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코리안(조선 민족, 한국인·북한 인)이 인정했지만들 없는 역사적 사실 일람】


·벼농사가 큐슈로부터 한반도로 전해진 것

·고추가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전해진 것(버선(여행)에 넣고 다리를 녹이는 것으로서 한반도에 반입된 것이 고추)


·반도 남부의 선주민이 일본인인 것

·신라의 건국시의 재상이 일본인이며, 왕가의 두 개가 원인 계통인 것, 또 시조 박혁거세에 대해서도 일본인설이 있다 일


·쿠타라, 신라가 야마토 조정에 대해 종속적 지위에 있던 것

·야마토 조정에 의한 임라(가야) 지역의 지배가 있던 것(반도 남부에 있어서의 다수의 전방 후원분의 존재)


·한반도에 있어서의 문화적 독자성이 결핍 하고 있는 것(모든 분야에서의 고전의 부재)

·속국으로서 걸어 온 역사인 것(한민족·몽골 민족·만주 민족의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조선 민족은 격하 취급해 되어 왔다)


·중국의 속국이 되고 나서, 스스로 개명하고, 중국어의 성명인 것

·히데요시의 한국 출병이 일본과 명의 전쟁인 것(이씨 조선의 군은 명의 군의 지휘하에 들어가, 평화교섭도 일본과 명의 사이에 행해졌다)


·이씨 조선왕이, 중국의 지방장관의 지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

·청으로부터, 이씨 조선이 류큐와 베트남보다 격하로 취급해지고 있던 것


·이씨 조선의 앞의 고려에서는, 원의 명령으로, 왕비가 대대 몽골인이며, 몽골인의 모친으로부터 태어난 아들 밖에 국왕이 될 수 없었던 것


·한반도의 나라가, 역사상 한번도, 단독으로는 전쟁에 이겼던 적이 없는 것(조선 민족과 짠 나라도 전쟁에 이길 수 없다.고려와 짠 원의 원구, 대한제국을 병합 한 대일본 제국의 대동아전쟁)


·조선 민족이 잡다한 민족의 모임인 것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이 얼마든지 있다 일


·치마 저고리가, 아이를 낳은 여성은 가슴을 노출해 입는 옷인 것

·한반도에 고추가 퍼진 것은, 소금의 대신의 조미료였던 일


·이씨 조선의 시대에, 나무를 둥글게 하는 기술이 없어서, 이륜차가 없었던 것

·히데요시가 조선에 출병했을 때에, 히데요시 측에 붙고 명과 싸운 조선 인이 많이 있어 문어와


·말을 타 싸우고 있어요 구가 있고, 일본인이 아니어요 구가 있던 것

·일본에 문명을 가르쳐 주었다고 주장하는 왕인 박사의 출신지에, 왕인 박사의 일족의 후예도 왕이라고 하는 성의 사람도 없는 것


·타케시마가 고대부터 일관해서 일본의 영토에서 만난 것

·테이블로 고기를 굽는 요리법은 전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진 것


·문맹이었던 조선 인에 한글을 가르치기로 하고 한글을 넓힌 것은 일본인인 것

·고려의 시대에는, 제주도는 원래의 직할지에서, 원의 영토였던 일


·한국 전쟁전은 물론, 한국 전쟁 후도 쭉, 한국인은 백미를 주식으로 할 수 없었던 것

·한반도의 나라는 중국의 나라에 조공 하기에도 조공 하는 문물이 없기 때문에 여성을 헌상 하고 있던 것


·대한제국(이씨 조선)의 외국으로부터의 막대한 빚을, 일본이 대신 지불해 준 것


·대한제국(이씨 조선)의 이왕가의 귀국을 대한민국(현재의 한국)이 거부하고 있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이므로, 대한제국 병합에 대해서는 한국인(대한민국인)에게는 언급할 수 없는 것


·2000년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 중(안)에서, 한반도를 통일한 독립국가로서의 역사는, 936년부터 963년까지의 고려의 27년간으로 1895년부터 1910년까지의 이씨 조선(1897년부터 대한제국이라고 개칭)의 15년간 밖에 없는 것


·조선이라고 하는 국명으로 한 것은 명이지만, 타국에 자국의 국호를 결정해 준 세계에 단지 하나의 나라인 것

·(쿠다라)백제와 신라의 시대에 한반도에 살고 있던 일본인이 문명인으로서 다른 민족으로부터 존경받고 있던 것


·(쿠다라)백제와 신라로부터 귀화한 사람으로부터의 조선어의 전반을 볼 수 없는 것으로부터, 귀화인과는 한반도에 살고 있던 일본인인 것(귀화인을  도래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문자 그대로 돌아온 사람들.한반도로부터의 귀화인은 귀한자)


