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배봉기 할머니가 지냈던 도카시키 섬의 위안소 흔적도 담겼다. 1978년 감독이 찾은 이곳에는 위안소 옆집의 가족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43세 중년이 된 옆집 아들은 “난 그때 8, 9살 때여서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병사들이 늘 놀러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한참 지나서 그게 위안소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 누나들이 정말 안됐더라”고 말했다.
69세가 된 그의 어머니는 위안소의 한국인 위안부 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며 그들이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며 자주 울었다고 전했다. “식당 일 돕는 줄 알고 왔는데 이런 일이었다니, 정말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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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 일본인도 위안소 옆집에 살았으면 달라졌을까?
それでも良心的な日本人がいる.
映画には梨一揆お婆さんが勤めたドカシキ島の慰安所跡も盛られた. 1978年監督が捜したこちらには慰安所隣家の家族が相変らず住んでいた.
43歳中年になった隣家息子は “私はあの時 8, 9歳の時のため何の意味なのか分からなかったが兵士らが常に遊びに来て列を作って立っていた. ずいぶん経ってそれが慰安所だったということを分かったら, そのお姉さんたちが本当にならなかったよ”と言った.
69歳になった彼のお母さんは慰安所の朝鮮人慰安婦 7人の名前を一つ一つ指折って彼らが “こんなのがではなかったが”と言いながらよく泣いたと伝えた. “食堂仕事助けると思って来たがこんな事だったなんて, 本当に可哀想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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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 日本人も慰安所隣家に暮したら変わっただろう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