
「개에도 동일한 일본인을 모두 성패 해 조선의 국토로서 왕의 덕으로 예절의 나라로 하고 싶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나고야
오사카와 같이 호화 장려하다면 기술.
조선의 삼경(한성·개성·평양)도 여기에 비하면 외로울 따름이라고도.이 근처에서는 분만 하는 것도 지쳐 왔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이 뛰어나 아름답다」라든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토쿠가와가가 미인을 모두 에도에 이동시켰기 때문에「3대불미인 지대」라고 해진 땅입니다만,김 히토시겸에는 미인의 보고였던 것 같네요 (웃음)
후지산
후지산을 보았을 때에는, 처음은 별일 아니다고 했지만 , 아시노코에 가까스로 도착했을 때에는, 자국의 산이나 호수와 비교하고, 호수도 아울러 대절경이라고 칭찬해 칭하고 있습니다.
에도
그리고, 마침내 에도에 도착합니다.「오사카나 쿄토에 비해 삼배는 이기고 있어 삼리에 건너 사람이 우리백만명은 시시하다」와 기술
朝鮮通信使の日記
日東壮遊歌
金仁謙(ko:김인겸、キム・インギョム、当時57歳)の著書で旅行記である。
総勢500人近い人数に上った通信使一行の日本滞在は8ヶ月に及び、全行程に11ヶ月をかける長旅で、同通信使団の記録としてはリーダーであった正使の趙曮(チョ・オム)によって漢文で書かれた『海槎日記』などもあるが、『日東壮遊歌』の特徴的な点は、当時の知識階級男性の著作としては珍しく、全てハングルで書かれ、律文詩(歌辞(カサ)と呼ばれる文学様式)の形式を採用している事にある
大阪一望
高台から大阪の街を眺めた時にも金仁謙は驚嘆しています。
「漢城府(ハンソンブ)は1里四方もないのに大阪は十里四方もあり戸数は百万ある。金持ちの宰相の家でも百間しかないのに、ここでは千間の邸宅もある。その奢侈は異常なほど」と表しています。
※間(カン)は柱と柱の間という意味です。
同行者に北京に行ったものがおり、大阪と比較した談があるのですが、当時の「燕京(北京)も大阪には及ばない」と言っています。
このあとの文章では辛辣な言葉で日本をけなしていますが、けなすというより超大な嫉妬心です。
ひっくるめて書いくと、「礼法のわからない獣のような日本人が繁栄を謳歌していることへの嫉妬と憤懣」です。
淀城
このあと彼らは淀城へ。
ここでは川辺にある城の様子が珍しく、また、水車を巧みに使い場内に水を引き込んでいる技術に「驚嘆の極み」と感心。
これは朝鮮王朝の技術が発達していない例として引き合いに出される故事ですが、1607年の通信使以来、常にこのすばらしい技術を導入したいと言っているものの、ついに導入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MBCのセットに大きな水車が出てきますが、あれは完全な時代考証無視です(汗)
京都
次は京都。
ここは大阪ほどではなく三里四方の街と表現。
しかし、ここでまた嫉妬と憤懣がエスカレート。
「犬にも等しい日本人をすべて成敗し朝鮮の国土として、王の徳で礼節の国にしたい」と書いています。
名古屋
さらに道程は進み名古屋へ到着。
大阪同様に豪華壮麗だと記述。
朝鮮の三京(漢城・開城・平壌)もここに比べれば寂しい限りだとも。このあたりからは憤懣するのも疲れてきたのかもしれません。
「女人が飛び抜けて美しい」とか言い出しました。
かつては徳川家が美人をすべて江戸に移動させたために「三大不美人地帯」と言われた地ですが、金仁謙には美人の宝庫だったようですね(笑)
富士山
富士山を見た時には、最初は大したことないと言っていたものの、芦ノ湖にたどり着いた時には、自国の山や湖と比較して、湖もあわせて大絶景だと褒め称えています。
江戸
そして、ついに江戸に到着します。「大阪や京都に比べ三倍は勝っており、三里に渡り人がおり百万人はくだらない」と記述
。女人にももちろん言及していて「名古屋に匹敵する」と書い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