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2016.11.23 21:28갱신
【격진・박정권 】
대통령부가 비아그라 구입 「고산병에 대비해」와 설명 구입 동기에 의념


비아그라=2008년 4월, 독일 Hamburg(AP)


 한국의 최대 야당「 모두 민주당」의 금상희의원은 23일, 대통령부가 작년말경, 성적 불능 치료약「비아그라」를 대량 구입하고 있었다고 분명히 했다.동의원이 의약품 구입 내역 자료를 입수해, 쿄오도통신 등 미디어에 제공했다.

 청와대대변인은, 비아그라가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라고 (들)물어, 금년 5월에 박근 메구미 대통령이 표고의 높은 아프리카의 도시를 외유 하는데 갖추어 샀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자료에서는, 대통령부는 별로 대량의 고산병약을 구입하고 있어 비아그라 구입의 동기에 의념이 나와 있다.(공동)


노상에 놓여진 박근 메구미 대통령의 얼굴이 쓰여진 지상을 걷는 커플=23일, 서울(AP)


http://www.sankei.com/world/news/161123/wor1611230045-n1.html

================================================================

================================================================




벌써 환갑을 지나고 있다는데 번성한 일로.

( ´-д-) オェ。




================================================================
(덤)

「성 노예」를 부정한 한국인 교수의 용기
일한 양국에 있어서의「위안부 문제」의 진정제가 될까

2016.11.22(화)모리키요 이사무


서울의 일본 대사관앞에서 자신의 몸을 불로 태우는 것 자살 도모한 남성이 사망, 위안부 문제로 항의


한국 서울의 일본 대사관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남성과 불을 지우려고 하는 여성(2015년 8월 12일 촬영) 〔AFPBB News〕


 2014년 10월호『SAPIO』에 게재된 1매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캡션에는 「원위안부의 앞에서〝땅에 엎드려 조아림〟를 하는 이 사카에 카오루 교수.여성들로부터 갖은 험담을 뒤집어 쓰는 님 아이가 신문・텔레비전으로 보도된」어떤.

 서울 대학 경제학부의 이 사카에 카오루(이욘훈) 교수는,조선시대 말기부터 식민지 시대까지를 경제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재검토해, 일본에 의한 토지와 식료의 수탈을 과장하는 종래의 역사를 부정해 왔다.

 교수는, 2004년에는,사실에 근거해 위안부의「강제 연행」를 부정했다가,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소파에 늘어서는 위안부들의 앞에서 땅에 엎드려 조아림 당했다.사진은 그 때의 것이었다.

 이러한민족주의의 주박
이, 사실에 충실해도 하는 교수를 한층 분발하게 해 2006년에는 반일 사관 등 종래의 역사관에 사로 잡히지 않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응시해 개최된 포럼에 참가한다.

 이지만, 여기에서도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때리고 차는 것 폭력을 받았다라고 말해진다.그러나, 교수는 거기에도 굴하지 않고, 2007년에『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출판 해, 한국민에게 역사의 진실을 말을 걸었다.

(참고・관련 기사)「하늘에 침 하는 위안부 문제, 한국의 언론 탄압에 세계도 주목 」

역사의「재작성」가 시작된다

 땅에 엎드려 조아림과 같은 「혼이 난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라고 하는 교수는, 포럼으로 「탈민족주의라고 하는 관점으로부터 해방 전후사를 재해석한 국내외가 뛰어난 학술 논문을 일서에 모으는 편집 작업을 실시한다.

 이 일서가 신문이나 방송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한국 사회를 지지하고 있는 다수파층이, 「민족・민중・계급등이라고 하는 그들의 일상생활과 괴리한 역사에 의해서 얼마나 가 뛰어날 수 있어 를, 그리고 자유와 신뢰에 의한 법치의 문명으로서 밝게 그려진, 새로운 역사를 얼마나 갈망 하고 있는지를 통감한」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 교과서의 내용은 사실은 아니다.과장되어 있거나, 잘못해 해석된 것이 대부분이다.그러한 이야기는 모두, 교과서를 쓴 역사학자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말한다.

 거기에는,민족주의에 점령된 국민에게, 올바른 사실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이라고 하는 부동의 의지를 간파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으로 교수가 출판 한 것이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부제는 「한국의『국사』교과서를 고쳐 써서」라고 하는 제안이 되어 있어, 민족주의에 사로 잡히지 않는 인간을 역사의 기본 단위로서 쓰여진 사본・역사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자.

 일본어 번역의 띠에는 「한국내에서 맹공격을 받은 베스트셀러 결국 번역!」「친북한, 반일의 한국의 역사는 잘못되어 있는」「서울대교수의 역사학자가 쓴 진짜 한국의 역사.이것을 기회로『새로운 역사 교과서』만들기가 시작한」라고 쓰여져 있다.

반일 교육을 받아 반일 정치가 상태화 한 가운데 생활해 온 많은 한국인에 있어서는 눈으로부터 비늘의 내용(뿐)만으로, 충격의 책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책을 손에 넣는 것 자체가 반한・친일의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상황속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으로, 한국인에게는 복잡한 기분이 혼합했던 것이 상상할 수 있다.

