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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승려독립운동가이다.

 

1)가짜 권총 

3.1운동 준비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만해는 당시 부자로 소문났던 민영휘를 찾아갔다.

그에게 독립운동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권총을 꺼내 위협했다. 

민영휘는 겁에 질려 협조하겠다고 만해에게 다짐했다. 

다짐을 받은 만해는 권총을 민영휘 앞으로 던졌는데, 진 짜 권총이 아니라 장난감 권총이었다. 

 

 

 

2)1931년 겨율의 만해의 삶 - 저울추 

만해는 언제나 냉방에서 지냈다.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런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힌 산단 말인가.”라는 생각에서였다. 

만해가 생각에 잠길 때면 차디찬 냉방인데도 불구하고 꼼짝 않고 앉아서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움직임이 없다 하여 어느새 그에게는 “저울추”라는 별명이 생겼다. 

 

 

 

3)부러진 펜촉 

1927년 이상재 선생의 장례를 치를 때 일이다.

만해는 자신의 이름이 장례 준비 장의 위원 명부에 올라가 있자 찾아가 자기 이름을 펜으로 박박 그어 지워버렸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펜촉이 부러지고 종이가 찢어졌다. 

3.1운동 당시 이상재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길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장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턱없이 관대해지고 마는데, 한용운은 그런 감상에 젖지 않고 단호했던 것이다. 

그것이 만해였다. 

 

 

 

4)소화를 소화 

1927년 2월 한용운은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민족운동가들이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갈라지지 말고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이룰 때까지는 대동단결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신간회의 일을 바쁘게 하던 중이었다. 

전국에 공문을 보내려고 인쇄해온 봉투 뒷면에 일본 연호인 “소화”(昭和) 몇년 몇월 며칠이라 찍힌 것을 본 

그는 아무 말 없이 1천여 장이 되는 봉투를 모두 아궁이에 넣고 불태워버렸다. 

그것을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한용운은 태연하게 말했다.   

 

”어험, 소화(昭和)를 소화(燒火)해버리니 속이 시원하군.” 

 

일본을 불에 태워버린 것 같은 기분이라는 뜻이었다. 

 

 

 

 

5)성북동 임야 20만평 

1931년 6월 월간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불교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동시 추진할 발판을 마련하려 하였으나

늘 자금이 부족해 쩔쩔매는 형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잡지사로 식산은행 직원이 찾아와 서류를 내놓으며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도장이라니? 무슨 일이오?” 
한용운은 불길한 예감으로 눈을 치떴다. 
”아니, 아직 모르시고 계십니까? 성북동에 있는 임야 20만평을 선생님께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다 도장만 찍으십시오.”
”뭐라고? 왜 나한테 그 많은 땅을 줘? 당장 나가!” 
 

불길한 예감의 적중에 한용운은 천둥치듯 호통을 쳤다. 그건 총독부가 판 큰 함정이었다. 

민족지도자들을 그런 식으로 줄기차게 회유해왔던 것이다. 

그 미끼에 걸려든 대표적인 사람이 소설가 춘원 이광수였고, 시인이며 사학자인 육당 최남선이었다. 

이광수는 지난날 도쿄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이었고, 최남선은 기미독립선언문을 쓴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미독립선언에 나섰던 민족대표들도 한 사람, 한 사람 회유당해 이제 남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만해 한용운이었다.   

 

 

6)최남선 
최남선이 변절해 중추원 참의라는 높은 벼슬을 얻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몇 사람과 밥상을 받은 한용운이 밥그릇 가운데 숟가락을 푹 꽂으며 엄숙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 자리는 최남선의 장례식이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최남선과 마주치게 되자 한용운이 못 본 체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최남선이 굳이 알은 체를 했다.   
”만해 선생,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누구시지요?” 
한용운이 눈을 껌벅이며 최남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육당입니다. 아, 최남선을 몰라보시겠어요?” 
”내가 아는 최남선은 벌써 죽었소.” 
이렇게 내쏘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7)최린 
3.1운동 민족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최린은 변절하여 중추원 참의에 총독부 신문인 [매일신보] 사장노릇을 하고 있었다. 최린의 변절소식에 한용운은 어느 날 새벽 최린의 대문 앞에 엎드려 곡을 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쇳소리 울리는 한용운의 곡성은 컸고, 그 난데없는 소리에 놀라 집안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아니, 만해가 아니시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최린이 당황스럽게 물었다. 
”내 친구 최린이 죽었다고 해서 조문을 하는 거요, 아이고오, 아이고오...” 
그리고 한용운 최린이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 다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韓竜雲

韓竜雲(韓竜雲, 1879年 8月 29日1944年 6月 29日)は 日帝強制占領期間詩人, 僧侶, 独立運動家だ.

1)にせ物ピストル

3.1運動準備のために資金が必要だった満海は当時金持ちにうわさが立ったミンヤングフィを尋ねた.

