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따라잡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과 2국가 해법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이스라엘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중동 평화의 유일한 방안은 “2국가 해법”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과 “2국가 해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왜 중동의 화약고가 됐나?”
이스라엘은 2015년 기준, 인구 약 860만 명에 국토 면적이 2만km² 조금 넘는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한반도 면적이 약 22만km²니까 이스라엘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2015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3천 달러가 넘는 경제 강국이고요. 중동에서는 유일하게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군사 강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지도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나라였습니다. 오랜 세월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같은 끔찍한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인들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 건설을 추진했고요. 이런 움직임은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아랍인들의 반발을 당연히 불러와 끊임없는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유엔으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1947년 유엔 총회는 이 지역을 분할해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세우는 방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유엔의 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갈등의 핵심: 6일 전쟁”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핵심은 바로 1967년에 있었던 6일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은 6일 만에 끝난 이 3차 전쟁에서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 시리아 골란 고원,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획득했는데요. 이때 획득한 영토가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이 되는 이른바 “점령지”로 불리는 땅입니다. 이 지역에서 양측의 무력 충돌과 갈등이 지속되자, 국제사회는 1974년 유엔 결의안을 통해 양측이 서로를 인정하고 나란히 국제사회에서 개별 국가로 공존하는 이른바 “2국가 해법”의 기본틀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의 점령지 주둔이 장기화되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탄압이 가혹해지면서, 1987년 인티파다라고 하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항쟁은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탄압 정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고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주장하며 그간 납치와 살인, 테러로 악명 높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이스라엘의 완전 제거라는 원래의 노선을 포기하고 이른바 2국가 해법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중동 평화 노력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2국가 해법의 상징, 오슬로 협정”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체결된 오슬로 협정의 골자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등 일부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돕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오슬로 협정은 예루살렘 문제부터 국경 확정 문제까지 총5개의 사항으로 이뤄져 있었는데요. 모두 민감한 사항이었지만 양측은 합의할 수 있는 분야부터 우선 합의해 나간다는 이른바 단계별 접근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녹취: 오슬로 협정 서명식]
같은 해 9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싱턴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양측은 중동 평화 안정을 향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이 공로로 아라파트 의장과 라빈 총리, 그리고 협상의 산파였던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평화와 공존의 길”
오슬로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의 서명자였던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극우파에 암살되는가 하면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들의 테러가 잇따르면서 불안한 공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팔레스타인 임시행정당국(PA)으로 이름을 바꿔 제한적인 자치를 하고 있긴 한데요. 하지만 오슬로 협정의 구체적인 이행 조치들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아무런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고요. 이런 답보 상태가 계속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 폭탄 테러와 로켓 공격, 이스라엘 군의 무력 제재 등 양측의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가 들어서면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더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극으로 치달았고요. 국제사회의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강경 네탸나후 총리, 오바마 행정부와 내내 마찰”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낸 데 이어 2009년 다시 총리로 선출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강경 우파 정치인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는 초강경 자세를 유지해, 일관되게 중동 2국가 해법을 강조해온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내내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참고로 이전 정권인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2국가 해법”을 지지해왔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유엔 안보리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거부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기권함으로써 사실상 결의안 통과를 도왔다며 맹렬히 비난했는데요.
[녹취: 케리 미 국무장관 ]
네, 케리 국무장관의 목소리 잠시 들으셨는데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수장인 케리 장관은 중동평화를 위해서는 2국가 해법만이 유일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제 오는 20일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생각은 전혀 다른데요.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면 이스라엘의 편에 설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은 몇 년 전부터 팔레스타인이 유엔으로부터 독립국가 승인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2국가 해법의 상징 같은 오슬로 협정 자체를 폐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고요. 팔레스타인 역시 오슬로 협정 폐기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동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과 2국가 해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ニュース追跡] イスラエルパレスチナ葛藤と 2国家解法
ニュースの背景と関連用語を説明して上げるニュース追跡時間です. 最近UN安全保障理事会がイスラエルのユダヤ人定着村建設中断を促す決議案を通過させるとイスラエルが強力に反撥しています. しかしアメリカと国際社会は中東平和の唯一の方案は ¥"2国家解法¥"だけだと言っていますよ. ニュース追跡今日はイスラエルとパレスチナの間葛藤と ¥"2国家解法¥"に対してよく見ます. 朴令書記者です.
“イスラエルとパレスチナ, どうして中東の火薬庫になったか?”
イスラエルは 2015年基準, 人口約 860万人に国土面積が 2万km〓 少し過ぎるとても小さな国です. 韓半島面積が約 22万km〓だからイスラエルがどれだけ小さな国なのか見当をつけ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に. しかしイスラエルは 2015年基準, 1人当り国民所得が 3万3千ドルが超える経済強国で. 中東では唯一に核を保有している軍事強国でもあります.
しかし 20世紀前半期までにしてもイスラエルは地図の上に存在しなかった国でした. 長年の歳月国ない民族として, ナチドイツのユダヤ人大虐殺みたいな無惨な迫害を受けたイスラエル人たちは今のパレスチナ地域に国家建設を推進したんです. こんな動きはその地にもう住んでいたアラブ人たちの反発を当然呼んで来て絶え間ない無力衝突につながりました.
