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학살하라! | |
일본정부는‘남자는 무장하고 여자는 피하라. 한국인을 보면 타격해도 무방하며 살해해도 관계없다”며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할 것을 촉구했다. 이리하여 순식간에 전직 군인과 젊은이들로 구성된 자경단(自警團)이 도쿄 1,593개, 가나가와현 603, 사이타마현 300, 치바현 366, 이바라키현 336, 군마현 469, 기타 16개, 합계 3,689개의 자경단이 조직됐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군대·경찰·자경단에 의한 인간사냥, 한국인 대학살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총.칼.톱. 곤봉. 몽둥이. 죽창으로 무장한 이들의 외침은 ”조선 놈이면 다 죽여버려라”는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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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 내 자식과 아내를 죽인 것은 다 조선 놈들이다. 내 집을 부수고 우리를 기아의 지경에 몰아넣은 것도 그놈들 때문이다’. ‘죽여라 쳐버려라’ 외치며 자행된 학살은 박살, 사살, 교살 등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한국인 살해가 저질러졌다. 일본 내무성에서 지방에 내려 보낸 ‘불령한국인(不逞朝鮮人) 단속’ 공문이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돼 학살에 기름을 붓은 격이 되었다. | |
쯔보이 시게하루라는 한 일본인 여류작가는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에 대한 색출과 학살 현장의 살벌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경찰.군인.자경단 등은 버스.열차 안 혹은 길거리에서 승객들에게 “15엔(円) 15전(錢)”, “ぱぴぷぺぽ (빠삐뿌뻬뽀)”등과 같은 어려운 일본말을 발음하게 하거나 ‘교육칙어’를 암송하도록 해 발음이 이상하면 한국인으로 단정하고 칼과 몽둥이,죽창으로 마구 찔러 처참하게 살해하여 강물에 던지거나 불에 태웠다고 한다. 일본 관헌들은 일인들에게 머리에 흰띠를 두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 방법만으로 구분이 어려워지자 ‘아이우에오’로 시작되는 일본 “가나”를 전부 외워보라든가, “링고(사과)”를 발음해 보라, 심지어는 역대 일본 일왕의 이름을 대라 하여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인으로 단정했다고 한다. 한인을 골라내기 위한 수단은 천인 천 가지였다. 다분히 주관적이며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군중 심리에 좌우되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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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국인이다’라는 한 마디만 하면 와! 하면서 개떼처럼 달라 들어 처참하게 죽였다. 이들은 이성을 가진 집단.국가가 아니라 저능한 동물집단이나 할 짓을 저질렀다. 붙잡힌 사람은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고 몰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와 함께 중국인 폭동설도 유포되면서 중국인도 수백 명 학살됐다고 한다. 피의 악마에 물든 일본인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총칼 등으로 닥치는 대로 한국사람을 죽여 강물에 던지거나 불에 태웠다고 한다. 학살 방법은 잔인함의 극치였다. 피에 굶 줄인 악령들의 축제를 일본국가가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 군마현(群馬縣) 경찰서 토건업체인 까시마구미(鹿島祖)가 고용하고 있던 한국인 14명을 회사측 요청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문을 들은 자경단대표가 경찰서로 달려와 한인들을 넘겨달라고 아우성이었다. 4,5명의 경찰관들은 서장이 오면 결정하자고 했지만 군중들은 당장 넘기라고 우겼다. 결국 자경단원과 2백여 군중이 몰려와 소동을 벌이다가 14명의 한국인을 전부 살해했다. ◈ 기거정(奇居町) 경찰서 유치장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10여 명이 살해되었다. 9월 4일 요코하마 네기쪼(根岸町)에서 자경단에 붙잡힌 한 한국인은 몸에 지니고 있던 감기약을 독약으로 오인 받아 파출소 옆에 동여 매인 채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 가메이도(龜戶)경찰서에서 벌어진 사건은 학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인학살은 자경단이나 경찰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었다. 계엄령 미명 아래 동경시내에 진주해 들어온 군대도 가세했음이 여러 증언자들이 밝히고 있다. 도쿄지역에 치안유지를 위하여 배치된 군인들은 가메이도경찰서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총칼로 한인들을 밤 세워 죽이기 시작했다. 피에 굶 줄인 군인들은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 비명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고, 일대의 강아지들은 참혹함의 극치에 미동조차 하지 못하였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가메이도 경찰서에서만 하룻밤 사이에 320여 명에 이르는 한인이 학살됐다. 경찰서 구내에서 벌어진 이러한 학살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경찰이 강력히 이를 제지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 방조하는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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