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태자(琳聖太子)는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이며, 이름은 의조(義照)이다.[1]
일본에서는 토요타씨의 14대조이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타타라(多多良)라는 성씨를 창설하였다.
그의 사후 타타라씨는 12세기에 오우치(大內)로 성씨를 바꾸고 1557년 최후의 오우치씨는 할복했지만,
살아남은 아들이 토요타(豊田)로 성씨를 바꾼다.
이 오오치씨의 가문이 야마구치현에서 백제의 화려한 오오치 문화를 꽃피웠고 이 오오치씨 가문의 후예가 도요타(豊田) 가문이므로 곧 백제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도요타 가문의 족보
백제를 선조로 모시는 오오찌 가문에 참배하는 도요타 가문
일본의 백제계 성씨
쿠다라(百濟), 오오치(大內), 도요타(豊田), 마쓰다(沙田), 이와노(石野), 스가노(菅野), 오오카(大丘), 오카야(岡屋), 하루노(春野), 오하라(大原), 나카노(中野), 쿠니모토(國本), 나가다(長田)등의 복성과, 하야시(林), 후미(文)씨 등의 단성이 있습니다.
- 참고한 곳 : 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htm, http://www.ysn21.jp/furusato/human/rekishi.html
ㆍ日거주 오우치 부부 무왕릉등 참배위해
140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갔던 백제 성왕의 셋째 왕자인 임성태자의 후손이 백제의 고도 익산땅을 밟았다. 백제 왕족 임성태자 45대 후손인 오우치 기미오(大內公夫·69), 오우치 다카코(大內孝子·65) 부부(사진)가 2박3일 일정으로 익산 무왕릉과 미륵사지, 부여 백제왕릉원 등을 참배하기 위해 17일 입국했다. 오우치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우치 부부는 이날 오전 익산시 석왕동 쌍릉(백제 무왕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묘)을 찾아 참배했다.
오우치는 이 자리에서 “시대를 넘고 대를 이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상땅에 돌아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된다”면서도 “일본국가의 형성에 커다란 공헌을 한 임성태자의 업적을 기리며 백제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대대손손 살아왔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참배를 끝낸 부부는 현장에서 “문화재 보수유지에 보태달라”며 100만엔을 기탁했다.
오우치는 이어 지난 1월 백제 무왕시대의 사리장엄이 대거 출토된 미륵사지 경내를 둘러봤다.
오우치 부부는 18일에는 보석박물관과 웅포 곰개나루, 충남 부여의 백제왕릉 등을 돌아보고 19일 오후 일본으로 돌아간다.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는 성왕이 신라의 복병에 의해 피살되자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백제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일본에 전래한 대표적인 왕족으로 알려졌다.
林性太子(琳聖太子)は 百済の王族で 百済盛旺の三番目息子であり, 名前はウィゾ(義照)だ.[1] 日本では トヨタさんの 14対照だ. 日本に渡って ターターだと(多多良)という氏姓を創設こんにちはだった. 彼の死後タタラシは 12世紀に 呉愚癡(大内)で氏姓を変えて 1557年 最後の呉愚癡さんは腹切りしたが, 生き残った息子がトヨタ(豊田)で氏姓を変える.
が呉オチさんの家門がYamaguchi県で百済の派手な呉オチ文化の花を咲かせたしこの呉オチさん家門の後裔が豊田(豊田) 家門なのですなわち百済の子孫になるのです.
豊田家門の系図
百済を先祖に仕えるオオチ家門に参拜する豊田家門
日本の百済係氏姓
クダだと(百済), 呉オチ(大内), 豊田(豊田), マツダ(沙田), イワノ−(石野), Sugano(菅野), オオカ(大丘), オカなの(岡屋), ハルノ−(春野), オハラ(大原), 中野(中野), クニモト(国本), 出る(長田)などの複姓と, Hayashi(林), 後尾(文)さんなどの単性があります.
・日居住呉愚癡夫婦無王陵真実配位して
1400年前日本に渡った百済盛旺の三番目王子である林性太子の子孫が百済の高度イックサンタングを踏んだ. 百済王族林性太子 45台子孫である呉愚癡ギミオ(大内公夫・69), 呉愚癡ダカーして(大内孝子・65) 夫婦(写真)が 2泊3日日程で益山無王陵と彌箇寺地, 付与百済王陵院などを参拜するために 17日入国した. 呉愚癡の韓国訪問は今度が初めてだ.
呉愚癡夫婦はこの日午前益山市ソックワングドングサングルング(百済武王がつけた所に推定される畝)を捜して参拜した.
呉愚癡はこの席で “時代を越して代を引き継いで待ちに待ったゾサングタングに帰って来て言葉で表現することができない位に興奮する”と言いながらも “君が代の形成に大きな貢献を一林性太子の業績を称えて百済の子孫なのを忘れないで代代孫孫暮して来た”と感懐を打ち明けた.
参拜を終わらせた夫婦は現場で “文化財補修維持にボテダルだと”と 100万円を寄託した.
呉愚癡は引き続き去る 1月百済武王時代の私利壮厳が大挙出土された彌箇寺地境内を見回した.
呉愚癡夫婦は 18日には宝石博物館とウングポゴムゲナで, 忠南付与の百済王陵などを振り返って 19日午後日本に帰る.
百済盛旺の三番目息子である林性太子は盛旺が新羅の伏兵によって被殺されると台湾を経って日本に渡って当時百済の優秀な文化芸術を日本に伝来した代表的な王族と知られた.