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다른 논쟁들 중에는 “운명”에 관한 논쟁이 섞여 든다. 장차 올 사물들과 우리의 의지를 확실하고 불가피한 필연성에 결부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아직도 “하느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하느님은 모든 일들이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을 예견하는 이상, 일들은 이렇게 일어나야만 한다”고 하는 지난날의 논법을 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 신학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는 일은, 우리가 그렇게 하며 하느님도 같이 하는 식으로(모든 일이 하느님에게 현존하는 만큼, 그는 앞일을 예견하기보다도 차라리 현재로 보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게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물들이 일어나는 까닭에 보는 것이지, 우리가 보는 까닭에 사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되어지는 일이 지식을 만드는 것이지, 지식이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이 되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되어 온다. 그러나 일은 달리 되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예지하시는 것 속에 간직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을 기록해 둔 장부 속에, 우리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의 원인도 기록해 두었고, 우리의 판정에 맡겨 둔, 우리의 자유의사에 달려 있는 임의적 행동에 의한 사건들의 원인도 기록해 두었으며, 우리가 실수하려고 원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실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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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민자를 받아들일때 맹세해야 하는 원리는 이것에 반대하는 모든 원리,
예를 들어서 한국인의 이기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私たちの他の論争たちの中には ¥"運命¥"に関する論争がまじて入る. 将来今年事物たちと私たちの意志を確かで不可避な必然性に結付させるため, 人々はまだ ¥"神様がそんなになさるように, 神様はすべてのことがこのよう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見越す以上, ことはこんなに起こ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先日の論法を使う. ここに対して私たち神学者たちはどんなことが起こることを見るという仕事は, 私たちがそうして神様も一緒にする式で(すべての事が神様に現存する位, 彼は今後の事を予見夏期よりもかえって現在に見ることだ), その事が起こるように強制するのではない.
私たちは事物たちが起きるわけに見ることであって, 私たちが見るわけに事物たちが起きることではない. なられる事が知識を作ることであって, 知識が仕事を起こるようにするのではない. 私たちが仕事になられることを見ることはなって来る. しかし仕事は他になられることもできたのだ. そして神様は予知なさることの中におさめたことが起きる原因を記録しておいた帳簿中に, 私たちが偶発的に起こる事だと呼ぶ事件の原因も記録しておいたし, 私たちの判定に任せておいた, 私たちの自由意思によっている任意的行動による事件の原因も記録しておいたし, 私たちがあやまちをしようと願うはずだのため私たちがあやまちをするだろうと言うことが分か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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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メリカが移民者を受け入れる時誓わなければならない原理はこれに反対するすべての原理,
例えばで韓国人の利己心に対する盲目的な信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