·옛부터 지금까지 항상 일본 열도가 한반도보다 문명 문화가 진행되고 있던 것


·제주도에는 조선 민족과는 다른 언어·풍습을 가지고 있던, 조선과는 다른 민족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를 병합 해 버린 것


·1948년에, 제주도의 민족을 대학살한 것

·제주도의 민족의 언어와 아이누어에 공통된 말이 있고, 제주도에는 일본 열도와 같은 민족이 살고 있던 것


·원구의 군사의 대부분은 고려인(조선 민족)이었던 일(한국에서는 원구를 원의 「일본 정벌」이라고 하고 있고, 고려인이 원구의 주력병이었던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민족이 도달하기 쉬워도 탈출하기 어려운 것이 반도이지만, 원래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살고 있고, 나중에 다른 민족이 오고, 그것이 조선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민족은 적성 민족이 없으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므로, 한반도의 조선 민족은 북쪽에서 남하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조선 민족이 남하해 왔다고 해도 단일의 민족으로서가 아니어서, 만주 민족, 몽골 민족, 한민족, 북방의 퉁구스 민족등이 남하해 조선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한국에서는 중국을 부모의 나라, 한국을 형(오빠)의 나라, 일본을 남동생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한국의 속국 사상인 것(일본은 독립국이었으므로, 그러한 발상이 없다)


·내시 제도가 신라의 시대부터 1894년의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있고, 거세된 남자의 내시가 있던 것

·조선 민족은 한민족·만주 민족·몽골 민족에게 종속되고 있어?`트 격하의 민족으로 되어 있던 것


·청조의 책봉 체제 중(안)에서 이씨 조선의 지위는 낮고, 조선 사신만이 라운드넥의 옷으로 걷고 뒷문으로부터 들어간 것(조선 사신만이 예복과 롱을 타는 것으로 정문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을 금지되고 있었다)


·옛 이씨 조선의 대극기에는 청나라 속국기라고 기록되고 있는 것

·견수사, 견당사, 일명무역의 시대에도 조선을 통하지 않고 일본은 교역 하고 있는 것


·이씨 조선의 시대도, 논의 관개 시설이 없었던 것

·1000년에 걸치는 매춘 건국인 것


·견수사, 견당사, 일명무역은 있었지만, 견고려사, 견조사와 같은 한반도와의 무역은 없었던 것

·조선의 절임의 발상지는 중국의 쥬우케이인 것


·고려의 청자는 중국의 은나라가 기원, 이씨 조선의 백자는 중국의 북제가 기원이며, 어느쪽이나 한반도의 발상의 문물이 아닌 것


·일본의 역사는 사실·진실인 채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역사인 것(역사를 위조하는 한국에 배려해 일본의 교과서를 기술하는 것 등 터무니 없는 것이다)


·한국의 교과서에는 「00을 일본에 가르쳐 주었다」그렇다고 하는 기술이 산과 같이 있다가, 그 모든 것이 위조·조작인 것(한국은, 일본 발상의 것조차 가르쳐 주었다고 기술하는 오만 불손한 나라.가르쳤다도 문제이지만,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 표기는 무례 천만)


·한반도 발상의 문물로 일본에 영향을 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조선 민족이 없어도 일본의 문명 문화는 발전하고 있던)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DNA의 벼가 일본에만 있다 일(벼농사는 중국 윈난성 근처에서 해로에서 큐슈에 전해졌기 때문에)


·신라나 (쿠다라)백제도 일본(원국)을 문화 대국으로서 경앙 하고 있던 것(한반도 첫 통일 국가인 신라의 기초 만들기를 지도한 것은 일본 열도로부터 건너 온 일본인이었다.「 제4대 신라왕의 해탈(소스)은, 일본의 토호쿠 천 마을에 있는 다파나국의 생」(삼국사기 신라본기), 다파나(타바나) 국은, 탄바, 있다 있어는 타지마라고 생각되고 있다)


·일본은 큐슈 북부와 한반도에 걸치고 있던 것(철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거점이 한반도 남부에 있어, 거기에서 남쪽이 원국(일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한국은 대방군(위의 직할지·현서울 부근)의 남쪽에 있어, 동서는 바다, 남쪽은 원과 접」 「악어 도달하는 에는(해안을 따라서 수행 해 한국을 거치고, 있다 있어는 남쪽 해, 있다 있어는 동쪽으로 가) 그 북해안, 구사한국에 이른다.(거기로부터) 처음해를 건너는 것 천 요리, 쓰시마에 이른다··」(위지 「한전」 및 「원인편」)


