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1920년과 1926년 두 차례에 걸쳐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합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1918년 일본에서 시베리아 출병을 틈타 매점매석 등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쌀 폭동이 일어나 안정적인 쌀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값이 싼 동남아산도 있었지만, 일본인들 입맛에 맞지 않았고 일본의 국제수지 악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조선에서 증산정책을 급히 서두른 것이었지요. 음식문화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잖아요.

조선총독부의 ‘조선산미증식계획요강’(1926.)을 보면 일본의 연간 쌀 소비량 6,500만 석 가운데 일본 내 생산이 5,800만 석에 불과한 데다, 일본 인구가 매년 70만 명씩 늘어날 것이므로, 일본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조선의 미곡증산이 “국책상 급무”라고 다급한 상황판단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910년대에도 미작개량정책이 실시되었는데,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쌀을 생산하기 위해 일본 품종을 보급하고 수리 · 시비 · 농기구를 개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농민의 경영비 부담 증가와 노동지출 강화로 토지생산성은 증대되었지만, 결실은 지주층이 독점했습니다.

산미증식계획은 토지개량사업과 농사개량사업으로 구분됩니다. 토지개량사업은 관개개선, 밭을 논으로 바꾸는 지목(地目) 전환, 개간이나 간척을 통한 경작지 확장 등을 말합니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주력한 관개개선 수리조합사업은 식민지 금융기구와 (일본인) 대지주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중소지주층에게는 수리조합비 부담이 벅찼거든요.

수리조합 공사비의 90%가 차입금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정부보조가 70~80%나 되었지만 조선에서는 20~30%에 불과해 이자부담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50정보 이상 대지주의 소유지 중 일본인 소유지의 비중은 조선 전체에서 48%였지만, 수리조합 구역에서는 무려 85%에 달했습니다. 특히 일본인이 주도한 수리조합 구역에서 한국인 중소지주의 몰락이 심했습니다.

농사개량사업의 핵심은 일본식 개량농법 보급이었습니다. 품종개량과 비료증가를 통해 수확량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는데, 사실 생산력 향상이라기보다 밭농사를 희생시켜 논농사에 노동과 비용투하를 집중하는 거였지요. 지주층은 총독부가 알선하는 저리자금을 통해 화학비료와 수리사업비를 조달했지만, 중소농과 소작농은 외상구입 때문에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여기에다 지주들은 조합비 부담을 소작농에게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쌀은 증산되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쌀이 일본으로 나갔습니다. 특히 2기 계획 기간에 생산량은 1.4배 증가한 반면, 반출량은 5배나 늘어났습니다. 세계대공황¹⁾을 전후한 무렵 조선 쌀의 일본 반출량은 500~900만 석에 이르러 일본 수입쌀의 60~70%, 일본 내 소비량의 10%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일본에서 쌀 과잉생산으로 농촌위기가 발생할 정도가 되자 1934년에 조선 쌀의 수출을 일시 중지할 정도로 조선 쌀이 대거 일본으로 반출된 겁니다. 일본인 지주는 물론 한국인 지주도 산미증식계획에 편승해서 총독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미곡 상품화에 적극 나섰습니다. 그 결과 쌀 단작형 식민지 지주제가 확대되었고, 지주와 총독부의 유착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