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복원성공” 일본 도예가 사기파문
일본 교토(京都)에 사는 일본인 중견도예작가가 한국의 도공이 만든 작품을 사들여 ‘목인(木人)’이란 자신의 낙관을 새긴 뒤 세계적 명품인 한국 고려청자의 맥을 이었다고 속여 세계적인 고려 청자 전문가로 행세한 희대의 고미술 사기극이 들통나 물의를 빚고 있다.
고려전승도예연구가 다니 슌제이(谷俊成·71·사진)는 최근 한국 도예인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이 같은 사실이 탄로나자 26일 오후 4시경 경기 이천시 신둔면 이천도자기조합(이사장 이대영·李大榮)을 방문, 공식 사과했다.
다니씨는 이날 유승우(柳勝宇)이천시장과 이천지역 도예인들 앞에서 “머리가 복잡하다. 고려청자 복원 자체가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 모든 것을 사죄한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은 27일자 1면과 사회면 톱기사로 이를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최근 일본열도를 놀라게 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고고학 유물날조 사건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사기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니씨는 60년대부터 고려청자에 매료돼 도자기 무역회사인 ‘다니통상’을 차린 뒤 70년대부터 이천지역 도자기를 구입해 일본 도자기 애호가들에게 판매해 와 국내에도 알려진 인물. 90년대 들어서면서 레어메탈(Rare Metal) 기술을 응용한 고려청자의 유약이나 청자를 빚는 흙(도토·陶土) 등 고려청자를 복원할 수 있는 비법을 찾아냈다고 속여 일본 내 매스컴 등에 발표했다. 다니씨는 이후 91년에 아키다(秋田)현미술관, 93년에 파리 유네스코 본부와 동양 컬렉션으로 이름이 높은 기메박물관, 95년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 등에서 도예전을 열어 세계적인 고려청자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또 밀라노 도예전 당시 시 최고의 명예인‘안브로지노금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0년간 계속된 그의 사기극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 것은 올 4월 다니씨가 고려청자의 비법을 밝혀냈다는 기사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린 사실을 도예계 원로인 동국요(東國窯) 대표 방철주(方徹柱·78)씨 등 이천지역 도예인들과 이천시가 알게 되면서부터. 다니씨는 이 기사에서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30년 전부터 고려청자 복원에 매달려 지금까지 1200여점의 고려청자를 제작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거센 항의와 정양모(鄭良謨)전국립박물관장 등 국내 전문가들의 이의 제기에 다니씨는 결국 사기극을 인정했다.
이천도자기조합측은 “다니씨는 고려청자로 이름이 높은 해강요(海剛窯)로부터 도자기를 구입하기 어렵게 되자 해강요에서 기술을 전수받고 독립한 이기휴(李奇休·90년 작고)선생으로부터 도자기를 사들이기 시작했으나 낙관을 이때부터 찍기 시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니씨는 이선생의 제자인 박병호(朴秉浩·39)씨가 93년 ‘서광요(瑞光窯)’를 만들어 독립하자 94년경 박씨로부터 고려청자를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27일 “예전부터 알고 있던 다니씨가 자신의 낙관을 찍은 고려청자를 만들어 달라고 해 지금까지 구룡정병, 어룡향로 등 고려시대 유물을 본뜬 작품 20여점을 판매했다”며 “다니씨가 고려청자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올 5월 전해듣고 사실규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sec&sid1=104&oid=020&aid=0000036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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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青磁復元成功" 日本陶芸が詐欺波紋
日本京都(京都)に暮す日本人中堅陶芸作家が韓国の陶工が作った作品を買受けて ‘木印(木人)’と言う(のは)自分の楽観を刻んだ後世界的名品である韓国高麗青磁の脈を引き継いだと欺いて世界的な高麗青磁専門家に行世した希代の故美術詐欺劇がばれて物議をもたらしている.
高麗戦勝陶芸研究がつけるの ?J(谷俊成・71・写真)は最近韓国陶芸人たちのしつこい追跡にこのような事実がばれると 26日午後 4時頃京幾利川市新屯面利川陶磁器調合(理事長李対英・李大栄)を訪問, 公式謝った.
ダニシはこの日ユスングウ(柳勝宇)利川市場と利川地域陶芸だって前で “頭が複雑だ. 高麗青磁復元自体が間違ったことを認める. すべてのものを謝罪する”と言った. 東京新聞は 27日付け 1面と社会面トップ記事でイルルデデゾックで報道した. 日本人たちはこれを最近日本列島を驚かした フジムだとShinichi(藤村新一)の考古学遺物捏造事件に劣らない衝撃的な詐欺劇で受け入れている.
ダニシは 60年代から高麗青磁に魅かれて陶磁器貿易会社である ‘ダニトングサング’を調えた後 70年代から利川地域陶磁器を購入して日本陶磁器愛好家たちに販売して来て国内にも知られた人物. 90年代聞いてとレアメタル(Rare Metal) 技術を応用した高麗青磁の上薬や青磁をもたらす土(陶土・陶土) など高麗青磁を修復することができる秘法を捜し出したと欺いて日本内マスコミなどに発表した. ダニシは以後 91年に秋田(秋田)ヒョンミスルグァン, 93年にパリユネスコ本部と東洋コレクションで名前が高いギメバックムルグァン, 95年にはイタリアのフィレンチェとミラノなどで陶芸前を開いて世界的な高麗青磁専門家で名前をはせた. 彼はまたミラノ陶芸前当時時最高の名誉である‘アンブロジノ−グムファ’賞を受賞したりした.
10年間続いた彼の詐欺劇が明かさ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今年の 4月ダニシが高麗青磁の秘法を明かしたという記事が日本経済新聞に積まれた事実を陶芸係元老である東国です(東国窯) 代表部屋鉄柱(方徹柱・78)さんなど利川地域陶芸人たちと利川市が分かるようになってから. ダニシはこの記事で “韓国政府の要請で 30年前から高麗青磁復元にぶら下げられて今まで 1200点ぐらいの高麗青磁を製作した”と言ったことと知られた. これらの強い抗議とゾングヤングモ(鄭良謨)前国立博物官長など国内専門家たちの異意申し立てにダニシは結局詐欺劇を認めた.
イチォンドザギゾハブツックは “ダニシは高麗青磁で名前が高い解強です(海剛窯)から陶磁器を購入しにくくなると解強要で技術を伝授受けて独立したイギヒュ(李奇休・90年死亡)先生から陶磁器を仕こみ始めたが楽観をこの時から取り始めたかは確認されていない”と言った.
ダニシは李ソン生の弟子である朴病号(朴秉浩・39)さんが 93年 ‘曙光です(瑞光窯)’を作って独立すると 94年頃朴さんから高麗青磁を買受けたことで確認された.
朴さんは 27日 “かつてから分かっていたダニシが自分の楽観を取った高麗青磁を作ってくれと言って今まで九龍精兵, 魚竜香炉など高麗時代遺物を倣った作品 20点ぐらいを販売した”と “ダニシが高麗青磁を修復したと主張したという消息を今年の 5月伝えて聞いて事実糾明に同参した”と明らかにした.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sec&sid1=104&oid=020&aid=0000036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