·일본은 한반도 남부의 거점을 통해서, 1 세기경에는 중국 대륙과 직접 교류하고 있던 것

·전쟁 전의 조선사 연구에서는, 신라 4대왕이 일본 열도의 출신자인 것 등 상식인 것


·신라 16대의 왕의 그 중 반수가 일본인인 것(반도고사 연구로 기본 자료로 여겨지는 「삼국사기 4」(동양문고)에 전문 실수의 역주가 있다.일본인(원종)은 4대째만으로 하는 것 주를 쓴 것은 한국인의 정조묘)


·신라와 (쿠다라)백제의 동시대의 「구당서와 신당서의 병칭」에, 「신라나 (쿠다라)백제도 원국(일본)을 대국으로서 경앙 하고 있다.그것은 원국에는 뛰어난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로, 항상 사절이 원국으로 향해 가고 있다」라고의 기술이 있다 일


·일본의 황실이 세계에서 제일 낡은 가계인 것

·아오모리현의 오히라산원유적이 「세계 최고」의 유적인 것


·일본의 신도와 같은 신앙은 온 세상에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 밖에 남지 않은 것


·일본의 전방 후원분은 3 세기에 출현했지만, 조선 남부의 영산강으로부터 발견된 전방 후원분은5~6세기의 것(일본인이 한반도에 살고 있던 증거이라고 안 한국인은 한반도의 전방 후원분을 폭파했다)


·(쿠다라)백제에서는 1 세기가 되고 처음으로 벼를 재배할 것이라는 왕령이 나온 것

·일본의 농업 용어에 조선 유래의 말이 없는 것(조선으로부터 전래하고 있지 않으니까)


·일본 서기가 쓰여진 것은 8 세기이지만, 조선의 삼국유사가 쓰여진 것은 13 세기이며, 일본의 신화가 조선의 신화보다 낡은 일(일본의 신화가 조선의 신화를 흉내냈다는 것은 거짓말.조선 신화가 5000년전의 곰타로(단군) 신화를 실화로서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황당 무계)


·조선이 속국이었기 때문에, 조선으로부터의 사절이 외교 사절이 아니고 조선 통신사로 여겨진 것


·현재 서울의 성문이 있던 장소에는 「독립문」이라고 하는 것이 지어졌지만, 옛날 그 자리소에는 「영은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어, 그것은 「조선왕이 9회두를 지면에 두드려 붙여 켜 붙여 부디 청의 사자를 맞이한다」라고 하는·굴욕적인 예속의 상징의 문이었던 일


·조선 국왕은 중국의 왕조의 황제에 의해서 임명된 것

·조선 국내의 사건은 모두 황제에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조선 국왕의 지위는, 중국의 왕조의 정신보다 아래였던 일

·조선 정부에는, 화폐의 주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


·조선 정부에는 청나라에의 식량, 병사 제공의 요구권도 없었던 것조선은 청나라에 세세하게 정해진 공품을 내는 것 외에, 매년, 우 3000마리, 말 3000마리, 각지의 미녀 3000명을 추려 뽑아 헌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신라가 일본의 속국이며, 신라의 왕자가 일본에 인질에게 있어져서 있던 것


·백촌강의 싸움이란, 일본의 속국으로부터 당의 속국이 되어 잠 돌아간 신라를 둘러싼, 일본과 당의 종주국끼리의 싸움인 것


·한글이 일본의 아비류문자의 흉내인 것

·조선 통신사가, 조선의 왕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오도록 듣고 있던 것


·병합전의 대한제국이 아시아 최빈국이었던 일(1910년의 인도보다, 1910년의 한반도는 궁핍했다)


·이씨 조선의 왕의 즉위의 해에는, 「조선국, 권서 국사, 신리모」로부터 시작되어, 「국사를 빌리러 처리하는 신하 이」라고, 이씨 조선의 왕으로부터 청에의 서신에 쓰여져 있던 것


·「조선」이란 조공물의 적은 나라라고 하는 의미인 것(선은 적다고 하는 의미)

·현재의 조선 민족과 고조선과는 민족의 연속성이 없는 것(현재 확인되고 있는 조선 고어는 180어 밖에 없다)