 목차안의 소항목을 대충 보면, 「민족주의의 함정으로부터 빠져 나와로」「『식민지 수탈론』비판」「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실상」「일제가 이 땅에 남긴 유산」등이 있다.민족주의의 색안경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또선악 빼기에 사실을 직시하려고 하는 관점이 방문한다.

 본론의 전에「책의 문을 열기에 즈음해」의 일문이 더해지고 있다.종래는 사용하는 용어에 신경을 쓴 나머지 표현을 애매하게 하거나 사전에 친구에게 읽게 하면「일본편의 우파로 되어 버리는 위험성이 있다」라고 하는 지적을 받는 일이 있었다는 등과로서「언제의 무렵부터일까.문장을 쓸 때자기 검열을 걸치게 된」라고 고백해, 이 검열자는 「한국의 난폭한 민족주의」에서 만났다고 술회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검열을 강요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해, 과거 50년간, 민족주의의 역사학이, 이십세기의 한국사의 이치를 얼마나 심각하게 비뚤어지게 해 왔는지를 쬐려고 한」와 출판의 목적을 말한다.

자의적인「정신대=위안부」혼동


 문제의 위안부에 대해서는「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실상」와 계속 되는「그 날, 나는 왜 그 같게 말했는지」에 자세하게 쓰여져 있다.

 한국의 오늘의 중학・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는, 「일본이 조선의 순결한 아가씨를 정신대라고 하는 이름으로 동원해, 일본군의 위안부로 한」라고 쓰여져 있지만, 1960년대 초까지는 「위안부와 정신대는 내용도 경위도 완전히 별개의 것」라고 이해해, 「1979년까지의 역사 교과서는 정신대나 위안부에 관해서 이렇다 할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와 역사적 사실에 접한다.

 교수는 약 175명의 여성이 자신의 위안부로서의 불행한 과거를 고백했지만,누구하나 당초는 정신대로서 동원되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위안부 문제를 위해서 결성된 시민 단체는「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의 이름으로 활동해 왔고, 매스컴은「여자정신근로령」를 찾아내고,일본이 반도에서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도발한 증거와 1면톱으로 대서특필.

 또 12세부터 13세의 젊은 학생은 근로정신대에게,15세 이상의 미혼 여성은 종군위안부로서 연행되었다라고 쓴 것 등을 지적한다.

 요즘부터, 소설에 여자정신대의「영장」가 오고, 「풍문」로 위안부로 되고 갔다는 등의 묘사도 나타나 온다.교수는 역사가의 입장으로부터,여자정신대에게 영장이 나왔던 적은 없는것으로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부정한다.

 이와 같이 매스컴이 선두를 다투고,어린 소녀들이 정신대라고 하는 이름으로 위안부로서 강제 연행되었다라고 보도하는 가운데, 소설, 영화,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까지 「정신대=위안부」가 등장해, 한국민의 사이에 정식화가 진행되고 갔다고 본다.

 단지, 이러한 인식에 불붙인 것은 뜻밖에 일본인이었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중에서, 교수는 등영 츠요시(타케시) 씨의 논문(「샹하이의 일본군위안소와 한국인」)을 인용하는 형태로,일본인 여성 뿐만이 아니라, 「조선 여성들도 1931년 이후, 활발하게 샹하이에 들어 오고 있어」라고 하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1931년의 한국인 위안부는 139명이었지만, 36년에는 913명이 되어, 동년부터는한국인 경영의 위안소도 할 수 있다.또, 2000엔으로 스타트한 자본금이 3년 후의 40년에는 6만엔에도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

위안부를 모으기 위해서 활약한 것이 뚜장이(조짐)이다.뚜장이가 부모에게 큰 돈을 보이고 광인가 해, 「취직 알선 사기」나「협박 및 폭력」로 여성을 모아 있다 있어는「군위문단」나「여자 군속」의 모집등이라고 속여 모은 사실을 말한다.

 어쨌든,한국인 뚜장이가 감언을 농 하고 여성을 모았다라고 하는 것으로, 결코 「(일본인이나 일본군에 의한다) 강제 연행」등에서는 없었기 때문에,아사히 신문이 2014년에 간신히 거짓말로 판정한「요시다 세이지의 고백(책)」를, 10년이나 전에「사실은 아닌」라고 부정하고 있던 것인다.

 또,군에 의한 관리 매춘은 한국 전쟁 당시의 한국에서도 서울, 춘천, 원주, 강릉, 속초등에서 행해지고 있어 위안부들은「 제5종 보급품」(덧붙여서 제1종은 양식, 제2종은 장비품 등이다)로 불려 미성년자도 적지 않고, 「매춘 시장을 경유한 한국 여성이, 1980년대까지 백만명을 넘은 」라고도 말한다.

 당시 건재함 위안부에게 취재해 확인하면서 쓴 이 교수의 본서에, 아사히 신문이나 성 노예등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학자・지식인들은 눈을 통한창의 것일까.아마 대충 훑어보았지만, 사실보다 이데올로기가 먼저 있어,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바꾸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있을것이다.

「성 노예」도 단호히 부정한 용기

 이 교수는 2004년에강제 연행을 부정했다.