彼に独立運動に協調してくれと要請したが断られると, ピストルを取り出して脅威した.

ミンヤングフィは怖気ついて協調すると満海に念をおした.

駄目押しを受けた満海はピストルをミンヤングフィこれから投げたが, チン組んでピストルではなくおもちゃピストルだった.

2)1931年ギョユルの満海の生 - 分銅

満海はいつも冷房で過ごした. "朝鮮タングドングオリが一つの監獄だ.

ところでどうして火をくべた部屋でピョンアンヒン生きた話か."という考えであった.

満海が考え込む時なら極めて冷たい冷房なのにかかわらず身動きなくて座って一寸ほつれない姿勢を維持した.

動きがないと言っていつのまにか彼には "分銅"というニックネームが生じた.

3)折れたペン先

1927年李商在先生の葬式を済ます時仕事だ.

満海は自分の名前が葬礼準備葬儀委員名簿に上がっていると尋ねて自分の名前をペンでばりばりと引いて消してしまった. どんなに力を込めたのかペン先が折れて紙が破れた.

3.1運動当時李商在が "独立宣言書"に署名するのを拒否したから彼の葬礼に参加しないのだ.

我が国の人々は死の前で法外に寛大になってしまうのに, 韓竜雲はそんな感傷に濡れないで断固としていたのだ.

それが満海だった.

4)消化を消化

1927年 2月韓竜雲は新幹会の中央執行委員になった.

民族活動家たちがお互いに違う立場違いで割れずに完全な解放と独立を成すまでは大同団結しようという

意味で作られた新幹会の仕事を忙しくした中だった.

全国に公文書を送ろうと印刷して来た封筒裏に日本年号である "消化"(昭和) 何年ミョッワル何日だから撮れたことを本

彼はどんな何も言わなく 1千余場になる封筒を皆炊き口に入れて燃やしてしまった.

それを見て驚いた人々に韓竜雲は平気に言った.

"オホム, 消化(昭和)を消化(焼火)してしまったら胸がすっきりするね."

日本を火に乗せてしまったような気持ちという意味だった.

5)城北洞であることなの 20万坪

1931年 6月月刊雑誌 [仏教]を引き受けて仏教改革運動と独立運動を同時推進する足場を用意しようと思ったが

常に資金が不足で途方に暮れる都合だった.

そんなある日雑誌社で殖産銀行職員が尋ねて来て書類を出してはんこを押してくれと言ってした.

"道場だって? 何の事だ?"
韓竜雲は不吉な予感で目を上目使いをした.
"いや, まだ分からなく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城北洞にある林野 20万坪を先生に差し上げ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

ここにはんこだけ押してください."
"何と? どうして私にその多い地をくれ? 今すぐ出て行け!"

不吉な予感の的中に韓竜雲は雷が鳴るように大どなりを打った. それは総督府が版大きい落とし穴だった.

民族リーダーたちをそんな式で粘り強く懐柔して来たのだ.

その餌に引っかかった代表的な人が小説家春園李光洙だったし, 詩人で史学者である六堂崔南善だった.

李光洙は先日東京 2.8 独立宣言書を作成した人だったし, 崔南善は気味独立宣言文を書いた人だった.

そして気味独立宣言に出た民族代表たちも一人, 一人懐柔されてもう残ったユイルハン人がところで

満海韓竜雲だった.

6)崔南善
崔南善が主張を変えて中枢院参議という高い官職を得たという消息が広がった.

何人と食膳を受けた韓竜雲が食器の中さじをがっくりさして厳肅で冷情に言った.
"が席は崔南善の葬式です."

ある日道に行っている途中偶然に崔南善とでくわすようになると韓竜雲が見ない振りをしながら頭を巡らしたが崔南善が敢えて分かった振りをした.
"満海先生, 久しぶりにお目にかかります."
"誰の時です?"
韓竜雲が目をコムボックで崔南善をじっと眺めた.
"六堂です. あ, 崔南善を身違えますか?"
"私の分かる崔南善はもう死んだんです."
こんなにネソゴはフィゾックフィゾック足を運んでおき始めた.

7)ツェリン
3.1運動民族リーダー中一人だったツェリンは主張を変えて中枢院参議に総督府新聞人 [毎日新報] 社長役をしていた. ツェリンの変節消息に韓竜雲はある日夜明けツェリンの大門の前に伏せて曲をした.

"アイゴオ, アイゴオ.."
鉄の音鳴らす韓竜雲の哭声は大きかったし, そのだしぬけな音に驚いて家人々が飛び出した.
"いや, 満海ではないです? これが一体何の事だ?"

ツェリンが狼狽するように問った.
"私の友達ツェリンが死んだと言って弔文をするのです, アイゴオ, アイゴオ..."
そして韓竜雲ツェリンが歌う音を後にして寒風を起こしながら後ろ向きになって二度と頭を巡らさなかった.

それが二人の終わり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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