·만주국 국가를 한국 국가로 하고 있는 것

·이씨 조선이 남존여비의 사회이며 여자는 아이를 낳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


·한국은 토호쿠에서 홋카이도의 위도에 있는 한랭 지대에서 만나며, 남방의 음식인 벼가 자랄 리가 없어서, 1980년대까지 한국인은 잡곡을 먹고 있던 것


·한반도에는 가치 있다 문화, 부나 음식, 풍부한 토지등 전혀 없었다고 하는 이유로, 중국의 왕조가 한반도를 자국령으로 하지 않았던 것


·톤술(인분주)이 있다 일(견, 고양이, 비둘기의 대변의 술도 있다)

·백제시대에는, (쿠다라)백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남부에서 중부까지 일본의 문화권이었던 일


·유전자(DNA) 감정에 의하면, 현재의 코리안의 대부분이 북방계 민족으로, 일본인의 계통과는 완전히 다른 것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번영한 것이 한일합방 시대인 것(인프라가 정비되어 인구는 배증, 학교가 만들어져 교육 수준도 올랐다)


·환자의 흉내를 하는 병든 몸무용이 있던 것

·전후, 장해아를 해외에 양자에게 내 버리고 있던 것


·한반도에서는 올드 스식 동검도 그것을 제조하는 주형도 발견되지 않은 것(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에서는 발굴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대륙성의 청동 나이프가 발견되지 않은 것(일본에서는 발견되고 있다)


·조선은 외부 세계와 격절 한 비경으로, 문화가 없었던 것

·한반도에는 옷감을 염색하는 기술이 없어서, 주민은 탈색한 흰 옷 밖에 벌없었던 것


·고구려가, 일본을 레벨을 올림의 나라로서 일본에 조공 하고 있던 것

·고구려도 발해도 조선 민족의 나라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이씨 조선의 이씨가 만주 민족이었던 일(한국이 이씨 조선의 초대의 이성계의 역사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것은 이성계가 만주인이니까)

·부친의 대변을 아들이 깔보고 건강을 보는 것이 타카유키 아들로 되어 있던 것


·명의 황제의 의상이 용 9마리, 황족이 8,7마리, 대신급이 6,5마리, 지방의 관공서의 장이 43마리지만, 조선왕은 용 3마리의 의상이었던 일(용 3마리의 의상에도 빨강과 파랑이 있다가, 격하의 푸른 의상이었다)


·이씨 조선에는 1882년까지 국기가 없었던 것(속국이었기 때문에)

·이씨 조선의 수도의 한성(현재의 서울)에, 도로조차 충분히 없었던 것


·코가 구부러질 것 같은 분뇨의 악취가 한반도 전 국토를 감싸고 있던 것

·집이 수혈식 주거에 가까운 것인 것


·조선에서는 중국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서민에게는 유통하지 않고, 서민은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시장에서 물물교환 하고 있던 것

·이씨 조선 시대에, 성적 봉사를 실시하는 「기생 키센」이 있고, 신분은 노비이며, 기생이 성 노예였던 일


·대한제국 병합시, 조선에 공립 학교는 약 100교 밖에 없었지만 대일본 제국이 1943년까지 4271교까지 늘린 것(그것들은 당시 일본 열도에도 없었던 콘크리트나 벽돌 구조의 3층 건물 교사 등이었다)


·한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조선 민족의 나라로 하고 있지만, 고구려는 일본을 형(오빠)의 나라로서 외교 사절을 배웅하고 오고, 고구려의 뒤의 발해는 일본을 「아버지의 형(오빠), 백부(두려워해)」의 나라로서 외교 사절 (을)를 배웅하고 오고 있던 것


·김치가 인분을 혼합해 발효 시키는 식품이었던 일(인분의 악취를 지우기 위해서 고추를 듬뿍 넣은)

·김치에 사용되는 배추도 일본에서 전해진 것(타이쇼 시대에 나고야의 노자키덕시로가 재배에 성공했다)


·공무원이 신으로 하기 위해 기둥을 잘라 버리므로, 빼앗기지 않게, 기둥에 인분을 바르는 일이 있던 것

·이씨 조선의 이씨는 아키라·키요시의 후원자로 조선왕을 자칭해 받을 수 있어여, 한반도는 실질은 무주지였던 일


·대일본 제국의 민간은행 「제일 은행 한국총지점」이 1902년에 제일 은행권을 발행했지만, 그것이 한국에서 첫 지폐인 것



너무 많아서 약어




한국은 사상 최대의 사기꾼 집단인


知れば知るほど韓国人には驚愕する

【コリアン(朝鮮民族、韓国人・北朝鮮イン)が認めたがらない歴史的事実一覧】


・稲作が九州から朝鮮半島に伝わったこと

・唐辛子が日本から朝鮮に伝わったこと(足袋(たび)に入れて足を温めるものとして朝鮮半島に持ち込まれたのが唐辛子)