 그러나, 「샹하이의 위안소에 대해 조금 놀라울 정도의 큰 돈을 번 위안부의 이야기」가 있다가, 「여러가지 기록을 보면, 이것은 그만큼 드문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다」 등이라고 말해중국의 한구에서 일하고 있던 한국인 위안부가「5만엔(벌써 3만엔 저금)이 되면 서울로 돌아오고 일품 요리점을 여는」라고 말하고 있던 것을 (들)물은 일본인 사령관이「대단한 오나고인」와 표창한일이나,1942년부터 3년간, 버마 전선으로 보낸 문옥주는 5천엔을 친가에 보내, 더 통장에는 2만 5천엔(「주간 신쵸 출판사 」2016.10.20첨부, 사쿠라이좋아 개씨의「일본 르네상스」에서는, 2만 6천엔으로 말해 집 26채분으로 하고 있다)가 있던일등을 예시한다.

 그러나, 위안부의 생활 상황에 대해서는, 요시미 요시아키 중앙 대학교수의 주장에 찬성의 입장으로부터,행동의 자유가 없었다, 정기적인 위생 검사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자유로운 외출은 금지되고 있었다등을 들어 「여성들은 성 노예에 외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내에서는 아직도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한 것이 실정」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교수는 역사적 경위를 중시해,한국군에게도 위안부 제도가 있던일이나미군을 위한 한국인 위안부가 1990년대까지 있던일등을 통계 자료등에서 나타내 보여, 역사가로서 「일본군위안부라고 하는 사건을 과거의 역사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주변에까지 깊게 침투하고 있는 현실로서 느끼고 있는」라고도 말하고 있다.

 그런데 , 금년 8월에 간「위안부의 여자들」의 강의에서는,「성 노예설」도 명쾌하게 부정한 것인다.

 강의는「이 사카에 카오루 교수의 환상의 나라」라고 제목을 붙여 12회 간 연속 강의의 최종회에서, 22일과 23일에 3회로 나누고, 합계 2시간 10분 남짓에 걸쳐서 강의했다고 한다(상기 주간지 및「산케이신문 」28.10.20첨부「아비류류비의 극언면」).

 유력한 자료원이 된 것은 『일본군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일본어미번역)의 같다.노예에게는 법적 인격이 인정받지 못하지만, 「위안부는 고임금으로 폐업의 자유가 있던」「현저한 난폭을 한 일본 병사를 척살한 위안부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가 된」, 또「나날의 생활에서도, 월 2회의 휴일이 있어, 그 때는 근무지를 떠나는 자유도 있던」일등에서, 위안부에게는 법적 인격이 인정되고 있었다로서 「성 노예는 아닌」라고 단언한다.

 과거의 일본의 위안부 제도가 성 노예이다면,같은 제도를 근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가지고 있던 한국의 제도도「성 노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이라고 하는 인식에 선 적도 있자.

 이러한 고찰의 결과로서, 현재도 「위안부성 노예설」를 주장하고 있는 요시미 교수를 가리키고, 「씨의 책은 근거가 불충분하다」와 치워「일본군위안부성 노예설」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결론 붙이고 있다고 한다.

위안부는 20만이 아니고 5000명

 위안부의 수에 대해서도20만명설을 황당 무계라고 부정해, 많아서 5000명(진쿠니히코씨는『위안부와 전장의 성』로, 약 4000명과 시산.JBpress 졸론「하늘에 침 하는 위안부 문제, 한국의 언론 탄압에 세계도 주목」참조)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원위안부들은 증언을 대굴대굴 바꾸고 있어 자료로서 사용하는 경우는 신중함이 필요와 경고해도 있다.

 종래, 위안부의 증언에 어긋나는 점을 볼 수 있어도, 일종의 하늘의 소리이기도 한 것 같이 의문을 나타내는 것 조차 꺼려진 것으로는, 당목 해야 할 발언이며, 한국민의 역사 인식이 재차 추궁 당하자.

한국에서 사실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용기가 있는 것이어, 하물며 일본을 평가하는 발언은 교수등의 지위가 박탈되어 작가는 불매 운동에 말려 들어가는 등, 사회적으로 말살 될지도 모른다.이하에 몇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위안부는 제국주의가 가져온 문제로, 일본에만 특유의 것은 아니고 많은 나라도 대든지 소든지 관계하고 있는으로 한 박유하(파크유하) 교수의『제국의 위안부』는출판을 금지할 수 있고 있다.또, 원위안부들에게서는명예 훼손으로 호소할 수 있어 현재 소송사건이 되어 있다.

 박교수는 일본을 면책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도 감정으로부터는 아니게 사실을 사실로서 추구해, 「한국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라고 할 생각에 이르러, 출판 한 것이다.그러나「한국도・・・」가 위안부나 지원 단체를 자극 했던 것이다.

 2014년 4월, 대형 여객선 세워르호침몰 사고가 있었다.그 직후부터 7시간, 박근 메구미 대통령의 행동이 불명한 일에 대해한국지등을 인용하고 칼럼을 쓴산케이신문의 카토 타츠야 지국장(당시 )을명예 훼손으로 호소할 수 있어 사정청취이기 때문에 구속되었다.

 일본의 보도 기관 뿐만이 아니라, 미구 제국이나 보도 기관등에서 「이해할 수 없는」와 굉굉인 비판을 받았음에도 걸리지 않고8개월 여에 걸쳐서 구속되고 출국을 금지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무죄 방면이 되지만,한국민이나 대통령의 의도로 움직인다고도 야유되는 검찰에는, 위안부 문제를 추궁해 마지않는 산케이신문이, 또 그 지국장이, 감정적으로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있을것이다.

