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95년부터 50년간,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근대화를 완수하는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로 했을 때, 대만 전체의 도로망의 총연장은, 불과 164킬로였지만, 40년이 지난 1935년에 도로망은 4456킬로에 증가했다.
청이 1683년 대만을 정복한 후, 200년간 아무것도 해 오지 않았지만, 일본은 수많은 근대 건물을 지어 각종 토목공사, 철도, 사회 기반 시설의 건설, 근대적 시장 제도의 정착, 소유권 제도의 정비, 근대적 기업 제도와 상법, 거래의 안전성을 보증하는 신탁, 위생, 의료, 통신, 운수의 발달 등 터무니없는 실적을 올린다.
일본에서 대만으로 대규모 자본이 유입해, 일본인의 농장과 공장이 생기고, 대만의 GDP가 상승하고, 1 인당 GDP와 생활 물자의 소비량등도 큰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1945년 5월 31일, 미군에 의해서 타이뻬이 대공습을 받았다.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끝나, 중화 민국에 편입된다.
기존의 대만인은, 하룻밤으로 해 중국 본토로부터 건너 온 체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국은 근대 문화유산인 조선 총독부를 철거했지만, 대만은 대공습으로 반 부순 대만 총독부를 재건해, 현재도 대만 총통부로서 사용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역대의 대만 총통들은 노골적인 친일파가 대부분, 일본의 식민지 시대의 실적을 높게 평가하는 발언을 잘 한다.
2.주대만 미군 철수
1979년까지, 타이뻬이시에는 재대 미군 사령부(USTDC)가 주둔하고 있었다.
해군 중장이 지휘하는 미군 사령부를 중심으로, 극장, 식당, 대형 마트 규모의 PX를 포함해 거대한 군사기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에 미군이 전면 철퇴한 이후, 현재의 대만에서, 미군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미군이 대만으로부터 철퇴하게 된 원인은, 중국이 장거리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장거리핵미사일 보유가 기성 사실화한 1979년경에, 미국은 대만과 단교해 재대 미군을 철퇴시킨 것이어, 대만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재대만 미군을 중국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위해서 철퇴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재대 미군 철퇴까지는 대만에서 「하나의 중국」이라고 하는 말은 없었고, 오히려 중국 본토를 탈환하는 대상과만 생각했지만, 미국의 탓으로 완전하게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미국도 대만에는 F-35를 팔지 않는다.F-35를 팔지 않는 대신에, F-16 V에서도 팔았으면 좋겠다고 꿩 대신에 닭과 F-16 V를 샀던 것이다.
1.1895年から50年間、日本の植民地統治を受け、近代化を成し遂げる
日本が台湾を植民地とした時、台湾全体の道路網の総延長は、わずか164キロだったが、40年が経った1935年に道路網は4456キロに増えた。
清が1683年台湾を征服した後、200年間何もしてこなかったが、日本は数多くの近代建物を建て、各種土木工事、鉄道、社会基盤施設の建設、近代的市場制度の定着、所有権制度の整備、近代的企業制度と商法、取引の安全性を保証する信託、衛生、医療、通信、運輸の発達など途方もない業績を上げる。
日本から台湾に大規模な資本が流入し、日本人の農場と工場ができて、台湾のGDPが上昇して、1人当たりGDPと生活物資の消費量なども大幅に上昇した。
中国本土は、数十の軍閥勢力に分かれて互いに殺し合う修羅場になったが、台湾は日本の莫大な援助を受けながら、安全で豊かに暮らしていた。
そして、1945年5月31日、米軍によって台北大空襲を受けた。
その結果、日本の植民地統治が終わり、中華民国に編入される。
既存の台湾人は、一夜にして中国本土から渡ってきたチャンケの支配を受けるようになった。
韓国は近代文化遺産である朝鮮総督府を撤去したが、台湾は大空襲で半壊した台湾総督府を再建し、現在も台湾総統府として使用している。
そのためか、歴代の台湾総統たちは露骨な親日派が多く、日本の植民地時代の業績を高く評価する発言をよくする。
2.駐台湾米軍撤収
1979年まで、台北市には在台米軍司令部(USTDC)が駐留していた。
海軍中将が指揮する米軍司令部を中心に、劇場、食堂、大型マート規模のPXを含め、巨大な軍事基地を形成していた。
台北市の北にある陽明山一帯には、米軍将校と軍属が使う米軍住宅があったし、米軍を聴取対象とする米軍放送局(AFNT)もあった。これは、在韓米軍司令部が駐留する大韓民国の首都、ソウルのど真ん中にある龍山米軍基地と同じだった。1979年まで駐台米国大使館があった台北信義路には、米中央情報局(CIA)台湾支部もあった。そこからさほど遠くないところに「台北エアステーション(air station)」という名前で、米空軍通信傍受部隊と「327航空会社」が駐留した。台北郊外の新北と桃園をはじめ、台中や台南にもそれぞれ米空軍所属の戦闘機が頻繁に離着陸する米空軍基地があった。 台湾最大の港湾都市である高雄には、米第7艦隊の分隊が駐留した。台湾陸軍司令部がある龍潭基地には、駐台湾米陸軍(USAFT)も一緒に留まった。
しかし、1979年に米軍が全面撤退して以降、現在の台湾で、米軍の痕跡を見つけ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米軍が台湾から撤退するようになった原因は、中国が長距離核ミサイルを保有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と密接な関係がある。
中国が原子爆弾実験に成功したのは1964年、続いて水素爆弾開発に成功したのは1967年だ。中国が最初の大陸間弾道ミサイルである「東風-5」の最初の実験発射に成功したのは1971年で、実射距離実験に成功したのは1980年だ。1984年、北京の天安門広場で国慶節35年閲兵式を挙行した鄧小平は、これを初公開した。
中国の長距離核ミサイル保有が既成事実化した1979年頃に、米国は台湾と断交して在台米軍を撤退させたものであり、台湾の立場では米国が在台湾米軍を中国の核とミサイル脅威のために撤退させたと考えている。
在台米軍撤退までは台湾で「一つの中国」という言葉はなかったし、むしろ中国本土を奪還する対象とだけ思っていたが、米国のせいで完全に不可能になってしまった。
だから米国も台湾にはF-35を売らない。F-35を売らない代わりに、F-16Vでも売って欲しいとキジの代わりに鶏とF-16Vを買った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