・半島南部の先住民が日本人であったこと

・新羅の建国時の宰相が日本人であり、王家の二つがわ人系統であること、また始祖の朴赫居世についても日本人説があること


・百済、新羅が大和朝廷に対し従属的地位にあったこと

・大和朝廷による任那(伽耶)地域の支配があったこと(半島南部における多数の前方後円墳の存在)


・朝鮮半島における文化的独自性が欠落していること(あらゆる分野での古典の不在)

・属国として歩んできた歴史であること(漢民族・モンゴル民族・満洲民族のどの民族からも朝鮮民族は格下扱いされてきた)


・中国の属国になってから、みずから改名して、中国語の姓名であること

・秀吉の朝鮮出兵が日本と明の戦争であったこと(李氏朝鮮の軍は明の軍の指揮下に入り、和平交渉も日本と明の間で行われた)


・李氏朝鮮王が、中国の地方長官の地位でしかなかったこと

・清から、李氏朝鮮が琉球とベトナムよりも格下に扱われていたこと


・李氏朝鮮の前の高麗では、元の命令で、王妃が代々モンゴル人であり、モンゴル人の母親から生まれた息子しか国王になれなかったこと


・朝鮮半島の国が、歴史上一度も、単独では戦争に勝ったことがないこと(朝鮮民族と組んだ国も戦争に勝てない。高麗と組んだ元の元寇、大韓帝国を併合した大日本帝国の大東亜戦争)


・朝鮮民族が雑多な民族の集まりであること

・ハングルで表記できない発音がいくつもあること


・チマチョゴリが、子を産んだ女性は胸を露出して着る服であったこと

・朝鮮半島に唐辛子が広まったのは、塩の代わりの調味料だったこと


・李氏朝鮮の時代に、木を丸くする技術がなくて、二輪車がなかったこと

・秀吉が朝鮮に出兵した時に、秀吉側について明と戦った朝鮮インがたくさんいたこと


・馬に乗って戦っているわ寇がいて、日本人じゃないわ寇がいたこと

・日本に文明を教えてあげたと主張する王仁博士の出身地に、王仁博士の一族の末裔も王という姓の人もいないこと


・竹島が古代から一貫して日本の領土であったこと

・テーブルで肉を焼く料理法は戦後、日本から韓国に伝わったこと


・文盲だった朝鮮インにハングルを教えることにしてハングルを広めたのは日本人であること

・高麗の時代には、済州島は元の直轄地で、元の領土だったこと


・朝鮮戦争前はむろん、朝鮮戦争後もずっと、韓国人は白米を常食にできなかったこと

・朝鮮半島の国は中国の国に朝貢するにも朝貢する文物がないので女性を献上していたこと


・大韓帝国(李氏朝鮮)の外国からの莫大な借金を、日本が代わりに支払ってやったこと


・大韓帝国(李氏朝鮮)の李王家の帰国を大韓民国(現在の韓国)が拒否していて、大韓帝国と大韓民国は別の国であるので、大韓帝国併合については韓国人(大韓民国人)には言及できないこと


・2000年近い朝鮮半島の歴史の中で、朝鮮半島を統一した独立国家としての歴史は、936年から963年までの高麗の27年間と、1895年から1910年までの李氏朝鮮(1897年から大韓帝国と改称)の15年間しかないこと


・朝鮮という国名にしたのは明だが、他国に自国の国号を決めてもらった世界にただ一つの国であること

・百済と新羅の時代に朝鮮半島に住んでいた日本人が文明人として他の民族から尊敬されていたこと


・百済と新羅から帰化した人からの朝鮮語の伝搬が見られないことから、帰化人とは朝鮮半島に住んでいた日本人であったこと(帰化人を渡来人というのは誤り。文字通り帰ってきた人達。朝鮮半島からの帰化人は引き揚げ者)


・昔から今まで常に日本列島が朝鮮半島よりも文明文化が進んでいたこと


・済州島には朝鮮民族とは別の言語・風習を持っていた、朝鮮とは別の民族が住んでいたにもかかわらず、済州島を併合してしまったこと


・1948年に、済州島の民族を大虐殺したこと

・済州島の民族の言語とアイヌ語に共通な語があって、済州島には日本列島と同じ民族が住んでいたこと


・元寇の兵の大半は高麗人(朝鮮民族)だったこと(韓国では元寇を元の「日本征伐」としていて、高麗人が元寇の主力兵だったことを教えていない)