친일에서는「살아갈 수 없는 」

 이 건에 관해서, SAPIO잡지(2014년 10월호)가, 19명의 한국인 식자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는데, 13명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가, 한국 비판을 하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등의 이유로 취재 거부해, 응한 것은 6명 뿐이었다고 한다.

 취재에 응한 오선화씨는, 일한의 문화 비교를 알기 쉽게 쓴『스커트의 바람』가 베스트셀러로서 일약 유명하게 되지만, 신쥬쿠 가부키쵸로 일하는 한국인 호스테스등을 취재한 것으로부터 매국노라고 비판되어 씨의 저작을 읽었던 적이 없는 사람까지가 「개 같은 놈의 오선화죽일 수 있는(사회적 말살의 뜻)」등의 갖은 험담을 뒤집어 썼다고 한다.

 일본에 귀화한 후,육친의 장의와 친족의 결혼의 2도, 한국에의 입국이 거부되어, 그 끝에 「일본 우익에 매수된 현재의 종군위안부」라든가, 「실재의 인물(한국인)은 아니고 일본인」 등과저속하고 출설목인 기사로 인격 부정까지 행해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 금완섭(원소프) 씨는『친일파를 위한 변명』를 출판했을 때,타케시마는 일본령, 위안부는 병사의 사기를 높여 일반 자녀의 강간을 막는 점으로 일본이 발명한 훌륭한 제도등의 기술도 있어,청소년 유해 도서로 지정되었다.또, 협박을 받는 것과 동시에, 한때는출국 금지로도 된다.

 브로가의 치과의는, 한국의 반일 사상에 경종을 계속 울려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나『한국인에 의한 심한론』 등을 출판 하고 있지만, 본명이 아니고「신시아 리」라고 하는 펜 네임으로 계속 발언하고 있다.

 작가 유순하씨는『당신들의 일본』를 출판 후, 넷에서 용서 없는 규탄을 받았고, 서평은 부정적인 물건(뿐)만으로, 「한국의 개선점을 지적하려면  각오가 있는」와 술회 한다.

 그러한 이식해로, 「지금, 한일 양국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탐욕인 중국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해, 「반일은 레벨의 낮은 감정적인 배설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라고 지적한다.

 문화인류 학자로, 일본 학과의 주임 교수인 최길죠씨는,「한국어 정화」를 내거는 학생이 나무 아래에서 화투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것으로, 「화투는 일본의 문화다.그런데도 한국어의 정화라고는 무슨 일이다」와 물으면, (폭력등이 있었는가는 불명하지만)「학생들은 많이 화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동남아시아에서는 강한 반일은 (듣)묻지 않고, 한국에 있어서의 반일도 식민지 시대에 양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적어도 교육, 농촌 진흥, 인프라 정비에 대해서는 사념을 섞지 않고(일본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한국 육군원대령의 지만원씨는, 반일친중을 강하게 하고 있던 박근 메구미 대통령에 대해 「정치가로서의 능력과 밸런스 감각이 너무도 결여 하고 있는」라고 비판해, 「한국의 국익을 해치는 어리석은 짓」라고 단언하고 있다.

한 가지를 알면 모두를 안다는 , 정당한 의견이 폭력에 의해서 봉해 온 것이 한국 사회이다.

 인터뷰에 응한 작가들의 용기를 칭하는 의미로, 발자국을 간단하게 소개했다.용기 있다 그들이지만, 인터뷰 중(안)에서, 동일하고「 나는 친일파는 아닌」와 거절하는데,자기 검열을 볼 수 있다.

끝에

 이 사카에 카오루 교수는, 경제학자로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굳이 불 속의 률을 주우려 하고 있는 것으로 있다.그 용기에 대한 칭찬의 말은 용이하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교수는「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환상을 지우지 않으면 안 된다.우선 외교적인 갈등에까지 된 역사로부터 해방되어야만, 진짜 의미로 근대인이 될 수 있는」와 한국인에 호소한다.

 「위안부성 노예」의 부정 등, 종래는 염상 했을 것이다 국민 여론도 이 강의에서는 그다지가 아닌 것은, 작년말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한 합의가 효과를 상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난징 학살 문제도 발화장소는 일본이며, 아사히 신문이다.이 자세는아사히 신문이 대동아전쟁의 패전 정보를 알면서, 정부나 여론에 거리낌해 새로운 전투를 계속 부추겨 국민을 쓸데 없는 죽어 쫓아 버린 것(호소카와 타카모토『실록 아사히 신문』)와 오버랩이다.

