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 27일의 11시 10분 , 쿠레시 히로마치문의 입에 있는 대장야야마 민유림, 문의 입용수지 부근에서 화재는 발생했다.출화 원인은, 수로의 재해 복구 공사하러 와있던 작업원에 의한 공사 현장에서의 물 끓이기에 의한 모닥불이며, 바람으로 부추겨져 가까이의 마른 풀에 불타 옮겨, 불이 확대되었다.그리고, 당일은 맑은 하늘에서 건조하고 있어, 전날부터 화재 경보가 발령되고 있어 더욱 동남동에 평균으로 5미터, 최대로 14미터의 강풍이 분다고 하는 악조건이 겹쳐, 순식간에 불은 산림을 다 가렸다.
동일 11시 18분 , 쿠레시 소방국동 소방서에 화재 발생의 연락이 들어와, 16명의 소방 단원이 달려 들어 소화 활동에 임했다.그러나, 화재의 규모는 점차 퍼져, 증원대를 파견해, 소방펌프차 109대, 더욱 쿠레시 소방국 직원 84명, 소방 단원 400명남짓을 재해 현장에 반송했다.또, 소방국은 쿠레시장 및 히로시마현 지사와 연락을 해, 자위대 출동도 요청했다.최종적으로, 화재 현장에는 쿠레시 소방국 직원외, 히로시마시 소방국 직원, 육상 자위대원, 해상 자위대원, 영림서 직원, 현지 소방 단원 등 총계 1900명남짓이 소화 활동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불의 기세는?`(안)중 쇠약해지지 않고 24시간 이상 계속 불타 다음날 28일의 11 시경, 강우의 도움도 있어서 진화되었다.그 결과, 국유림 115 헥타르, 시보유숲 85 헥타르, 민유림 140 헥타르, 340 헥타르가 소실했다.
다행히, 시가지, 민가에의 불길의 번짐은 면했지만, 상정외의 사태에 의해서소방에 해당되고 있던 소방서원 18명이 불에 말려 들어가 순직한다고 하는 대참사가 되었다(그 당시로는, 1명은 중상자였지만, 화상 때문에 5월 1일에 반송처의 병원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일본의 공무원은 성실하다
1971年4月27日の11時10分、呉市広町門の口にある大張矢山民有林、門の口用水池付近で火災は発生した。出火原因は、水路の災害復旧工事に来ていた作業員による工事現場での湯沸かしによる焚き火であり、風に煽られて近くの枯れ草に燃え移り、火が広がっていった。そして、当日は晴天で乾燥しており、前日から火災警報が発令されており、更に東南東に平均で5メートル、最大で14メートルの強風が吹くという悪条件が重なり、瞬く間に火は山林を覆い尽くした。
同日11時18分、呉市消防局東消防署に火災発生の連絡が入り、16人の消防団員が駆けつけ、消火活動に当たった。しかし、火災の規模は次第に広がり、増援隊を派遣し、消防ポンプ車109台、更に呉市消防局職員84人、消防団員400名余りを災害現場に搬送した。また、消防局は呉市長ならびに広島県知事と連絡を取り、自衛隊出動も要請した。最終的に、火災現場には呉市消防局職員のほか、広島市消防局職員、陸上自衛隊員、海上自衛隊員、営林署職員、地元消防団員など延べ1900人余りが消火活動に当たっている。
しかし、火の勢いはなかなか衰えず24時間以上燃え続け、翌日28日の11時頃、降雨の助けもあって鎮火した。その結果、国有林115ヘクタール、市有林85ヘクタール、民有林140ヘクタール、340ヘクタールが焼失した。
幸い、市街地、民家への類焼は免れたものの、想定外の事態によって消防に当たっていた消防署員18名が火に巻き込まれ、殉職するという大惨事となった(その当時では、1名は重傷者であったが、火傷のため5月1日に搬送先の病院で命を落としている)。
日本の公務員は真面目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