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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인 왜인을 사람으로 만들어준 한국의 조상들은 정말로

 

번거로웠지만 토인인 왜인들을 가르친것 같다..

 

1500년 가까이 세월리 흘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백제인들의 성^^

 

* 구    분 : 사적 제355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산85외
* 성둘레 : 1,037m
* 형    태 : 테뫼식 석축산성
* 연    대 : 백제시대
* 개    요 : 계족산성은 계족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발달된 능선을 따라 약 1.3㎞ 지점에 있는 봉우리(해발431m)위에 축조되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037m로 대전지역에 소재 한 30여 개소의 산성 중에 가장 규모가 큰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성내의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성의 축조 방식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 매 우 견고하게 축조되었다. 그중 하나는 자연석을 이용한 내탁기법(內托技法)에 의한 방식으로, 서벽, 동벽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축조 방식은 협축기법(夾築技法)인데 동벽 및 북벽, 서벽과 남벽 일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내에는 6개의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북벽을 제외한 남, 서, 동벽에 문지(門址)가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성내에는 2개소의 우물지가 발견되었고, 남문지에서 약 7m 가량 북쪽에 있는 봉우리에 봉수대(烽燧臺) 그리고 저수지가 있었다. 성내의 건물지, 봉수대, 저수지 등을 발굴 조사한 결과 기와편, 토기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외에도 청자, 분청사기, 백자편 등이 출토되어 이 유적이 오랜 기간 동안 산성으로써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계족산성은 회덕이 우술군에 소속된 이래로 백제의 중요한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성은 백제가 망한 직후에도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다.《삼국사기》신라본기에 의하면 당시 백제부흥군의 요충지인 옹산성과 우술성을 함락시키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사에 의하면 옹산성과 우술성은 같은 시기에 함락되고 있으며 수천명이 희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옹산성 전투에 참여한 품일(品一)장군은 우술성 공격 시에도 지휘를 맡아 백제군 1천명을 사살하고 달솔(達率), 조복(助服) 등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있다. 이 기록에 나타나는 옹산성은 계족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시 전투상황이 삼국사기에 나오는데 옹산성을 포위한 김유신 장군은 성을 함락하기 전에 사람을 보내어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부귀를 기약하라”고 전하였지만 백제 부흥군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신라군에게는 항복하지 않겠다”고 하여 임전의지를 다졌지만 수천 명이 사살 당하는 백제 민초들의 넋이 깃든 중요한 유적이다.

계족산에 오르니, 저 멀리 능선끝에 계족산성이 보인다.

오솔길능선을 30분 따라가니, 이국적 느낌의 계족산성이다.

삼국시대 산성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저처럼 우직하고 장대하다.

 계족산성가는길은 임도를 따라 30분정도 오르면 등산로가 나오는데, 높낮이는 거의 없이 산책하기 좋은길로 이어진다.

 

드디어 계족산성 입구다.

입이 벌어질정도로 정교하다. 물론 보수를 했지만, 이시대의 성곽은 지금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남문터로 입구를 보니 사다리를 이용하는 현문식 문이라는것을 알수가 있다.

출입시 필요할때만 사다리를 이용하는것이다.

 

육중한 성곽이다.

마야문명속에 온것같은 느낌이다.

 

 

 

 

안에서 본, 남문 입구모습이다. 

 

 

 

서쪽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본다. 

이곳은 높이가 상당히 높았다.

 

배수로 모습이다.

 

옛 그대로된곳이다.

 

오던길을 뒤돌아 보았다.

성곽 실루엣이 멋지다.

 

북쪽으로 육중한 성곽이 이어진다.

 

 

중간에 끊어진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는 보수하지 말고 나뒀으면 좋겠다.

 

지나온 성곽길이다.

 

여기까지 복구되었다.

성곽단면을 잘 볼수있다.

 

 

밖으로 나가보았다.

높이가 무척높았다. 

 

 

북쪽에서 동쪽으로는 아직 복구가 안된곳이다.

 

성곽흔적이,동쪽으로이어지며 연못으로 나온다.

 

계족산성 연못.

길이 34.8m. 너비 5.2m. 깊이 2.7m 로 복원작업도중 발견한 연못이다.

 

 

동쪽성곽은 정비되지않아,오던길로 다시 입구까지 간다.

사람에 비교하니 성곽의 규모를 알수가 있다.

 

다시 입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구 옆, 동쪽성곽은 아직 복구되지않았다.

 

그래도 1,500여년의 세월속에 그 위용을 잃지 않는다.

 

 

 

남문과 서쪽성곽이 복원되었으며, 북에서 동쪽벽은 복원중이다. 

너무 깔끔하게 복원되어 놀이동산 느낌이 나지않기를 바라며, 계족산성 답사를 마친다.

남문으로 나갔다.

   메모


倭人を教えるのは煩わしいイルイオッウルゴッみたいだ^^

土人である倭人を人で作ってくれた韓国のご先祖は本当に

 

煩わしかったが土人である倭人たちを教えたようだ..

 

1500年近く歳月里流れても相変らずその席に立っている

 

百済人たちの性^^

 

* 区    分 : 史跡第355号
* 所在地 : 大田広域市大徳区章動山85外
* ソングドルレ : 1,037m
* 兄さん(型)    泰 : 山頂式石垣酸性
* 年間    台 : 百済時代
* 犬    敷布団 : 鶏足山城は鶏足山頂上部で北東方へ長く発達された尾根に沿って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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