・民族が到達しやすくても脱出しにくいのが半島だが、そもそも朝鮮半島には日本人が住んでいて、後から別の民族がやってきて、それが朝鮮民族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こと


・民族は敵性民族がいなければ暖かい所に移動するので、朝鮮半島の朝鮮民族は北のほうから南下してきたと考えられること


・朝鮮民族が南下してきたといっても単一の民族としてではなくて、満洲民族、モンゴル民族、漢民族、北方のツングース民族等が南下して朝鮮民族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こと


・韓国では中国を親の国、韓国を兄の国、日本を弟の国だと教えているが、それ自体が韓国の属国思想であること(日本は独立国だったので、そういう発想がない)


・宦官制度が新羅の時代から1894年の甲午改革で廃止されるまであって、去勢された男子の宦官がいたこと

・朝鮮民族は漢民族・満洲民族・モンゴル民族に従属していて格下の民族とされていたこと


・清朝の冊封体制の中で李氏朝鮮の地位は低く、朝鮮使臣のみが丸首の衣で歩いて裏門から入ったこと(朝鮮使臣のみが礼服と籠に乗ることと正門から入ることを禁じられていた)


・昔の李氏朝鮮の大極旗には清国属国旗と記されていること

・遣隋使、遣唐使、日明貿易の時代にも朝鮮を通さずに日本は交易していること


・李氏朝鮮の時代も、水田の灌漑施設がなかったこと

・1000年にわたる売春立国であること


・遣隋使、遣唐使、日明貿易はあったが、遣高麗使、遣朝使のような朝鮮半島との貿易はなかったこと

・朝鮮の漬け物の発祥地は中国の重慶であること


・高麗の青磁は中国の殷が起源、李氏朝鮮の白磁は中国の北斉が起源であり、どちらも朝鮮半島の発祥の文物ではないこと


・日本の歴史は事実・真実のままで世界に誇れる立派な歴史であること(歴史を偽造する韓国に配慮して日本の教科書を記述することなどとんでもないことである)


・韓国の教科書には「〇〇を日本に教えてあげた」という記述が山のようにあるが、そのすべてが偽造・ねつ造であること(韓国は、日本発祥のものでさえ教えてあげたと記述する傲岸不遜な国。教えたも問題だが、教えてあげたという表記は無礼千万)


・朝鮮半島発祥の文物で日本に影響を与えたものは一つもないこと(朝鮮民族がいなくても日本の文明文化は発展していた)

・朝鮮半島に存在しないDNAの稲が日本だけにあること(稲作は中国雲南省あたりから海路で九州に伝わったから)


・新羅も百済も日本(わ国)のことを文化大国として敬仰していたこと(朝鮮半島初の統一国家である新羅の基礎づくりを指導したのは日本列島から渡ってきた日本人だった。「第四代新羅王の解脱(タレ)は、日本の東北一千里にある多婆那国の生れ」(三国史記新羅本記)、多婆那(タバナ)国は、丹波、あるいは但馬と考えられている)


・日本国は九州北部と朝鮮半島にまたがっていたこと(鉄資源を採取するための拠点が朝鮮半島南部にあり、そこから南がわ国(日本)と認識されていた。「韓は帯方郡(魏の直轄地・現ソウル付近)の南にあり、東西は海、南はわと接す」「わに至るには(海岸に沿って水行し韓国を経て、あるいは南し、あるいは東し)その北岸、狗邪韓国に至る。(そこから)はじめて海を渡ること千余里、対馬国に至る・・」(魏志「韓伝」および「わ人伝」)


・日本は朝鮮半島南部の拠点を通じて、1世紀ごろには中国大陸と直接交流していたこと

・戦前の朝鮮史研究では、新羅4代王が日本列島の出身者であることなど常識であったこと


・新羅16代の王のうち半数が日本人であったこと(半島古史研究で基本資料とされる『三国史記4』(東洋文庫)に全文間違いの訳注がある。日本人(わ種)は4代目のみとする訳注を書いたのは韓国人の鄭早苗)


・新羅と百済の同時代の『唐書』に、「新羅も百済もわ国(日本)を大国として敬仰している。それはわ国には優れた品々が多いためで、常に使節がわ国に赴いている」との記述があること