 위안부성 노예설의 부정으로 한국에 뒤져서는, 후세까지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구독자의 격감이 되는 것은 반드시일 것이다.

http://jbpress.ismedia.jp/articles/-/48443

================================================================
(재게)

제12강위안소의 여성들(1)     2016/08/22




http://www.youtube.com/watch?v=Ng45SOF0kmM



제12강위안소의 여성들(2)     2016/08/23




http://www.youtube.com/watch?v=GLvJDHphV5Q



제12강위안소의 여성들(3)      2016/08/23




http://www.youtube.com/watch?v=HHX1Q2YteTI




大統領が国費でお買い物。


2016.11.23 21:28更新
【激震・朴政権】
大統領府がバイアグラ購入 「高山病に備えて」と説明 購入動機に疑念


バイアグラ=2008年4月、独ハンブルグ(AP)


 韓国の最大野党「共に民主党」の金相姫議員は23日、大統領府が昨年末ごろ、性的不能治療薬「バイアグラ」を大量購入していたと明らかにした。同議員が医薬品購入内訳資料を入手し、共同通信などメディアに提供した。

 大統領府報道官は、バイアグラが高山病に効果があると聞き、今年5月に朴槿恵大統領が標高の高いアフリカの都市を外遊するのに備えて買ったと主張した。しかし資料では、大統領府は別に大量の高山病薬を購入しており、バイアグラ購入の動機に疑念が出ている。(共同)


路上に置かれた朴槿恵大統領の顔が書かれた紙の上を歩くカップル=23日、ソウル(AP)


http://www.sankei.com/world/news/161123/wor1611230045-n1.html

================================================================

================================================================




とうに還暦を過ぎているというのにお盛んなことで。

( ´-д-) オェ。




================================================================
(おまけ)

「性奴隷」を否定した韓国人教授の勇気
日韓両国における「慰安婦問題」の鎮静剤になるか

2016.11.22(火) 森 清勇


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焼身自殺図った男性が死亡、慰安婦問題で抗議


韓国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自分の体に火を付けた男性と火を消そうとする女性(2015年8月12日撮影)〔AFPBB News〕


 2014年10月号『SAPIO』に掲載された1枚の写真が忘れられない。キャプションには「元慰安婦の前で〝土下座〟をする李栄薫教授。女性たちから罵詈雑言を浴びせられる様子が新聞・テレビで報じられた」とある。

 ソウル大学経済学部の李栄薫(イヨンフン)教授は、朝鮮時代末期から植民地時代までを経済史的観点から再検討し、日本による土地と食料の収奪を誇張する従来の歴史を否定してきた

 教授は、2004年には、史実に基づいて慰安婦の「強制連行」を否定したが、社会的な非難を受け、ソファーに居並ぶ慰安婦たちの前で土下座させられた。写真はその時のものであった。

 こうした民族主義の呪縛が、史実に忠実であろうとする教授を一層奮い立たせ、2006年には反日史観など従来の歴史観にとらわれない新しい歴史教科書を見据えて開催されたフォーラムに参加する。

 だが、ここでも反対する勢力から殴る蹴るの暴力を受けたと言われる。しかし、教授はそれにもめげず、2007年に『大韓民国の物語』を上梓し、韓国民に歴史の真実を語りかけた。

(参考・関連記事)「天に唾する慰安婦問題、韓国の言論弾圧に世界も注目」

歴史の「書き直し」が始まる

 土下座のような「ひどい目にあった不快な記憶から解放されたかった」という教授は、フォーラムで「脱民族主義という観点から解放前後史を再解釈した国内外の優れた学術論文を一書に纏める編集作業を行う。

 この一書が新聞や放送で大々的に報じられ、韓国社会を支えている多数派層が、「民族・民衆・階級などという彼らの日常生活と乖離した歴史によってどれほど苛まされてきたのかを、そして自由と信頼による法治の文明として明るく描かれた、新しい歴史をどれほど渇望しているのかを痛感した」という。

 そして、「韓国の歴史教科書の内容は事実ではない。誇張されていたり、誤って解釈されたものが大部分だ。そのような話はすべて、教科書を書いた歴史学者の作り出した物語」だと述べる。

 そこには、民族主義に占領された国民に、正しい史実を知ってもらいたいという不動の意志が見て取れる。

 こうした意識で教授が上梓したのが『大韓民国の物語』である。副題は「韓国の『国史』教科書を書き換えよ」という提案になっており、民族主義にとらわれない人間を歴史の基本単位として書かれた私本・歴史物語とでも言えよう。

 日本語訳の帯には「韓国内で猛攻撃を受けたベストセラー遂に翻訳!」「親北朝鮮、反日の韓国の歴史は間違っている」「ソウル大教授の歴史学者が書いた本当の韓国の歴史。これを機に『新しい歴史教科書』作りがはじまった」と書かれている。

反日教育を受け、反日政治が常態化した中で生活してきた多くの韓国人にとっては目から鱗の内容ばかりで、衝撃の本であったに違いない。

 このような本を手にすること自体が反韓・親日の烙印を押され兼ねない状況の中で、ベストセラーになったわけで、韓国人には複雑な気持ちが混交したことが想像できる。

 目次の中の小項目をざっと見ると、「民族主義の陥穽から抜け出でよ」「『植民地収奪論』批判」「日本軍慰安婦問題の実相」「日帝がこの地に残した遺産」などがある。民族主義の色眼鏡で歴史を見るのではなく、また善悪抜きに史実を直視しようとする視座が伺える。

 本論の前に「書の扉を開くにあたり」の一文が添えられている。従来は使用する用語に気を使うあまり表現を曖昧にしたり、事前に友人に読んでもらうと「日本びいきの右派にされてしまう危険性がある」という指摘を受けることがあったなどととして、「いつの頃からであろうか。文章を書くときに自己検閲をかけるようになった」と告白し、この検閲者は「韓国の横暴な民族主義」であったと述懐する。

