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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후예` 아베, 어쩌다 혐한 이끈 `극우 선봉` 됐나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급작스러운 퇴진 발표는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퇴진 발표 며칠 전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미디어들은 아베 총리의 건강 문제에 대해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한국에서 관심도가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한국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이유는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역사수정주의, 수출규제 등 아베 총리가 보여온 대한(對韓) 적대 행보가 큰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지만 정치인 아베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거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는 여전히 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계속할 뿐 아니라, 유력 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의 복심”으로 불리며 아베 정권 정책의 계승을 공언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난 6번의 총선 때 아베 총리의 공천을 받았던 자민당 의원들은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실 아베 총리는 도래인(渡來人), 즉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가문의 후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상과 역사관, 정치 인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항상 언급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뿐 아니라 친조부 아베 간 역시 도래인으로 추정되고 있죠. 어찌 보면 아베 총리는 혈연적으론 일본 유력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한국과 인연이 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반한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세습 정치 가문인 아베가의 지역구이자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현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던 곳입니다.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는 아베 총리가 최장 집권기간을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최장수 총리였습니다. 사토 전 총리는 타계하기 1년 전인 1974년, 임진왜란 때 붙들려와 일본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킨 한국인들 중 한 사람인 심수관의 후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가문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넘어왔다”고 고백하곤 묵이식지(默而識之·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통한다)라는 휘호를 남깁니다.

반도 출신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력 정치인인 그가 후폭풍을 무릅쓰고 사실을 고백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뿌리를 당당히 밝혀온 심수관의 모습에 사토 전 총리는 말년이 돼서야 사실을 털어놓게 된 듯합니다. 2006년 “주간 아사히”는 아베가에서 40여 년간 머물며 아베 형제를 키워낸 구보 우메라는 여성이 아베 총리의 아버지 신타로가 가끔 집안에서 “난 한국인이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죠. 뿌리를 한반도에 둔 사토 가문의 일원인 아베 신조 총리에겐 결국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평화주의자 조부·부친 대신 외조부 추종

아베 총리는 2013년 미국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날 우익 군국주의자로 부르고 싶으면 불러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전후 총리 중 가장 우익적 행보를 보여온 아베 총리지만, 그의 조부와 부친은 평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조부 아베 간은 일본 군국주의에 시종일관 반전과 평화주의로 맞선 반골 정치인으로서 도조 히데키 내각의 퇴진을 강력히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신타로 역시 반전주의자 이자 재일 한국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친한파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던 그가 “기시의 사위”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해 “난 기시의 사위가 아니라 아베 간의 아들이다”라고 강조하곤 했다고 증언합니다. 신타로는 보수정당인 자민당 의원이었지만 정치적 균형감각이 탁월한 평화헌법 옹호론자였습니다. 1980년 선거 직전 사망한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는 병상에서 최측근에게 “신타로의 균형감각은 자민당에 귀중한 자산이니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죠.
전쟁을 겪은 이전 세대들과 달리 전후 세대인 아베 총리는 조부 아베 간이 닦아놓은 지역구를 물려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조부에 대해 언급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항상 외조부 기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다정히 대해주던 기시를 우러르며 자란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등 전후 체제는 전쟁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에 내려진 매우 부당한 조치로 인식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은 기시의 인식 체계를 빼다박은 것입니다. 아베 총리에겐 평화주의자이자 균형감을 갖춘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었지만, 그는 외조부를 따라 우익이자 역사수정주의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도쿄대 가라”는 부친에의 반항심과 학력 콤플렉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배경인 조부와 외조부, 부친은 모두 일본 최고 학부인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들입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세이케이(成蹊)대학 출신으로 “일관 교육”이라는 일본 특유의 제도를 통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녀 입시 경험이 없습니다. 금수저 중 금수저로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 등 고생 한번 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된 그에게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과거 수차례 학력과 관련한 콤플렉스를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04년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계속 세이케이 학원에 다녀 입시 경험이 없다. 사람은 한 번쯤 죽을 각오로 공부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자민당 간사장 시절인 2003년엔 “조부가 대단한 수재였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밖에도 아베 내각이 역대 내각 중 도쿄대 출신 각료가 특히 적다거나, 도쿄대 출신이 즐비한 재무성 관료들을 아베 총리가 푸대접한다는 소문 등은 그의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일화들로 회자 돼 왔습니다.

