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으로부터 15년이 경과해 간신히 완성.대만 섬 전체에 전기가 개통되는
공사에 착수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불경기에 휩쓸려 한층 더 관동 대지진이 뒤쫓았기 때문에, 자금부족에 의해 1926년에 중지가 정해졌다.이미 3800만엔을 투자하고 있던 일본 정부와 대만 총독부는, 기회가 있으면 일월담에서의 수력 발전 사업을 재개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서 당시의 이시즈카 에이조 대만 총독은, 삼고의 예로 마츠키를 불러 29년 12월, 대만 전력 사장으로 맞이했다.다음 해 1월, 마츠키는 대만 착임 후 곧바로 준험(험준)인 현지 시찰을 실시함과 동시에 가장 권위 있다 전문가를 모아 공사 계획의 재검토를 실시했다.그 결과, 나머지의 공사에 필요한 금액은 4860만엔으로 산정되었다.이 해의 일본의 실행예산은 16억 1000만엔이며, 필요 공사비는 그 약3%에 상당하는 거대 공사 때문에, 일본내에서는 이 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어, 외국에서 빚져 모으기로 했다.
당시는, 세계 공황등의 경제정세 뿐만이 아니라, 국제 정치정세도 혼돈(혼돈)으로 하고 있었던 시대에서 만났지만, 31년 6월에 외국에 채권을 매각할 수 있어 필요한 공사비를 확보해, 10월에는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거기서, 공사를 중단해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의 근절을 위해서 주위의 산을 태워, 숙소의 주위에는 풀을 기르지 않고, 창에는 이중 망창을 해, 매점이나 오락 설비를 완비해, 일본·조선·대만 요리의 가게를 마련해 카시마 신사를 축조 해, 직영 병원을 늘리는 등, 환경 정비를 철저히 했다.그 결과,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34년 6월에 완성해, 동년 9월에 발전을 개시했다.착공으로부터 15년이 경과하고 있었다.「일월담 제일발전소」라고 명명된 발전소는 최대 출력 10만 킬로와트이며, 당시 , 동양1의 규모를 자랑했다.게다가 37년에는 「일월담 제2 발전소」를 완성시켰다.이 발전소의 완성에 의해서, 대만 섬 전체에 전기가 보내져 대만의 근대화에 박차가 걸리게 된다.그러나, 사장 마츠키는 완성으로부터 2년 후의 39년 6월 14일에 급서했다.67세에 있었다.
마츠키가 급서한 다음 해, 일월담 호반의 취수구에 마츠키의 동상이 건립되었다.대동아전쟁중의 44년에 금속류 공출령으로 철거되어 대좌에만 되어 있었지만, 2010년 3월, 대만 전력을 계승한 대만의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동상이 만들어져 남겨진 대좌상에 복원되고 있다.
着工から15年がたってようやく完成。台湾全島に電気が通る
工事に着手したものの第一次世界大戦後の不景気に見舞われ、さらに関東大震災が追い打ちをかけたため、資金不足により1926年に中止が決まった。既に3800万円を投資していた日本政府と台湾総督府は、機会があれば日月潭での水力発電事業を再開したいと考えていた。
そこで当時の石塚英蔵台湾総督は、三顧の礼で松木を呼び29年12月、台湾電力社長に迎えた。翌年1月、松木は台湾着任後すぐに峻険(しゅんけん)な現地視察を行うと共に最も権威ある専門家を集め、工事計画の見直しを行った。その結果、残りの工事に必要な金額は4860万円と算定された。この年の日本の実行予算は16億1000万円であり、必要工事費はその約3%に相当する巨大工事のため、日本国内ではこの資金を集め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が分かり、外国から借金して集めることにした。
当時は、世界恐慌などの経済情勢だけでなく、国際政治情勢も混沌(こんとん)としていた時代であったが、31年6月に外国に債券を売却することができ、必要な工事費を確保し、10月には工事に着手することができた。
工事は鹿島建設が行うことになったが困難を極めた。湿気の多い熱帯雨林の環境下で、マラリア、アメーバ赤痢、ツツガムシなどの被害が想像以上で、担架で山を下りる患者が列をなし、病院は患者で溢(あふ)れかえった。
そこで、工事を中断してマラリアを媒介する蚊の根絶のために周囲の山を燃やし、宿舎の周りには草を生やさず、窓には二重網戸をし、売店や娯楽設備を完備し、日本・朝鮮・台湾料理の店を設け、鹿島神社を造営し、直営病院を増やすなど、環境整備を徹底した。その結果、工事は順調に進み34年6月に完成し、同年9月に発電を開始した。着工から15年が経過していた。「日月潭第一發電所」と命名された発電所は最大出力10万キロワットであり、当時、東洋一の規模を誇った。さらに37年には「日月潭第二発電所」を完成させた。この発電所の完成によって、台湾全島に電気が送られ台湾の近代化に拍車がかかることになる。しかし、社長の松木は完成から2年後の39年6月14日に急逝した。67歳であった。
45年の日本の敗戦後、日月潭第一発電所は大観発電所と名前を変え、戦後の台湾の経済復興に貢献し、建設当時と変わらずに現在も運転を続けている。現在でも日月潭の水を利用した発電量は、台湾の水力発電全体の56%を占めている。
松木が急逝した翌年、日月潭湖畔の取水口に松木の銅像が建立された。大東亜戦争中の44年に金属類供出令で撤去され台座のみになっていたが、2010年3月、台湾電力を引き継いだ台湾の人たちによって、再び銅像が造られ、残された台座上に復元され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