 そして、「そのような検閲を強いる韓国の民族主義を批判し、過去50年の間、民族主義の歴史学が、二十世紀の韓国史の道筋をどれほど深刻に歪めてきたのかを晒そうとした」と出版の目的を語る。

恣意的な「挺身隊=慰安婦」混同


 問題の慰安婦については「日本軍慰安婦問題の実相」と、続く「あの日、私はなぜあのように言ったのか」に詳しく書かれている。

 韓国の今日の中学・高校の歴史教科書には、「日本が朝鮮の純潔な乙女を挺身隊という名で動員し、日本軍の慰安婦とした」と書かれているが、1960年代初めまでは「慰安婦と挺身隊は内容も経緯も全く別個のもの」と理解し、「1979年までの歴史教科書は挺身隊や慰安婦に関してこれといって言及していません」と歴史的事実に触れる。

 教授は約175人の女性が自身の慰安婦としての不幸な過去を告白したが、誰一人当初は挺身隊として動員されたと証言した人はいなかったという。

 しかし、その後、慰安婦問題のために結成された市民団体は「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の名で活動してきたし、マスコミは「女子挺身勤労令」を探し出して、日本が半島で組織的に慰安婦を挑発した証拠と1面トップで特筆大書。

 また12歳から13歳の若い生徒は勤労挺身隊に、15歳以上の未婚女性は従軍慰安婦として連行されたと書いたことなどを指摘する。

 この頃から、小説に女子挺身隊の「令状」が来て、「風聞」で慰安婦にされていったなどの描写も現れてくる。教授は歴史家の立場から、女子挺身隊に令状が出されたことはないので「正確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と否定する。

 このようにマスコミが先を争って、幼い少女たちが挺身隊という名で慰安婦として強制連行されたと報道する中で、小説、映画、そして歴史教科書にまで「挺身隊=慰安婦」が登場し、韓国民の間に定式化が進んでいったとみる。

 ただ、こうした認識に火をつけたのは図らずも日本人であったとも述べる。

 こうした中で、教授は藤永壯(たけし)氏の論文(「上海の日本軍慰安所と朝鮮人」)を引用する形で、日本人女性だけでなく、「朝鮮女性たちも1931年以降、活発に上海へ入ってきてい」たという事実が重要だと述べる。

 1931年の韓国人慰安婦は139人であったが、36年には913人となり、同年からは朝鮮人経営の慰安所もできる。また、2000円でスタートした資本金が3年後の40年には6万円にも膨れ上がったという。

慰安婦を集めるために活躍したのが女衒(ぜげん)である。女衒が親に大金を見せて誑かし、「就職斡旋詐欺」や「脅迫及び暴力」で女性を集め、あるいは「軍慰問団」や「女子軍属」の募集などと偽って集めた事実を述べる。

 いずれにしても、朝鮮人女衒が甘言を弄して女性を集めたというわけで、決して「(日本人や日本軍による)強制連行」などではなかったので、朝日新聞が2014年にようやく虚言と判定した「吉田清治の告白(本)」を、10年も前に「事実ではない」と否定していたのである。

 また、軍による管理売春は朝鮮戦争当時の韓国でもソウル、春川、原州、江陵、束草などで行われており、慰安婦たちは「第5種補給品」(ちなみに第1種は糧食、第2種は装備品などである)と呼ばれ、未成年者も少なくなく、「売春市場を経由した韓国女性が、1980年代までに百万人を超えた」とも述べる。

 当時健在であった慰安婦に取材して確認しながら書いた李教授の本書に、朝日新聞や性奴隷などと主張する日本の学者・知識人たちは目を通さなかったのだろうか。多分目を通したが、事実よりもイデオロギーが先にあり、イデオロギー的主張を変えることの方が難しかったのであろう。

「性奴隷」もきっぱり否定した勇気

 李教授は2004年に強制連行を否定した。

 しかし、「上海の慰安所においてちょっと驚くほどの大金を稼いだ慰安婦の話」があるが、「いろいろな記録を見ると、これはそれほど稀なことでもありません」などと述べ、中国の漢口で働いていた朝鮮人慰安婦が「5万円(すでに3万円貯金)になったらソウルに戻って小料理屋を開く」と語っていたことを聞いた日本人司令官が「大したオナゴである」と表彰したことや、1942年から3年間、ビルマ戦線で過ごした文玉珠は5千円を実家へ送り、なお通帳には2万5千円(「週刊新潮」2016.10.20付、櫻井よしこ氏の「日本ルネッサンス」では、2万6千円と述べ、家26軒分としている)があったことなどを例示する。

 しかし、慰安婦の生活状況については、吉見義明中央大学教授の主張に賛成の立場から、行動の自由がなかった、定期的な衛生検査を受けねばならなかった、自由な外出は禁止されていたなどを挙げ、「女性たちは性奴隷に他なりませんでした」と書いていた。

 同時に「韓国内では未だ専門的な研究が不足しているのが実情」と語っていた。

 また、教授は歴史的経緯を重視し、韓国軍にも慰安婦制度があったことや米軍のための韓国人慰安婦が1990年代までいたことなどを統計資料などで示し、歴史家として「日本軍慰安婦という事件を過去の歴史としてのみ見るのではなく、今日我々の周辺にまで深く浸透している現実として感じている」とも述べている。