아베 총리는 고등학교 진학 후 부친으로부터 “도쿄대에 가라”는 압박을 받곤 했습니다. 때론 사전으로 머리를 툭툭 맞으며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데다 정치활동으로 집을 자주 비웠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까지 더해져 그는 입시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화주의자와 친한파였던 조부와 부친 대신 외조부에 대한 사상적 편향이 심한 이유도 조부와는 친밀했던 기억이 없는데다 부친의 도쿄대 진학 요구에 대한 반항심과 학력 콤플렉스가 작용했을수 있습니다.


아베, 고집불통에 반대 의견엔 무조건 귀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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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중엔 자기 주장이 강한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특히 고집이 세고 툭하면 반대 의견에 귀를 닫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친인척과 동창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번 고집 피우면 말을 듣지 않는 아이” “자기 생각에 말이 안되는 건 정말 싫어한 친구”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베 가문을 반평생 취재해온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에 따르면, 그의 이런 성향은 개헌 이나 안보법제 문제에 관한 한 더 두드러지며, 권력의 계단을 오르면서 더 공고해졌습니다. 안보법제를 심의했던 2015년 국회에서 아베 총리는 법안에 어깃장을 놓는 야당 의원들에게 야유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질문 요지에도 안 맞는 엉뚱한 소신을 늘어놓아 주변을 당황케 했습니다. 노가미 기자는 그의 저서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을 통해 아베 총리의 이런 모습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평생 과업”이라며 개헌을 추진하고 역사수정주의를 줄기차게 추구해온 것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철석같이 믿는 개헌과 안보에 대한 사고 체계는 “얄팍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 그를 가르쳤던 은사들과 동창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학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며 세미나 등 토론 수업에도 적극 참여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지금 보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는 부잣집 도련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증언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의 정치적 신념은 논쟁이나 학문을 통해 체득한 것도, 세습 정치가인 만큼 독자적으로 정치 경력을 쌓으며 연마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외조부 기시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대해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아베는 외조부가 한 일은 다 옳다고 배웠다. 외조부를 존경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특정인이 한 일은 전부 옳다고 믿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정치적 신념과 관련된 사상과 사고는 설익은 채 외조부의 정치적 DNA만 요령껏 흉내낸 상태에서 납치 문제를 발판 삼아 운좋게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다는 겁니다.

아베 총리는 “정치는 결과로 책임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입버릇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건강 문제로 책임에 부응한 결과를 못 낼 것 같으면 사임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말로 돌아왔습니다. 일본 최장수 총리라는 역사를 새로 썼지만, 두번이나 정권을 내던진 모습에서 조부와 부친은 물론 외조부도 보여줬던 지위에 대한 책임감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부와 부친, 외조부의 정치적 명성과 학력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아베 총리는 어쩌면 이에 대한 콤플렉스와 유약한 본모습을 극우 매파라는 갑옷으로 애써 감추려 해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0/09/28942/


韓国人後裔` Abe, 偶然に嫌韓導いた `極右先鋒` になったか

韓国人後裔` Abe, 偶然に嫌韓導いた `極右先鋒` になったか


先月 28日Abe信條日本総理の急な退陣発表は世間の多くの注目を引きました. 退陣発表数日前毎日新聞など日本メディアたちはAbe総理の健康問題に対して他の国々より特に韓国で関心度が高いと報道したりしたんです. 韓国でAbe総理に対する注目度の高い理由は日本という国自体に対する関心もあるが歴史修正株の, 輸出規制などAbe総理が見えて来た大韓(対韓) 敵対歩みの大きい要因に良いようです.

たとえ総理職を下ろすようになったが政治家Abeの影響力が大きく減ると思うことは難しいです. 彼は相変らず議員として政治活動を続くだけでなく, 有力あとがまであるスがヨシヒデ官房長官は "Abeの覆審"と呼ばれてAbe政権政策の継勝を言い放った状態だからです. また去る 6番(回)の総選の時Abe総理の公薦を受けた自民党議員たちは彼の影響力で自由ではないです.

