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나는 공고에 입학할 수 없자, 상고를 선택했다.
중학교 학생과 선생이 나한테 상고가 취업 잘된다기에 꼬셔서 가게 되었다.
사실상 갈대 없어서 갔다. 이렇게 하면 내가 공부 못해서 들어간줄 알지만
그래도 공부도 좀 했다.
이것 저것 사무에 관련된 일을 배웠고,
인문계도 갈수 있는 충분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장학금 받으며 가게 된것이었다.
그렇지만, 1995년인 내가 중학교 3학년때 IMF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취업은 잘된다고 하니까... 믿어 보았다.
.. 2년후 졸업식날...
젠장.. 완전 속았다. 은행에서 근무 해 보았지만, 정말 재미 없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라는 곳에서 근무한게 제일 재미 있었다.
그렇지만 학력이 딸려서인지 오래 붙어있지 못했다. 고등학교 학력으로는
최소한 석사 출신들하고 게임이 되지 않았다. 대학을 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곳 저곳 일터를 찾아 보았다. 맨 처음에는 그냥 사무직을 찾아 다녀 봤지만
경리 조차 여자를 쓰는 곳이 많기에, 당연히 취업문은 좁았다.
그래서 선택한것이 공장...
전기톱도 만져 보고, 독극물가지고 세척하고 놀고, 물론 도금도 많이 해봤고
기타 공장에서 도색도 해보고... 거의 3D만 하게 되었군..
전기톱가지고, 황동 자르던 시절.. 공장안에는 기름 썩은 내와, 칙칙함, 그리고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형광등 역시 두개 밖에 없었고, 황동관을 바이스에
고정해 놓고 꽉 잡아서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 그작업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 날라간다. 그래도 안전장치 하나 없다. 내 전임자도 손가락이 날라 갔다고 한다.
그래도 6개월은 버텼다.
이번엔 도금 공장이다.. 여기서는 약 1년정도 버텼다.
먼저 세척실에서 황산이랑, 에스크린이라는 강 알카리성 물체랑, 탈수를
해주는 약품이랑 놀고 있었다. 제품은 한없이 오고, 그거 손으로 돌리려니
여간 빡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4개월만에 난 세척실에서 도금실로 갔다.
도금실.. 금이 잔뜩 있었다. 단.. 가루상태였다. 내가 햇던 도금은 습식도금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도금을 한 제품은 니켈과 금도금이다. 내가 도금한 다음 그것을 세척실에
갔다 준다. 흐흐흐..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_-;;
그래도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좋은건 좋은거니까..
음.. 폐가 안 좋아졌다. 담배도 끊었다. 그렇지만, 건강은 계속 좋지 않았다.
이러다가 진폐증 걸리는것은 아닐지 모르겠다만, 내가 쓰는 방독면의 필터의
수명이 다 된듯 싶다. 그렇지만 바꿔 주지 않았다.
결국 건강 악화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다. 정말 좋았다.
인천의 더러운 공기 조차, 내게는 음이온 양이온 같았다.
그리고 들어 간 곳이 GUITAR 제조 공장.. 쩝.. 별로다. 한달하고 그만
둔것 같다. 그 후에 다시 들어 갔다. 그렇지만 5개월도 못 버텼다.
폐가 나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곳에서는 방독면이 있으나 마나이다. 제대로 걸러 주지 못하기에, 계속 페인트와
신나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맛 없다. -_-;;
그래도 하루 평균 100대의 기타를 도색했다. 난 보조자라서 과장이 힘들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도색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타도 이때 도색하게 되었다.
물론.. 후에 가서 내가 도색해서 가지고 나온거지만.. 라이센스 계약 맺고..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사람이 참 좋았다. 과장이라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결국 몸이 좋지 않아, 나왔다. 음..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웠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곳에서, 내 머리카락만한
부품들 가지고 놀고 있다. 그나마 사무직도 겸해서 한다.
이 회사는, 이미 근무한적이 있는 회사이다. 물론 1년 3개월 남짓 일했다가,
다시 돌아 왔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나에게 할당된
일들이 많을 뿐입니다.
>愛話 Wrote…
>형 애기를 듣고싶어요..ㅡㅡ
>
>그 공돌이가 된케이스...
>
>전...반년간 공돌이였었으니깐...
>
>도리어 반대로... 공돌이의 고달픔은...
>
>힘든일이 아니라...
>
>공장의 비리죠...비리...덴장할 비리...