 ところが、今年8月に行った「慰安婦の女たち」の講義では、「性奴隷説」も明快に否定したのである。

 講義は「李栄薫教授の幻想の国」と題して12回行った連続講義の最終回で、22日と23日に3回に分けて、計2時間10分余にわたって講義したという(上記週刊誌および「産経新聞」28.10.20付「阿比留瑠比の極言御免」)。

 有力な資料源となったのは『日本軍慰安所管理人の日記』(日本語未翻訳)のようである。奴隷には法的人格が認められないが、「慰安婦は高賃金で廃業の自由があった」「著しい乱暴をした日本兵士を刺殺した慰安婦が正当防衛を認められ無罪となった」、また「日々の生活でも、月2回の休日があり、その時は勤務地を離れる自由もあった」ことなどから、慰安婦には法的人格が認められていたとして、「性奴隷ではない」と言い切る。

 過去の日本の慰安婦制度が性奴隷であるならば、同様の制度を近年に至るまで持ち続けていた韓国の制度も「性奴隷」と言わざるを得ないという認識に立ったこともあろう。

 こうした考察の結果として、現在も「慰安婦性奴隷説」を主張している吉見教授を指して、「氏の本は根拠が不十分だ」と退け、「日本軍慰安婦性奴隷説」を見直すべきだと結論付けているそうである。

慰安婦は20万でなく5000人

 慰安婦の数についても20万人説を荒唐無稽と否定し、多くて5000人(秦郁彦氏は『慰安婦と戦場の性』で、約4000人と試算。JBpress拙論「天に唾する慰安婦問題、韓国の言論弾圧に世界も注目」参照)と見積もっている。

 また、元慰安婦たちは証言をころころ変えており、資料として使う場合は慎重さが必要と戒めてもいる。

 従来、慰安婦の証言に食い違いが見られても、一種の天の声でもあるかのように疑問を呈することさえ憚られたことからすると、瞠目すべき発言であり、韓国民の歴史認識が改めて問われよう。

韓国で本当のことを言うのは、いかに勇気がいることであり、ましてや日本を評価するような発言は教授などの地位を剥奪され、作家は不買運動に巻き込まれるなど、社会的に抹殺されかねない。以下に幾つかの事例を紹介する。

慰安婦は帝国主義がもたらした問題で、日本だけに特有のものではなく多くの国も大なり小なり関係しているとした朴裕河(パクユハ)教授の『帝国の慰安婦』は出版を差し止められている。また、元慰安婦たちからは名誉棄損で訴えられ、現在裁判沙汰になっている。

 朴教授は日本を免責するものではないが、韓国も感情からではなく事実を事実として追求し、「韓国も変わ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考えに至り、上梓したのであった。しかし「韓国も・・・」が慰安婦や支援団体を刺戟したのである。

 2014年4月、大型旅客船セウォル号沈没事故があった。その直後から7時間、朴槿恵大統領の行動が不明なことについて韓国紙等を引用してコラムを書いた産経新聞の加藤達也支局長(当時)が名誉毀損で訴えられ、事情聴取のため拘束された。

 日本の報道機関ばかりでなく、米欧諸国や報道機関などから「理解できない」と轟轟たる批判を受けたにもかからず8か月余にわたって拘束され、出国を禁止された

 最終的には無罪放免になるが、韓国民や大統領の意図で動くとも揶揄される検察には、慰安婦問題を追及してやまない産経新聞が、またその支局長が、感情的に許せなかったのであろう。

親日では「生きていけない」

 この件に関して、SAPIO誌(2014年10月号)が、19人の韓国人識者にインタビューを申し込んだところ、13人が「言いたいことはあるが、韓国批判をすれば社会で生きていけない」などの理由で取材拒否し、応じたのは6人だけであったという。

 取材に応じた呉善花氏は、日韓の文化比較を分かりやすく書いた『スカートの風』がベストセラーとして一躍有名になるが、新宿歌舞伎町で働く韓国人ホステスなどを取材したことから売国奴と批判され、氏の著作を読んだことがない人までが「犬畜生の呉善花をぶっ殺せ(社会的抹殺の意)」などの罵詈雑言を浴びせられたそうである。

 日本に帰化した後、肉親の葬儀と親族の結婚の2度、韓国への入国を拒否され、その揚げ句に「日本右翼に買収された現在の従軍慰安婦」だの、「実在の人物(韓国人)ではなく日本人」などと、低俗かつ出鱈目な記事で人格否定まで行われたと語っている。

 作家の金完燮(ワンソプ)氏は『親日派のための弁明』を出版した際、竹島は日本領、慰安婦は兵士の士気を高め、一般子女の強姦を防ぐ点で日本が発明した素晴らしい制度などの記述もあり、青少年有害図書に指定された。また、脅迫を受けると同時に、一時は出国禁止にもなる。

 ブロガーの歯科医は、韓国の反日思想に警鐘を鳴らし続け、『韓国人による恥韓論』や『韓国人による沈韓論』などを上梓しているが、本名でなく「シンシアリー」というペンネームで発言し続けている。

