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영광이지만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닛폰人에게는 타인의 성과가 인생 최대 기쁨인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수준급의 코메디지만 백번양보해 그들의 주장을 100% 퍼펙트하게 수용한다면 하면,
확실히 그 갯수의 격차는 국가의 연구 수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타인의 객관적 평가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테스트가 존재하는 것이고
스스로는 자신감이 가득하지만 외부시선에 의한 객관적 평가가 낮다면
그 괴리에 대해 단념을 하든지 더 노력해 그 괴리를 좁히려고 할 것이다.
노벨상이든지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권위가 있는 賞의 受賞은 이러한 점에서
그 객관성의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갯수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한국은 노벨상이 없다며 닛폰의 노벨상 갯수로 필사적으로 어필하면서 민족의 우열을 붙인다면
당연히 구미와 비교될 수 밖에 없고, 닛폰은 영원히 근원적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없을 것.
핵심은
“xx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 우리도 노력하면 성과가 나온다”이고, 그것이 건강한 자신감이자, 자존감입니다.
닛폰의 노벨상이 국책이든 뭐든 그토록 획득했다면 이제는 열등감, 자격지심에서 해방될 때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강박증환자처럼 수집하고 컬렉션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딱하고, 안쓰럽다.
누차 말해왔지만,
2000년대 이후 닛폰의 노벨상 러시는 과거 전성기시절 닛폰 경제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침체, 쇠퇴를 거듭하며 30년 제로성장하며 사회 전분야에서 활력과 동력을 잃은 것이 닛폰의 현주소인데도
노벨상만큼은 웬지 매년 받을 수 있다고 호르홀하는 것은 희망고문이랄까 순진한 망상이랄까
훈도시와 竹槍으로 귀축 영미에 대항하겠다는 그 시절의 신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닛폰은 역시 섬나라 난쟁이가 그 본질.
결국, 그게 자기자신을 갉아먹을 것이다. 응.
(´-`=)
基本的には個人の光栄だが国家と個人を同一視するニッポン人には他人の成果が人生最大喜びであるようだ.
それだけでも水準級のコメディだが百回譲歩して彼らの主張を 100% パーフェクトするように収容したらすれば,
確かにその数の格差は国家の研究水準に対する評価でもある.
自信感というのは自分自身の評価も重要だが時々他人の客観的評価も必要だ.
そうするので, テストが存在することで
自らは自信感が一杯だが外部視線による客観的評価が低ければ
その乖離に対して思い切りをしようがもっと努力してその乖離を狭めようと思うでしょう.
ノーベル賞でも国際的に公認されるとか権威がある 賞の 受賞はこのような点で
その客観性の尺度になると言える.
そうだから数は全然関係ないです.
韓国はノーベル賞がないとニッポンのノーベル賞数に死に物狂いでアッピールしながら民族の優劣を付けたら
当然欧米と比較されるしかなくて, ニッポンは永遠に根源的コンプレックス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
核心は
"xxに比べて劣等ではない. 私たちも努力すれば成果が出る"で, それが元気な自信感と同時に, 自尊感です.
ニッポンのノーベル賞が国策でもなんでもそのように獲得したらこれからは劣等感, 自激之心で解放される時と思うのに
まだ強迫重症患者のように収集してコレクションすることを見れば率直にいたわしくて, 労しい.
再三言って来たが,
2000年代以後ニッポンのノーベル賞ラッシュは過去全盛期時代ニッポン経済の成果と言える.
沈滞, 衰退を繰り返えして 30年ゼロ成長して社会全分野で活力と動力を失ったことがニッポンの現住所なのに
ノーベル賞だけは何故か毎年受けることができるとホルホルすることは希望顧問だと言えるか純粋な妄想だと言えるか
ふんどしと 竹槍で鬼畜英米に対抗するというその時代の神話と別段違わない.
ニッポンはやっぱり島国一寸法師がその本質.
結局, それが自分自身をかじるでしょう. う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