実はAbe総理は到来である(渡来人), すなわち韓半島から日本列島で移住した家門の後裔に知られています. 彼の思想と歴史観, 政治人生全般にわたってこの上なく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人物にいつも言及される外祖父岸掻ブースするようにだけではなく親祖父Abeの間やはり到来人に推定されています. どう思えばAbe総理は血続き的では日本有力政治だって中で一番韓国と縁が深いかも知れないです. しかし切なくも彼は歴代日本総理の中で一番反韓国的な姿を見せてくれました.

世襲政治家門であるAbe加衣地方区と同時に政治的故郷であるYamaguchi県は歴史的に韓半島と人跡・物的交流が活発だった所です. Abe総理の外従祖父佐藤エイサクの前総理(岸掻ブースするようにの実の弟)はAbe総理が最長集権期間を更新する前まで歴代最長寿総理でした. 佐藤前総理は他界する 1年前の 1974年, 壬辰の乱の時つかまって来て日本陶磁器産業を発展させた朝鮮人たちの一人である心受官の子孫を尋ねます. そして "私たちの家門も壬辰の乱以後朝鮮から越えて来た"と告白してはムックイシックジ(黙而識之・言わなくてもすべて分かって通じる)というきごうを残します.

半島出身に対する差別が厳然に存在する状況で有力政治家である彼がフポックプングを冒して事実を告白することは難しかったはずです. しかし自分と違い根を堂堂と明らかにして来た心受官の姿に佐藤前総理は末年になってからこそ事実を打ち明けるようになったようです. 2006年 "週刊朝日"はアベがで 40余年間とどまってAbe兄弟を育て出した駆け足ウメという女性がAbe総理のお父さんShintaroがたまに家で "飛んだ朝鮮人だ"と言ったと証言した記事を報道したりしたんです. 根を韓半島に残した佐藤家門の一員であるAbe信條総理には結局朝鮮人の血が流れているわけです.


平和主義者祖父・父親代わり外祖父追従

Abe総理は 2013年アメリカのシンクタンクハドソン研究所を訪問した席で "私を右翼軍国主義者と呼びたければ呼びなさい"と言いました. このように前後総理の中で一番右翼的歩みを見せて来たAbe総理だが, 彼の祖父と父親は平和主義者たちでした. 祖父Abeの間は日本ミリタリズムに終始一貫反転と平和主義で対立した叛骨政治家として東條英機内閣の退陣を強力に主張した人物です.

Abe総理の父親AbeShintaroも反転主義者と同時に在日朝鮮人たちと親しみが厚い親韓派政治家でした. 彼を憶える人々はお父さんを非常に尊敬した彼が "岸の壻"と呼ばれることを嫌なの "私は岸の壻ではなくAbeの間の息子だ"と強調したりしたと証言します. Shintaroは保守政党である自民党議員だったが政治的均衡感覚が卓越な平和憲法擁護論者でした. 1980年選挙直前死亡した大平Masayoshi前総理は病床で最側近に "Shintaroの均衡感覚は自民党に貴重な資産だからよろしくお願いする"と言う遺言を残した位ですよ.
戦争を経験した以前世代たちと違い前後世代のAbe総理は祖父Abeの間が磨いておいた地方区を受け継いで今に至るが祖父に対して言及した事はほとんどないです. 代わりに機会が与えられる度にいつも外祖父岸に対する愛情を現わしたりしました. 幼い時代自分を優しく対してくれた岸を仰ぎながら育ったAbe総理は平和憲法など前後体制は戦争に負けたという理由だけで日本に下ろされた非常に不当な措置で認識して来ました. そしてこのような認識は岸の認識体系をそっくりなのです. Abe総理には平和主義者と同時に均衡感を取り揃えた補修主義者になることができる道も開かれていたが, 彼は外祖父に付いて右翼と同時に歴史修正主義者の道を選びました.


"東京大学行きなさい"と言う父親への反抗心と学歴コンプレックス


Abe総理の政治的背景である祖父と外祖父, 父親は皆日本最高学部である東京大学法大を卒業した秀才らです. 一方Abe総理はセイK(成蹊)大学出身で "一貫教育"という日本特有の制度を通じて小学校から大学まで通って入試経験がないです. 金さじとはしの中で金さじとはしで入試や就業ストレスなど苦労一度しないで国会議員になった彼にこれに対するコンプレックスがあることも無理ではないです.