1996년! 나는 공고에 입학할 수 없자, 상고를 선택했다. 중학교 학생과 선생이 나한테 상고가 취업 잘된다기에 꼬셔서 가게 되었다. 사실상 갈대 없어서 갔다. 이렇게 하면 내가 공부 못해서 들어간줄 알지만 그래도 공부도 좀 했다. 이것 저것 사무에 관련된 일을 배웠고, 인문계도 갈수 있는 충분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장학금 받으며 가게 된것이었다. 그렇지만, 1995년인 내가 중학교 3학년때 IMF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취업은 잘된다고 하니까... 믿어 보았다. .. 2년후 졸업식날... 젠장.. 완전 속았다. 은행에서 근무 해 보았지만, 정말 재미 없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라는 곳에서 근무한게 제일 재미 있었다. 그렇지만 학력이 딸려서인지 오래 붙어있지 못했다. 고등학교 학력으로는 최소한 석사 출신들하고 게임이 되지 않았다. 대학을 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곳 저곳 일터를 찾아 보았다. 맨 처음에는 그냥 사무직을 찾아 다녀 봤지만 경리 조차 여자를 쓰는 곳이 많기에, 당연히 취업문은 좁았다. 그래서 선택한것이 공장... 전기톱도 만져 보고, 독극물가지고 세척하고 놀고, 물론 도금도 많이 해봤고 기타 공장에서 도색도 해보고... 거의 3D만 하게 되었군.. 전기톱가지고, 황동 자르던 시절.. 공장안에는 기름 썩은 내와, 칙칙함, 그리고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형광등 역시 두개 밖에 없었고, 황동관을 바이스에 고정해 놓고 꽉 잡아서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 그작업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 날라간다. 그래도 안전장치 하나 없다. 내 전임자도 손가락이 날라 갔다고 한다. 그래도 6개월은 버텼다. 이번엔 도금 공장이다.. 여기서는 약 1년정도 버텼다. 먼저 세척실에서 황산이랑, 에스크린이라는 강 알카리성 물체랑, 탈수를 해주는 약품이랑 놀고 있었다. 제품은 한없이 오고, 그거 손으로 돌리려니 여간 빡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4개월만에 난 세척실에서 도금실로 갔다. 도금실.. 금이 잔뜩 있었다. 단.. 가루상태였다. 내가 햇던 도금은 습식도금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도금을 한 제품은 니켈과 금도금이다. 내가 도금한 다음 그것을 세척실에 갔다 준다. 흐흐흐..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_-;; 그래도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좋은건 좋은거니까.. 음.. 폐가 안 좋아졌다. 담배도 끊었다. 그렇지만, 건강은 계속 좋지 않았다. 이러다가 진폐증 걸리는것은 아닐지 모르겠다만, 내가 쓰는 방독면의 필터의 수명이 다 된듯 싶다. 그렇지만 바꿔 주지 않았다. 결국 건강 악화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다. 정말 좋았다. 인천의 더러운 공기 조차, 내게는 음이온 양이온 같았다. 그리고 들어 간 곳이 GUITAR 제조 공장.. 쩝.. 별로다. 한달하고 그만 둔것 같다. 그 후에 다시 들어 갔다. 그렇지만 5개월도 못 버텼다. 폐가 나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곳에서는 방독면이 있으나 마나이다. 제대로 걸러 주지 못하기에, 계속 페인트와 신나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맛 없다. -_-;; 그래도 하루 평균 100대의 기타를 도색했다. 난 보조자라서 과장이 힘들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도색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타도 이때 도색하게 되었다. 물론.. 후에 가서 내가 도색해서 가지고 나온거지만.. 라이센스 계약 맺고..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사람이 참 좋았다. 과장이라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결국 몸이 좋지 않아, 나왔다. 음..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웠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곳에서, 내 머리카락만한 부품들 가지고 놀고 있다. 그나마 사무직도 겸해서 한다. 이 회사는, 이미 근무한적이 있는 회사이다. 물론 1년 3개월 남짓 일했다가, 다시 돌아 왔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나에게 할당된 일들이 많을 뿐입니다. >愛話 Wrote... >형 애기를 듣고싶어요..ㅡㅡ > >그 공돌이가 된케이스... > >전...반년간 공돌이였었으니깐... > >도리어 반대로... 공돌이의 고달픔은... > >힘든일이 아니라... > >공장의 비리죠...비리...덴장할 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