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의 기원에 있어 한국에서도 경기화 이전의 유술에 대해 그 기원설이 다양하다. 그러나 유술이라는 것은 일본 유도의 전신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검도나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무도의 기원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이되고, 다시 스포츠화 된 현대 무도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많다. 유도 역시 유도 이전의 유술이라는 명칭에 대해 해석하는 범위가 우리 것처럼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먼저 한국의 수박을 유술이란 용어로 개칭한 최초의 인물은 안자산(安自山)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안자산은 그의 저서 에서
유술의 시초는 고려 중기 때부터이다. 제15대 숙종왕 때부터 백희가 성풍함에 당하여 유술이 일종의 전재로 나타나 음악과 병진한 것이다. 충혜왕 때에는 점차 유도의 유행이 대흥하여 이때는 이를 수박 혹은 권법이라 하였으며 왕이 상춘정이나 마암 등지에 항상 거동하여 수박희를 전문으로 개설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유술이 자고로 권박(拳搏) 이라고도 하고 각저(角觝) 또는 상박(相撲)이라고 하여 서로 뒤섞은 명칭으로 기록하였으나, 후일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씨름과는 이허가 다르게 되니 씨름은 오직 육박으로써 각투(角鬪)에 불과한 것이요, 유술은 인체 근육의 혈맥을 박동하여 죽이기도 하고 어지럽게도 하며 또는 벙어리가 되게도 하는 3가지 방법이 있었다.
유도의 기원에 있어 한국에서도 경기화 이전의 유술에 대해 그 기원설이 다양하다. 그러나 유술이라는 것은 일본 유도의 전신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검도나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무도의 기원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이되고, 다시 스포츠화 된 현대 무도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많다. 유도 역시 유도 이전의 유술이라는 명칭에 대해 해석하는 범위가 우리 것처럼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먼저 한국의 수박을 유술이란 용어로 개칭한 최초의 인물은 안자산(安自山)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안자산은 그의 저서 에서
유술의 시초는 고려 중기 때부터이다. 제15대 숙종왕 때부터 백희가 성풍함에 당하여 유술이 일종의 전재로 나타나 음악과 병진한 것이다. 충혜왕 때에는 점차 유도의 유행이 대흥하여 이때는 이를 수박 혹은 권법이라 하였으며 왕이 상춘정이나 마암 등지에 항상 거동하여 수박희를 전문으로 개설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유술이 자고로 권박(拳搏) 이라고도 하고 각저(角觝) 또는 상박(相撲)이라고 하여 서로 뒤섞은 명칭으로 기록하였으나, 후일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씨름과는 이허가 다르게 되니 씨름은 오직 육박으로써 각투(角鬪)에 불과한 것이요, 유술은 인체 근육의 혈맥을 박동하여 죽이기도 하고 어지럽게도 하며 또는 벙어리가 되게도 하는 3가지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