実際にAbe総理は過去何回学歴と係わったコンプレックスを告白した事があります. 彼は 2004年読売新聞とインタビューしながら "コンプレックスない人はいないだろう. ずっとセイK学院に通って入試経験がない. 人は一度死ぬ覚悟で勉強して見ることも必要だと見る"と言いました. 自民党幹事長時代の 2003年には "祖父がすごい秀才だから負担になることがある"と言ったりしたんです. この以外にもAbe内閣が歴代内閣の中で東京大学出身閣僚が特に少ないとか, 東京大学出身が整然と並ぶ大蔵省官僚たちをAbe総理が冷遇するといううわさなどは彼のコンプレックスを思い起すエピソードで膾炙になって来ました.

Abe総理は高等学校進学後父親から "東京大学に行きなさい"と言う圧迫を受けたりしました. たまには辞書で頭をとんとん当たって小言を聞いたりしたと言います. しかし勉強に別に関心がなかったところに政治活動で家をよく留守にしたお父さんに対する反抗心まで加わって彼は入試を支払わなかったです. 彼が平和主義者と親韓派だった祖父と父親代わり外祖父に対する思想的偏向がひどい理由も祖父とは親密だった記憶がないうえ父親の東京大学進学要求に対する反抗心と学歴コンプレックスがザックヨングヘッウルスあります.


Abe, 固執不通に反対意見には無条件グィダッよ

+
政治家の中には自分の主張の強い人々が多いです. しかしAbe総理は特に押しが強くてともすると反対意見に耳を閉める性格の持ち主であることと知られています. 彼を幼い時代からブァワッドン親戚と同窓生たちは異口同声で "一度我を張れば言葉を聞かない子供" "自分の考えに話にならないのは本当に嫌やがった友達"と証言しています. Abe家門を半生取材して来たジャーナリスト掻加味ダダOkiによれば, 彼のこんな性向は改憲であるが安保法制問題に関する一もっと著しくて, 権力の階段を上がりながらもっと公告されました. 安保法制を審議した 2015年国会でAbe総理は法案にオギッザングをおく野党議員たちにやじなど不適切な言行を言うとか質問要旨にも当たらない無茶な所信を列べて周辺を荒てるようにしました. 掻加味記者は彼の著書 "Abe信條, 沈黙の仮面"を通じてAbe総理のこんな姿を詳らかに紹介した事があります.


Abe総理が "自分の一生課業"と言いながら改憲を推進して歴史修正注意を粘り強く追い求めて来たことはそれが "正しい"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 しかし彼が鉄石のように固く信じる改憲と安保に対する事故体系は "薄っぺらだ"は印象を消すことができません.

学生時代彼を教えた恩師たちと同窓たちによればAbe総理は学業にあまり関心がなかったしセミナーなど討論授業にも積極参加する方ではなかったです. ただ平凡な, 今見れば変な位に記憶に残らない金持ち坊っちゃんに過ぎなかったというのが共通された証言です. これを通じて見る時彼の政治的信念は論争や学問を通じて体得したことも, 世襲政治家であるだけに独自的に政治経歴を積みながら研いたのでもないようです. ただ外祖父岸の教えることをそのまま踏襲したことに過ぎない可能性が大きいです. これに対して菅直人前総理は "Abeは外祖父のした事はすべて正しいと学んだ. 外祖父を尊敬するのが間違ったのではないが, 政治家として特定人の韓日は全部正しいと信じることは問題"と指摘した事があります. 要するに, 政治的信念と係わる思想と買ってからは生煮えになったまま外祖父の政治的 DNAだけ要領よく真似った状態で拉致問題を踏み台として運が良く最年少総理席に上がったということです.

Abe総理は "政治は結果で責任を負う"と言う言葉を口癖のようにして来ました. そしてこの口癖は辞任記者会見で "健康問題で責任に応じた結果が出す事ができないようならば辞任するのが当たると判断した"と言う言葉で帰って来ました. 日本最長寿総理という歴史を新たに書いたが, 二回も政権をほうり出した姿で祖父と父親はもちろん外祖父も見せてくれた地位に対する責任感を彼には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ません. 祖父と父親, 外祖父の政治的名声と学歴に対して意識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Abe総理はもしかしたらこれに対するコンプレックスと幼弱な本来の姿を極右おばさん仲人というよろいで骨切って隠そうとして来たことかも知れな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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