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위안부 떠뜰기로 시끄러웠을 때
위한부 떠들기의 약효가 떨어지면, 다음에는 강제징용 광부로 떠들 것이다.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이런 패턴은 나의 기억으로는 30년 넘게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지난 광복절에도 “징용피해자 33인 유해 귀환 ” 이라고 떠들때 TV를 보다가 拍掌大笑해 버렸다. w
그렇다 반일 선동 집단들의 레퍼토리는 30여년전의 방식과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작년부터 관련된 두편의 영화도 상영되었는데...
위안부 주제의 영화 “I can speak”
강제징용 광부 주제의 영화 “군함도 ”
정작 흥행에서는 시들시들....w
작년 말 시사/경제판에 투고했던 사할린 광부에 대한 스레를 재투고합니다.
최초 투고 스레의 link
한국측: /kr/board/exc_board_9/view/id/2515266/page/10?&sfl=membername&stx=relax
일본측: /jp/board/exc_board_9/view/id/2515266/page/10?&sfl=membername&stx=relax
이하 투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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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선배님의 부친이시다. 이미 15여년전에 卒하셨다.
그 유명한 사할린 광부의 노역을 하셨던 분
광부의 일은 매우 고달프다. 강제로 시작되었는지, 본인의 의지였는지는 이야기 못들었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독립의 시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船를 타기 위해 항구에 나와 고향의 친구를 만난다.
친구의 급한 부탁으로 자신에게 배정된 船을 양보하고, 자신은 더 기다린다.
비극적인 소식. 고향친구에게 양보한 자신의 船, 그 선장의 일본해군 장교가 패전의 울분때문이었는지...
船를 자폭, 무고한 수많은 승선자들도 그의 저승길 동행이 되었다.
혼란의 상황에 船의 출항은 자꾸만 늦어지고, 수개월 후 고향에 도착한다.
고향에서는 자신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고향의 가족들은 船의 자폭 소식을 듣고, 그의 비명횡사를 확신했던 것이다.
朝鮮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살아서 제사를 받으면, 長壽한다.’
추가 수당의 돈은 못 받았지만, 기본 급료는 모두 받았다고 하신다.
’전쟁의 혼란 속에 그 돈이라도 받았으니 만족한다.’
그 분은 건강하게 오래 사셨고,
한일기본조약의 보상금 내용도 알고 계셨지만,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었고, 후손들이 굶지않고 살게 되었으니..
나의 노력이 도움이 된 것 아닐까? 라고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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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내용에서 제가 언급한 ”귀향선의 침몰 ”은 최근 한국언론에서도 쟁점화 하려고 언급된 바 있다.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의 언급없이 조용히 넘어가는 것으로 봐서 당시 소문에 따른 ”울분의 자폭”은 아니고,
러시아 군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라고 사료된다.
昨年末慰安婦トトルギでうるさかった時
ウィハンブトドルギの薬效が落ちれば, 次には強制徴用鉱夫に騷ぐでしょう. 予想した.
予想は外れなかったし, こんなパターンは私の記憶では 30年以上繰り返されているから...
去る光復節にも "徴用被害者 33人有害帰還 " と騷ぐ時 TVを見ている途中 拍掌大笑してしまった. w
そうだ反日煽動集団たちのレパートリーは 30余年前の方式と全然変わっていない.
去年から係わる二本の映画も上映されたが...
慰安婦主題の映画 "I can speak"
強制徴用鉱夫主題の映画 "軍艦も "
いざ興行ではしおしおと....w
去年末時事/経済版に投稿したサハリン鉱夫に対するスレを再投稿します.
最初投稿スレの link
韓国側: /kr/board/exc_board_9/view/id/2515266/page/10?&sfl=membername&stx=relax
日本側: /jp/board/exc_board_9/view/id/2515266/page/10?&sfl=membername&stx=relax
以下投稿内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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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かる先輩の父親だ. もう 15余年前に 卒した.
その有名なサハリン鉱夫の労役をした方
鉱夫の仕事は非常に疲れてだるい. 強制で始まったのか, 本人の意志だったかは話聞けなかった.
私の聞いた話は独立の時期
故郷に帰る 船に乗るために港に出て故郷の友達に会う.
友達の急な頼みで自分に割当された 船を譲歩して, 自分はもっと待つ.
悲劇的な消息. 故郷の友達に譲歩した自分の 船, その船長の日本海軍将校が敗戦の鬱憤のためだったのか...
船を自爆, 罪のない幾多の乗船者たちも彼のゾスングギル同行になった.
混乱の状況に 船の出港はしきりに遅くなって, 数ヶ月後故郷に到着する.
故郷では自分の葬式が開かれていた.
故郷の家族たちは 船の自爆消息を聞いて, 彼の非命横死を確信したのだ.
朝鮮にはこんな諺がある.
’暮して祭祀を受ければ, 長寿する.’
追加手当てのお金は受けなかったが, 基本給料は皆受けたとなさる.
’戦争の混乱の中にそのお金でももらったから満足する.’
その方は元気に来ると言う暮したし,
日韓基本條約の補償金内容もご存じだったが, 国家の発展のために使われたし, 子孫たちが飢えないで暮すようになったから..
私の努力が役に立ったことではないか? と むしろ誇らしいと言った.
終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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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内容で私が言及した "帰郷船の沈沒 "は最近韓国言論でも争点化しようと言及された事がある. (そんな事件があったことは事実のようだ.)
しかし, これ以上の言及なしに静かに移ることで見て当時うわさによる "鬱憤の自爆"ではなくて,
ロシア軍医攻撃による沈沒が事実で確認されたことだと所存さ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