・日本の皇室が世界で一番古い家系であること

・青森県の大平山元遺跡が「世界最古」の遺跡であること


・日本の神道のような信仰は世界中にあったが、今は日本にしか残っていないこと


・日本の前方後円墳は3世紀に出現したが、朝鮮南部の栄山江から発見された前方後円墳は5~6世紀のものであること(日本人が朝鮮半島に住んでいた証拠であると知った韓国人は朝鮮半島の前方後円墳を爆破した)


・百済では1世紀になって初めて稲を作るべしとの王令が出たこと

・日本の農業用語に朝鮮由来の言葉がないこと(朝鮮から伝来していないから)


・日本書紀が書かれたのは8世紀だが、朝鮮の三国遺事が書かれたのは13世紀であり、日本の神話が朝鮮の神話よりも古いこと(日本の神話が朝鮮の神話を真似たというのは嘘。朝鮮神話が5000年前の熊太郎(檀君)神話を実話として教科書で教えているのは荒唐無稽)


・朝鮮が属国だったから、朝鮮からの使節が外交使節でなく朝鮮通信使とされたこと


・現在ソウルの城門のあった場所には「独立門」というものが建てられたが、昔その場所には『迎恩門』という門があり、それは「朝鮮王が9回頭を地面に叩きつけて擦りつけ、ひれ伏して清の使者を迎える」という・屈辱的な隷属の象徴の門だったこと


・朝鮮国王は 中国の王朝の皇帝によって任命されたこと

・朝鮮国内の事件は全て皇帝に報告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


・朝鮮国王の地位は、中国の王朝の廷臣よりも下だったこと

・朝鮮政府には、貨幣の鋳造権すら与えられてなかったこと


・朝鮮政府には清国への食糧、兵士提供の要求権もなかったこと 朝鮮は清国に細かく定められた貢品を出す以外に、毎年、牛3000頭、馬3000頭、各地の美女3000人を選り抜いて貢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と


・新羅が日本の属国であって、新羅の王子が日本に人質にとられていたこと


・白村江の戦いとは、日本の属国から唐の属国になって寝返った新羅をめぐっての、日本と唐の宗主国同士の争いであったこと


・ハングルが日本の阿比留文字の真似であること

・朝鮮通信使が、朝鮮の王から、日本から技術を学んでくるように言われていたこと


・併合前の大韓帝国がアジア最貧国だったこと(1910年のインドよりも、1910年の朝鮮半島は貧しかった)


・李氏朝鮮の王の即位の年には、「朝鮮国、権署国事、臣李某」から始まり、「国事をかりに処理する臣下の李」と、李氏朝鮮の王から清への書状に書かれていたこと


・「朝鮮」とは朝貢物の少ない国という意味であること(鮮は少ないという意味)

・現在の朝鮮民族と古朝鮮とは民族の連続性がないこと(現在確認されている朝鮮古語は180語しかない)


・満州国国歌を韓国国歌にしていること

・李氏朝鮮が男尊女卑の社会であって女は子を産む存在でしかなかったこと


・韓国は東北から北海道の緯度にある寒冷地帯であって、南方の食べ物である稲が育つはずがなくて、1980年代まで韓国人は雑穀を食べていたこと


・朝鮮半島には価値ある文化、富や食、豊かな土地などまったくなかったという理由で、中国の王朝が朝鮮半島を自国領にしなかったこと


・トンスル(人糞酒)があること(犬、猫、鳩の糞の酒もある)

・百済時代には、百済を含めた朝鮮半島の南部から中部まで日本の文化圏だったこと


・遺伝子(DNA)鑑定によれば、現在のコリアンの多くが北方系民族で、日本人の系統とはまったく異なること


・朝鮮半島の歴史上、最も繁栄したのが日韓併合時代であったこと(インフラが整備され、人口は倍増、学校が作られて教育水準も上がった)


・病人のまねをする病身舞があったこと

・戦後、障害児を海外に養子に出して捨てていたこと


・朝鮮半島ではオルドス式銅剣もそれを製造する鋳型も見つかっていないこと(中国大陸と日本列島では発掘されている)

・朝鮮半島では大陸性の青銅ナイフが見つかっていないこと(日本では見つかっている)


・朝鮮は外部世界と隔絶した秘境で、文化がなかったこと

・朝鮮半島には布を染色する技術がなくて、住民は色落ちした白い服しか着れなかったこと


・高句麗が、日本を格上の国として、日本に朝貢していたこと

・高句麗も渤海も朝鮮民族の国とは言えないこと


・李氏朝鮮の李氏が満洲民族だったこと(韓国が李氏朝鮮の初代の李成桂の歴史ドラマを作らないのは李成桂が満洲人だから)