結局この問題はUNで移るようになりますよ. 1947年UN総会はこの地域を分割してユダヤ人国家とアラブ人国家を立てる方案を通過させたし, 翌年イスラエルは建国を宣布します. しかしアラブ人たちはUNのこの仲裁案を受け入れなかったです.
“葛藤の核心: 6日戦争”
今日イスラエルとパレスチナ葛藤の核心はすぐ 1967年にあった 6日戦争です. イスラエルは 6日ぶりに終わったこの 3次戦争でヨルダン川書案と行くと地球, シリアかくという高原, エジプト時年半島を獲得したんです. この時獲得した領土が今日パレスチナ紛争の核心になるいわゆる ¥"占領地¥"と呼ばれる地です. この地域で両側の無力衝突と葛藤が持続すると, 国際社会は 1974年UN決議案を通じて両側がお互いを認めて並んで国際社会から個別国家で共存するいわゆる ¥"2国家解法¥"の基本フレームを提示します.
しかしイスラエル軍医占領地駐屯が長期化されて, パレスチナ住民に対する弾圧が苛酷になりながら, 1987年インティパダと言うパレスチナ人の大規模民衆一揆が起きました. これらの抗争は全世界言論の耳目を集中させながらイスラエルの無慈悲な弾圧政治に対する国際社会の批判を導き出すから至ったんです. パレスチナの独立を主張してその間拉致と殺人, テロで悪名高かったパレスチナ解放機構(PLO)も, イスラエルの完全除去という元々の路線をあきらめていわゆる 2国家解法で方向を旋回しながら中東平和努力は級水勢に乗るようになります.
“2国家解法の象徴, オスロ協定”
1993年ノルウェーオスロで締結されたオスロ協定のかこうという一言でイスラエルはガザ地区とヨルダン川書案など一部占領地を返還してパレスチナの国家設立を助けて, パレスチナはイスラエルに対する武装闘争をあきらめるというのです.
オスロ協定はエルサレム問題から国境確定問題まで総5個の事項で成り立っていたんです. 皆敏感な事項だったが両側は合議することができる分野からまず合議して行くといういわゆる段階別処理方式を採択しました.
[録音: オスロ協定書名式]
同年 9月, ビルクリントンアメリカ大統領が見守る中にワシントンでイツハクラビンイスラエル総理, ヤセルアラファト PLO 議長は協定に署名することで両側は中東平和安定を向けた歴史的な初歩を踏み出すようになります. この功労でアラファト議長とラビン総理, そして交渉の産婆だったシモンペレスイスラエル外相は翌年ノベル平和賞を受けます.
“順調ではない平和と共存の道”
オスロ協定によってイスラエルはガザ地区とヨルダン川書案地球で撤収して, パレスチナ自治政府が樹立されました. しかしオスロ協定の署名者だったラビン総理がイスラエル極右派に暗殺されるかと言えばパレスチナ内でもイスラエルとの妥協を拒否する鷹派たちのテロが続きながら心細い共存を続いて来ています.
現在パレスチナ解放機構(PLO)はパレスチナ臨時行政政府(PA)で名前を変えて制限的な自治をしてはいるが. しかしオスロ協定の具体的な移行措置たちは両側の利害関係がかみ合いながら何らの進展をおさめることができなくて. こんな足踏み状態が続きながらパレスチナ人たちの自殺爆弾テロとロケット攻撃, イスラエル軍医無力制裁など両側の無力衝突がまた激化されています.
こんな中ベニャミンネタニアフイスラエル総理政府が聞いてとヨルダン川書案地球とガザ地区にユダヤ人定着村をもっと建設しようとする動きを見せるとパレスチナ人たちの怒りは劇で走り上げたんです. 国際社会の抜いてももっと大きくなっています.
強硬ネティヤナフ総理, オバマ行政府と始終摩擦
1996年から 1999年まで総理を勤めたのに相次ぎ 2009年また総理に選出されたベニャミンネタニアフイスラエル総理はイスラエルの代表的な強硬右派政治家です. 特にパレスチナ問題においては超強硬姿勢を維持して, 一貫されるように中東 2国家解法を強調して来たアメリカオバマ行政府と始終葛藤をもたらして来ました. 参照に以前政権であるジョージ W. ブッシュ行政府も ¥"2国家解法¥"を支持して来ました.
ベニャミンネタニアフ総理は最近UN安保理がイスラエルのユダヤ人定着村建設中断を促す決議案を通過させると拒否権を持っているアメリカが棄権することで事実上決議案通過を助けたと猛烈に責めたんです.
[録音: ケリー米国務長官 ]
だね, ケリー国務長官の声しばらく聞いたんです. オバマ行政府の外交首長であるケリー長官は中東平和のためには 2国家解法だけが唯一だという立場です. しかしもう来る 20日アメリカの大統領で就任するドナルドトランプ当選人の考えは全然違うが. トランプ当選人は就任すればイスラエルの便に止まると確かに明らかにしています.
こんな中イスラエルは何年前からパレスチナがUNから独立国家承認を推進する動きを見せると 2国家解法の象徴みたいなオスロ協定自体を廃棄する方案を煮こもうと中で. パレスチナもオスロ協定廃棄を論議していることと知られて中東の未来をもっと暗くしています.
ニュース追跡今日はイスラエルパレスチナ葛藤と 2国家解法に対してよく見ました. 今まで朴令書で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