 作家の柳舜夏氏は『あなたたちの日本』を出版後、ネットで容赦ない糾弾を受けたし、書評は否定的なものばかりで、「韓国の改善点を指摘するには覚悟がいる」と述懐する。

 そうしたうえで、「今、韓日両国が目指すべきは、貪欲な中国をコントロールできる良好な関係を構築することだ」と主張し、「反日はレベルの低い感情的な排泄行為以上の意味を持ち得ない」と指摘する。

 文化人類学者で、日本学科の主任教授であった崔吉城氏は、「韓国語浄化」を掲げる学生が木の下で花札に興じていたので、「花札は日本の文化だ。それなのに韓国語の浄化だとはどういうことだ」と問うと、(暴力などがあったかは不明であるが)「学生らは大いに怒った」と告白する。

 そして、東南アジアでは強い反日は聞かれないし、韓国における反日も植民地時代に醸成されたのではないと述べ、「少なくとも教育、農村振興、インフラ整備については邪念を交えず(日本を)正当に評価すべきである」と主張する。

 韓国陸軍元大佐の池萬元氏は、反日親中を強めていた朴槿恵大統領について「政治家としての能力とバランス感覚が余りにも欠如している」と批判し、「韓国の国益を損ねる愚行」と断言している。

一事が万事、真っ当な意見が暴力によって封じ込まれてきたのが韓国社会である

 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作家たちの勇気を称える意味で、足跡を簡単に紹介した。勇気ある彼等であるが、インタビューの中で、等しく「私は親日派ではない」と断りを入れているところに、自己検閲が見られる。

おわりに

 李栄薫教授は、経済学者として歴史的事実を踏まえて、あえて火中の栗を拾おうとしているわけである。その勇気に対する賞賛の言葉は容易には見当たらない。

 教授は「私たちが先進国になるためには、すべての幻想を消さなければならない。まず外交的な葛藤にまでなった歴史から解放されてこそ、本当の意味で近代人になれる」と、韓国人に呼びかける。

 「慰安婦性奴隷」の否定など、従来は炎上したであろう国民世論もこの講義ではさほどでないのは、昨年末の慰安婦問題に対する日韓合意が効を奏しているからであろう。

慰安婦問題も南京虐殺問題も火元は日本であり、朝日新聞である。この姿勢は朝日新聞が大東亜戦争の敗戦情報を知りながら、政府や世論に気兼ねしてさらなる戦闘を煽り続け、国民を無駄な死に追いやったこと(細川隆元『実録 朝日新聞』)と二重写しである。

 慰安婦性奴隷説の否定で韓国に後れを取っては、末代までの語り草となり、購読者の激減になることは必定であろう。

http://jbpress.ismedia.jp/articles/-/48443

================================================================
(再掲)

第12講 慰安所の女性たち(1)     2016/08/22

http://www.youtube.com/watch?v=Ng45SOF0kmM



第12講 慰安所の女性たち(2)    2016/08/23

http://www.youtube.com/watch?v=GLvJDHphV5Q



第12講 慰安所の女性たち(3)     2016/08/23

http://www.youtube.com/watch?v=HHX1Q2YteTI




TOTAL: 2443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6777
No Image
일본우익이 또 정보 조작 sandra12 2016-12-04 12634 0
16776
No Image
이스라엘이 위안부는 날조와 유네스....... JAPAV8 2016-12-04 3033 0
16775
No Image
美 特戰團 그린베레 한국 분견대 사진....... Raynor 2016-12-03 2452 0
16774
No Image
일본 특수부대인 특수 작전群과 부대 ....... Raynor 2016-12-03 2464 0
16773
No Image
역사에 배운다  DontKorea2 2016-12-03 2146 0
16772
No Image
산케이 카토에 징벌을 주어라! 대통령....... JAPAV8 2016-12-03 9570 0
16771
No Image
영국 “남지나해에서 전투기 비행....... sun3000R 2016-12-03 2153 0
16770
No Image
이나다 방위상, X-2 시찰 とよき 2016-12-02 2061 0
16769
No Image
필리핀에 공여의 순시선이 출항 とよき 2016-12-02 1875 0
16768
No Image
포르투갈-지상군 Part.4 kanoe_yuuko 2016-12-02 2023 0
16767
No Image
ANA “HIS와 우주 벤처 출자 23년에 상용....... sun3000R 2016-12-02 2376 0
16766
No Image
타카시, 차기 비행 점검기에 감사장 68....... とよき 2016-12-02 3314 0
16765
No Image
포르투갈-지상군 Part.3 kanoe_yuuko 2016-12-02 3655 0
16764
No Image
포르투갈-지상군 Part.2 kanoe_yuuko 2016-12-01 1845 0
16763
No Image
방화, 데모가 성숙한 민주주의인가? とよき 2016-12-01 1561 0
16762
No Image
방위비, 과거 최대의 5조 1000억엔에 とよき 2016-12-01 1600 0
16761
No Image
한국해군"해상초계기 포세이돈 5대 이....... 2016-12-01 1734 0
16760
No Image
KGGB, 현弓, 70mm 유도 로켓 수출 등 efgd 2016-12-01 14025 0
16759
No Image
JASDF “F-35 A창간호기미 공군 루크 ....... sun3000R 2016-12-01 2349 0
16758
No Image
어째서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ihmai1 2016-12-01 187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