・父親の大便を息子がなめて健康を見るのが孝行息子とされていたこと


・明の皇帝の衣装が龍9匹、皇族が8,7匹、大臣級が6,5匹、地方の役所の長が4,3匹なのだが、朝鮮王は龍3匹の衣装だったこと(龍3匹の衣装にも赤と青があるが、格下の青い衣装だった)


・李氏朝鮮には1882年まで国旗がなかったこと(属国だったから)

・李氏朝鮮の首都の漢城(現在のソウル)に、道路すらろくになかったこと


・鼻が曲がりそうな糞尿の悪臭が朝鮮半島全土をおおっていたこと

・家が竪穴式住居に近いものであったこと


・朝鮮では中国の貨幣を使用していたが、庶民には流通せず、庶民は5日おきに開かれる市場で物々交換していたこと

・李氏朝鮮時代に、性的奉仕を行う「妓生キーセン」がいて、身分は奴婢であって、妓生こそが性奴隷だったこと


・大韓帝国併合時、朝鮮に公立学校は約100校しかなかったが大日本帝国が1943年までに4271校まで増やしたこと(それらは当時日本列島にもなかったコンクリートやレンガ造りの三階建て校舎などだった)


・韓国は高句麗と渤海を朝鮮民族の国としているが、高句麗は日本を兄の国として外交使節を送ってきて、高句麗の後の渤海は日本を「父の兄、伯父(おじ)」の国として外交使節を送ってきていたこと


・キムチが人糞を混ぜて発酵させる食品だったこと(人糞の臭みを消すために唐辛子をどっさり入れた)

・キムチに使われる白菜も日本から伝わったこと(大正時代に名古屋の野崎徳四郎が栽培に成功した)


・役人が薪にするため柱を切ってしまうので、持っていかれないように、柱に人糞を塗ることがあったこと

・李氏朝鮮の李氏は明・清の後ろ盾で朝鮮王を名のっていただけであり、朝鮮半島は実質は無主地だったこと


・大日本帝国の民間銀行「第一銀行韓国総支店」が1902年に第一銀行券を発行したが、それが韓国で初めての紙幣であったこと



多すぎて略




韓国は史上最大の詐欺師集団である



TOTAL: 171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451 폭소 w 비상식적인 변명이 언제나 같....... (9) greatjp22 2021-05-08 600 0
1450 존중·양심에 기대하지 말아라.한국인....... (3) oozinn 2021-05-06 317 0
1449 한국 초등 학생의 졸업 앨범 (2) merutodaun 2021-05-01 879 6
1448 무엇이든지 있는 한국이 아닌가 (2) 千鳥足101 2021-04-30 793 0
1447 성 노예의 조건이 근저로부터 무너지....... (1) anasuicool 2021-03-10 689 2
1446 웃지 마, 웃으면 패배다 (6) 千鳥足101 2021-03-09 878 0
1445 한국 「고아 수출」의 실태 「 겨울....... (5) uxbridge 2021-03-07 448 3
1444 ” 제2의 너트공주”가 등장?차내에서....... (3) masamasa123 2021-03-03 584 0
1443 나의 아버지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 (2) 千鳥足101 2021-03-03 536 1
1442 심한 이야기다. (3) aooyaji588 2021-01-28 430 0
1441 남쪽이라면 KF-X다 (2) 千鳥足101 2021-01-27 436 0
1440 1942해에 징병되었다고 날조 JAPAV57 2021-01-16 214 0
1439 이봐요, 새로운 남편 님이다 千鳥足101 2021-01-12 441 0
1438 외국군의”밤의 상대”를 하게 한 북....... greatjp22 2021-01-09 358 0
1437 한국제라고 (듣)묻지 않아 千鳥足101 2021-01-08 478 0
1436 여자 추장이 반항wwwwww (2) あかさたなはまやら 2021-01-01 395 0
1435 한국과 한국인을 공부하면 경악 하는 (1) paly2 2020-12-11 329 0
1434 3만명에게도 달하는 「코피노」의 존....... (1) bluebluebluu 2020-12-07 580 0
1433 세계 제일의 거짓말쟁이 집단이 한국....... (1) paly2 2020-12-03 337 0
1432 알면 알수록 한국인에게는 경악 하는 paly2 2020-11-29 45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